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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세끼 Jul 22. 2021

고금소총. 서울대 선정 고전에 선정?

일단 고금소총이 뭔지 모를 분들을 위해. 네이버에 고금소총을 넣고 검색하면 야릇한 분위기의 영화정보가 뜬다. 관련 영화 추천 정보로 뜨는 것은  뽕, 변강쇠 등. 그 아래 나무위키에는 '주의, 성(性)적인 요소가 있습니다'라고 경고문구 같은게 뜬다. 이 정도면 대충 느낌이 옴직하다. 


그렇다면 '이런' 책이 서울대 선정 고전에 선정됐다는 건가?  전혀 아니다. 그냥 한번 해본 헛소리다. 

<고금소총>과 나의 첫 만남은 10대 시절 어느 즈음이다. 장소는 이모집 다락방. 선데이서울, 자극적인 제목의 추리소설 등과 함께 책더미에 섞여 있던 이 책은 호기심 넘치는 10대를 유인할만한 어떤 요소도 없었다. 손때 묻은 낡은 표지, 한자로 된 제목, 심지어 세로쓰기까지. 하지만 촉 밝은 내 눈에 걸려든 것이 있으니 바로 겉표지 한쪽에 작게 그려져 있던 삽화다. 언뜻 보면 조선시대 민속화 쯤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니 춘화를 연상케 하는 야한 그림이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 그림 덕에 책을 집어 들었고 흡입하듯 읽었다. 식사나 간식을 먹을 때,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마다 “도대체 다락에서 뭐하는거냐”고 불러대는 가족들의 잔소리에 마음졸이며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버스 정류장 담벼락에 붙어 있던, 야한 실루엣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던 동명의 영화 포스터(예전엔 담벼락과 신문하단에 영화광고가 정말 많이 붙어 있었다)를 보며 괜히 으쓱했던 기억도 있다. 친구들아, 너희들은 저 내용을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고금소총이 내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고도 수십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고금소총을 다시 만나게 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불현듯 고금소총을 떠올리게 됐다. 기억의 촉매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들게 된 <데카메론>이다. 서가에 나란히 꽂혀 있는 세계문학전집 중 다른 책들은 표지가 좀 너덜거렸지만 데카메론은 새로 개비했는지 유난히 빤딱거렸다. 별생각없이 꺼내 만지작거리다 대출했다. 서울대 선정 고전 시리즈 등 온갖 고전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책이다보니 대략의 내용이며 소설의 배경은 잘 알려진, 그래서 마치 읽은 것같은 착각이 들었던 것일 뿐 읽지 않은 책이었다.(여느 고전이 다 그렇듯 ㅠㅠ) 


책을 잡고 읽는데 생각보다 술술 잘 넘어갔다. 명작으로 꼽히는 문학작품들은 으레 그렇듯 초반부의 지루한 묘사를 이겨내고 본 궤도에 오르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건 마치 전래민담집 읽는 듯했다. 황당무계하고 재기넘치고, 그러면서 엄청 야한 상상까지 자극하는 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읽다보니 어디선가 저편의 기억을 일깨우는데, 그것은 예전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던 그것. 바로 고금소총이 오버랩되는 것이 아닌가. 대박. 이렇게 야한 이야기가 많은 책이라니. 고금소총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야한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걸 청소년 권장 고전으로 선정했다고? 물론 야하고 그렇지 않고는 명작을 선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런데 성담론에 관한 한국적 풍토에서, 엄숙한 척하며 성에 관한 권위주의가 오랫동안 판쳐온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이 그런 리스트에 들었다고? 아마도 이 리스트는 외신에서 베꼈거나 권위있는 외국의 어느 기관 혹은 단체에서 선정한 것을 그대로 받아서 옮긴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이걸 읽었다면 절대로 선정됐을 리가 없다. 생리대도 생리대라고 공개적으로 말 못하는 분위기에서, 서구에서 50년 전부터 사용됐던 성교육 동화책을 두고도 적나라하다, 민망하다며 음란물 취급하는 국회의원들이 큰 소리치는 나라에서 과연 이 책이 그리 오랜 시간동안 청소년 추천 고전 리스트에 올라 지금껏 그 명맥을 이어왔다는 것은 선정작업에 관련한 대다수가 이 작품을 안 읽어봤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 생각한다. 

데카메론은 한번쯤 읽어봐야 할 재미있는 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잡설이 너무 길었다. 페스트같은 역병이 덮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더불어 카뮈의 <페스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까지. 재앙 수준의 병마가 덮친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작품들이다. 뒤의 두 작품은 한동안 서점가에서 역주행을 하며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데 이상하게도 데카메론은 별로 언급이 안됐다. 아마도 원초적 욕망의 화신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이라 비장미보다는 유쾌함과 해학 드러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데카메론은 페스트가 덮쳤던 그 시기 피렌체에 살던 10명의 남녀가 병마를 피해 피렌체 외곽의 한 공간에서 열흘간 각기 10편씩 주고받았던 모두 100편의 이야기를 모은 이야기집이다. 


