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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WeeklyEDGE

'폭발적 성장'은 왜 항상 과소평가될까

시작된 미래가 당장 보이지 않는 이유

by CapitalEDGE

지수 성장 곡선 앞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


"지수 성장 곡선을 후행적으로 돌아보면 항상 변화는 완만한 곡선처럼 진행된 것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지수 성장을 바로 코앞에서 맞닥뜨리는 순간, 우리는 그 곡선이 바로 눈앞에서 거의 수직으로 솟구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폭발적 성장의 특징입니다."

- 크리스 사카, Lowercase Capital 창업자


아래와 같은 차트를 한 번쯤은 접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IEA가 발간하는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 WEO)에서 태양광 발전의 규모를 예측한 지표를 실제 데이터와 매핑해보면 매년 확산 규모를 과소평가해온 차트이죠. 전문 기관의 시장 전망이 실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입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3bcfd581-e886-46b0-b8ec-4a4a7892fb74_650x663.jpeg 연간 글로벌 태양광 발전 규모 (2018년 기준)


만약 이 차트를 최근 데이터까지 이어붙인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그림이 나옵니다. 이제는 추정이란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곡선이 가팔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크리스 사카가 언급한 ‘멀리서 보면 포물선이지만 직접 맞닥뜨리면 수직에 가깝다’라는 지표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fb83666c-146d-44e0-bef9-2c6e4fb861c0_1536x1536.jpeg 연간 글로벌 태양광 발전 규모 (2024년 실제 데이터 vs. 2028년 예측 데이터)


IEA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매년 재생에너지 확산을 과소평가해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폭발적 성장에 대한 과소평가는 단지 에너지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 기술 변혁기에 일상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란 점입니다. 과거 인터넷 확산이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으며 이제는 AI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베세머가 예측한 쇼피파이의 미래 가치


정확히 10년 전이었던 2015년 5월, 캐나다 오타와의 한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 기업 쇼피파이(Shopify)가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습니다. 공모가는 주당 $17, 기업가치는 약 $1.3Bn 불과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회사가 10년 뒤 시가총액이 100배 상승한 $130Bn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는 쇼피파이 상장 당시 무려 3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던 초기투자사 베세머벤처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기록한 베세머는 단계별 지분 매각을 통해 2018년 지분을 모두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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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흥미로운 점은 베세머가 작성한 2010년의 투자 메모입니다. 당시 쇼피파이는 고객 수가 1년 만에 5,500명에서 거의 1만 명으로 81% 증가했고, 월 반복수익(MRR)도 $164K에서 $438K로 151% 늘어나 연간 매출이 약 $5.5Mn에 달하는 사업이 되었습니다. 마케팅에 큰 돈을 쓰지 않고도 이미 흑자를 내고 있었던 탄탄한 회사였죠.


하지만 투자 메모에 담긴 시나리오 분석표를 보면 베세머가 쇼피파이를 바라봤던 관점은 명확히 드러납니다.

베세머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로 3년 내 연매출 $15 - $20Mn 수준에서 30% 이익률로 인수될 경우 기업가치 약 $50 - $100Mn를 상정했고, 이를 28%의 상당히 높은 확률로 보았습니다.


반면 "장밋빛"으로 분류된 최고 시나리오는 연 50 - 60%의 유기적 성장으로 5 - 6년 후 연매출 $100Mn 이상을 달성하는 경우였고, 이때 기업가치 약 $400Mn으로 엑싯할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그러나 이 최고의 경우조차 일어날 확률은 불과 3%로 낮게 평가되었죠.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a92c7c91-ff84-4702-adf1-71b609c02c84_1019x699.png 쇼피파이 투자메모의 Outcome Analysis (https://www.bvp.com/memos/shopify)


물론 쇼피파이는 이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베세머는 시리즈 A 투자 당시 지분을 26% 가까이 확보하였는데 이후에도 꾸준히 투자 규모를 늘려 상장 당시에는 보유 지분 비중이 30%에 가까웠습니다. 희석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투자 규모를 Pro-rata 이상으로 늘린 것입니다.


베세머의 입장에서 쇼피파이는 2015년에도 굉장히 성공적인 투자였습니다. 이럴 경우 벤처캐피탈 입장에서 상장 후 2 - 3년에 걸쳐 지분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수익을 분배하고 펀드를 청산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베세머는 이 결정에 대해 솔직한 회고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투자를 이끈 베세머의 파트너 알렉스 페라라(Alex Ferrara)는 "그 정도의 성공은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인정하며, 결과적으로 쇼피파이에서 너무 일찍 매각한 것이 '큰 기회비용'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베세머는 이에 대해 "우리에겐 수정구슬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없었다"는 솔직한 평가도 내놓았습니다. 실제로 베세머뿐 아니라 쇼피파이의 또 다른 초기 투자자인 펠리시스 벤처스(Felicis Ventures) 역시 비슷한 시기에 지분을 매각한 바 있습니다.



