소개팅남이 이상형을 물었습니다
소개팅남이 이상형을 물었다.
참 난감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 L을 떠올렸다.
'제 이상형은 전 남친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얼마나 우스울까.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떻게 대답해도 좋은 대답이 되기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는 소개팅남에게 '결이 잘 맞는 사람'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키가 큰 사람이 좋다고 했는데 그가 키가 작은 사람이라면 어쩐지 미안할 것이고, 다정한 사람이 좋다고 했는데 그가 나에게 다정하게 굴면 연기하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테니까 어떻게 해도 그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하기란 어려울 테다.
연예인에 목매어본 적도 없고 가능성 없는 이상을 품어본 적 없는 나에게 이상형은 큰 의미가 없었다.
잘생길수록 좋고 똑똑할수록 좋고 다정할수록 좋은 거 아닌가.
최근에 누가 물으면, "남들 좋아하는 거 저도 다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소개팅남의 질문에 나는 L을 그렸다.
적어도 L은 나에게 참 괜찮은 남자였다.
180이 넘지는 않지만 적당히 큰 키에, 다부지지는 않지만 적당히 예쁜 체형. 윤기가 흐르지는 않아도 나쁘지 않은 피부와 고른 치아. 그는 땀이 많지만 찝찝한 게 싫어서 유난히 자주 씻는 사람이었고, 남자치고는 깔끔을 떠는 편이라 각종 강박을 가진 나를 그래도 잘 이해해 주었다. 지나치게 효자는 아니지만 부모님께 다정한 아들인 것도, 물려받을 재산은 없어도 책임져야 하는 가족은 없는 것도. 심지어는 그가 둘째인 것도 좋았다. 같은 직업이라 나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도, 직장 고민을 나누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도, 그렇다고 대충 일하지 않는 것도 좋았다. 적당한 소명의식과 적당한 도덕심. 어느 정도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그 거리감이 좋았다. 그는 주식이나 부동산에 박식하지는 않지만, 필요 없는데 돈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미래를 위해 모으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었고, 책을 달고 다니지는 않지만 가끔 집중해서 책을 읽고는 내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었다. 취미는 없어도 내가 취미를 갖는 걸 이해해 주었고, 음식에 흥미가 없는 나를 위해 내 끼니를 걱정해 주었다. 토마토와 오이와 과일을 먹지는 않지만, 그것 외에 가리는 음식이 없는 것도, 내게 메뉴 선택권을 대부분 양보하고는 양이 적은 나를 위해 내 몫까지 다 먹어주는 것도 좋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같이 떠나 주는 것도 길을 잘 찾고 세세한 일정을 살뜰히 살펴주는 것도 좋았다. 나는 그와 언어유희를 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는데, 그와 함께 있으면 별일 아닌 것도 별거 아닌 것도 재미있었다. 생각이 잘 맞고, 대화가 잘 되고 결이 잘 맞는 사람.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걸 상식이라고 여겨주는 사람. 꽃미남은 아니어도 내 눈에 귀엽고 잘 생긴 사람. 그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게 좋은 사람이었다. 언제부턴가 그 모든 것이 분명히 흔들렸지만, 내 기억 속에 그는 적어도 아직 그런 사람이다.
소개팅남의 질문에 구체적인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말을 삼켰다.
"내가 왜 좋아?" 물으면 그는 언제나 "예뻐서" "너라서" 중에 하나로 대답했고 그 질문이 생각하기 귀찮아서 대충 둘러대는 말 같다고 투덜대면 "대화가 잘 통해서"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도 글씨체도 생김새도 성격도 말투도 다 좋은데, 저렇게 단순하게 대답하는 그가 얄미웠던 적이 많았다.
나는 네가 참 좋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너의 모든 것이 좋아서 네가 좋은 것인지, 네가 좋아서 너의 모든 것이 내 기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너는 뭐라고 대답할까.
너는 그냥 "예쁜 사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겠지. 그러면서 나를 떠올릴지 어느 연예인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너 같은 사람을 혹은 너보다 더 내게 꼭 맞는 사람을 또 찾을 수 있을까?
또는 너무 좋아서 너라는 사람을 내게서 지워낼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너를 떠올리는 건, 내게도 상대방에게도 너무 비참하고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