데카메론의 저자는 보카치오다. 아마도 데카메론을 제대로 읽는 대신 막연한 편견을 대중들이 갖게 만들었던 것은 90년대에 한창 전성기를 구가했던 스포츠 신문에 보카치오라는 이름의 만화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40대 이상이면 대략 기억하리라...


보카치오는 단테, 페트라르카와 함께 이탈리아 3대 작가로 꼽힌다. 단테는 서사시, 페트라르카는 서정시, 보카치오는 소설로 각기 주요 활동 장르는 다르다. 페트라르카는 보카치오의 스승이었다. 나이들어 단테에 푹 빠졌던 그는 그런 성스러운 작품에 비하면 자신이 젊은 시절 썼던 데카메론은 너무나 보잘것 없고 세속적인  것으로 여겼다. 고민하다 작품을 불태우기로 한 그를 만류했던 이는 스승 페트라르카다. 경직된 기독교적 가치가 지배하던 시대였지만 진실에 대한 갈망, 다양한 관점과 가치를 존중하는 구도자 스승 덕분에 데카메론이 지금껏 전해온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단테의 신곡은 그전까지 희극을 의미하는 ‘코메디아’라고 불렸으나 보카치오가 이 작품을 읽고 난뒤 이런 신성함을 가진 작품을 그냥 부를 수 없다며 ‘신성하다’는 의미를 붙여 현재의 ‘신곡’이 되었다고 한다. 

데카메론에는 남녀상열지사 뿐 아니라 교회, 성직자를 향한 조롱과 풍자도 많다. 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 교회의 모습들은 21세기의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수도원의 모습도 퍽 흥미롭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도원 수도사나 수녀의 모습은 금욕과 청빈의 삶의 표상이지만 중세 수도원은 조금 달랐다고 한다. 수도원의 시초는  종교적인 것 보다 경제공동체로서의 역할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생산 수단을 공유하며 모여 살았던 경제공동체였다는 것이다. 가족을 개별적으로 꾸리게 되면 공동체 재산을 사유화하기 때문에 가족을 형성하고 재산을 세습하는 것은 금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수도원에 머무는 사람은 ‘독신 서약’을 했던 것이지 ‘순결 서약’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수도원은 경제공동체로서 지역사회에 큰 역할을 했다. 농사를 발전시켰고 과학, 의학, 문화예술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풍속의 역사>를 쓴 에두아르도 푹스는 이런 수도원이 타락하게 된 원인을 화폐의 등장으로 꼽았다. 현물은 보관에 한계가 있어서 나눠 먹었지만 화폐가 등장하면서 부를 쌓을 수 있게 됐고 귀족과 결탁해 서로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사족 몇개를 붙이자면 성적인 은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다. 이 작품에도 성행위를 의미하는 절구와 절굿공이, 악마와 지옥 따위의 표현이 등장한다. 대단히 노골적인 묘사가 있는건 아니지만 야한 상상을 엄청 자극한다.(생각이 순수한 분들에겐 아무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다음은 구윤숙씨가 해설을 곁들여 쓴 <데카메론>에 나오는 대목중에 옮겨놓고 싶은 부분이다. 


국가 이전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가족을 제도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성적 에너지는 줄곧 존재하고 있다.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덕을 전복할 수 있는힘이 있다면 아마 이런 야생적 성욕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 사회, 국가로부터 가장 억압받고 있는 것도 바로 성이다. 비근한 예로 폭력적이지도 않고 결론이 교훈적이어도 야한 장면이 있는 영화에는 아직도 빨간 딱지가 붙는다. 에로스는 충동적이다. 고로 위험하다. 그 힘을 가두고 통제하는 자는 이로부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이 왜곡되어 간다는 사실에는 눈이 어둡다. 여성의 에로스는 온통 상품화되었고 아내의 에로스는 가족애로 협소해졌다. 노동자의 에로스는 직장에서 경제적 생산 에너지로 쓰이거나 짧은 휴일을 이용해 상품화된 여가 활동을 구매하는데 소비되고 있다. 요컨대 생산성 높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할 때 국가는 먼저 에로스의 자연스런 흐름을 다스려야 했다.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들은 형벌로 관리하고 교회를 통해 성을 더러운 것으로 위장했다. 이렇듯 성은 점점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갔다.


다시 고금소총으로. 예전에 고금소총의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음담패설집 정도로 치부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한 노교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서울대 선정 고전 리스트에 고금소총을 포함시키자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아니 고금소총을 진지하게 논하는 장이 열리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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