왜 폭발적 성장의 예측이 어려울까


스타트업 투자 세계에는 "파워법칙(power law)"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수의 성공적인 회사가 나머지 다수를 압도하는 성과를 낸다는 뜻이죠. 하지만 문제는 그 소수가 누구인지, 얼마나 크게 될지를 사전에 알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입니다. 베세머와 같은 쟁쟁한 벤처캐피탈조차 결과적으로 쇼피파이와 5년을 동행하고도 회사의 미래 잠재가치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한 스타트업 투자 전문가의 말대로, "가장 큰 히트작들은 본질적으로 예기치 못한 법"이어서, 사전에 모델링으로 예측해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폭발적 성장 기업은 매 번 기업가치가 가장 비싸 보이지만 지나보면 그때가 가장 싼 시기였다”는 말처럼 미래 가치에 방점을 두고 기업을 평가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1️⃣ 시장 크기의 함정: 뛰어난 제품은 시장을 키운다


많은 투자자들이 초기에 "시장 규모가 충분히 큰가?"를 핵심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고속 성장 기업에게 있어 과거 특정 시점의 총 시장규모 (TAM) 분석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위대한 제품과 창업자는 시장을 확장시킨다"는 격언처럼, 스타트업의 사업 영역도 동적으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b6978462-a3b2-4cd5-a1d0-2c4eae01bbaf_698x692.png 오픈AI가 제시한 2029년 매출 전망의 변화 (출처: The Information)


오픈AI가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매출 성장 차트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회사 성장 속도가 예상을 늘 초과하다보니 실적 추정 단계마다 신사업 매출이 추가되면서 가이던스를 올리는 상황이죠. 고성장 고평가 기업에서 늘 관찰할 수 있는 특징입니다.


투자자 빌 걸리는 우버의 고평가 이슈를 두고 "과거의 수치로 미래 기회를 계산하면 틀릴 수밖에 없다. 미래의 제품/서비스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면 과거는 형편없는 가이드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박스(Box)의 아론 레비도 "혁신적 신생기업의 시장을 기존 업계의 규모로 산정하는 건 1910년에 마차 대수로 자동차 산업 규모를 예측하는 격"이라고 비유했습니다.



2️⃣ 인간의 선형적 직관: 두뇌는 지수함수를 잘 못 그린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선형적(linear)으로 사고하도록 진화’해왔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 뇌는 무언가 성장한다고 하면 대개는 조금씩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을 그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술 채택이나 네트워크 효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기하급수적(exponential) 곡선을 그릴 때가 많습니다.


현실 사례를 보면 이런 오류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80년, AT&T가 저명한 컨설팅사 맥킨지에 휴대전화 가입자 수 예측을 의뢰했습니다. 맥킨지는 "2000년 미국 휴대폰 가입자는 90만 명 수준"이라고 전망했지만, 실제로 2000년이 됐을 때 가입자는 1억 900만 명이나 됐습니다. 결국 AT&T는 잘못된 분석을 믿고 초기 휴대전화 사업을 포기했다가 나중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재진출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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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자 비노드 코슬라는 주요 시장조사업체들이 2000년대 초반 휴대폰 연간 성장률을 10~15%로 내다봤지만 실제로는 매년 100%씩 폭발 성장한 사례를 지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예측이 빗나간 후에도 분석가들은 학습하지 못하고 몇 년간 낮은 성장률 전망을 고수했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지수적 변화 앞에서 보수적 예측을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손실 회피와 확증 편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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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가능성에 베팅하는 벤처 마인드셋


핵심은 답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려 애쓰기보다, 애초에 우리의 예측 능력이 제한적임을 받아들이고 불확실성 속에서 가능성에 베팅하는 태도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벤처 투자자들의 기본 철학이기도 합니다. 애당초 어떤 스타트업이 큰 성공을 거둘지 알 수 없기에, 많은 시도를 통해 배우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것이죠. 평가보다 탐색, 단정보다는 실험이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실패 가능성이 높더라도 잠재적 성공의 스케일이 압도적이라면 과감히 시도해보는 것이 벤처 마인드셋의 핵심입니다.


쿠팡이 2010년에서 2020년까지 무려 10년간 전혀 한국 시장에서 본 적이 없었던 대규모 적자를 통한 성장 스토리를 써나갈때도 '쟤네 언제 망하냐'는 시선이 절대 다수였습니다. 아마존의 성장 스토리를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믿지 못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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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과 2018년 소프트뱅크의 마사요시 손이 대규모 베팅을 감행했을때도 사람들은 손 회장이기에 가능한 일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 시장의 한계라는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에 집중했던 소프트뱅크와 그린옥스같은 투자자들은 그 가능성에 베팅했습니다. 그리고 쿠팡은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1호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가져다 준 기업이 되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할 때 비로소 변화의 통로가 열린다는 통찰처럼, 모호한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모름을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으로 탐색하는 것이 더 큰 혁신을 가져옵니다. AI 제품 업데이트 소식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요즘같은 시기, 확신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에 베팅하는 도전이야말로 벤처 마인드셋의 진수가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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