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면 인간관계가 더 쉬워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들어질 때가 많다. 최근 인간관계의 폭이 어떤 이유로 넓어졌다. 물론 깊은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그에 수반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중요한 건, 내가 맺고 끊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서 부서가 여러번 바뀌었다. 그때마다 새로운 조직과 사람들에 적응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그러던 중,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끊기는 일이 있었다. 대화는 그저 사소했고 내 입장에서는 그 대화가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특별히 삐걱거린 적도 없었고, 그전날의 대화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대화에서 연락이 끊겼다. 전화도, 메신저도, 카톡도 전혀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걔랑 이제 연락안할거야." 라고 통보했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나도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오해를 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대가 의지를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풀 수 있을지 막막했다. 아직 차단당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잘못한 것이 있으면 기회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최대한 객관적이 되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다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 친구는 "읽씹" 상태로 나와의 SNS도 끊어버렸다.
10년이 넘는 관계가 이렇게 쉽게 끊어지는 것이 연인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무반응 속에서도 후회의 감정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관계가 이렇게 끝나버린다면,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결국 마음이 상하고, 내가 잘못한 것일까 싶어 몇 명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메신저와 이전의 대화를 보여주자,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일부는 내가 이런 경험이 적어서 힘들어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그 말에 참 반박하고 싶었다. 내가 타인에게 상처받은 기억은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사회에서도 수없이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때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고민하며 많이 울었다. 숫자를 비교하는 양적 비교가 필요할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꽤 단단해졌다. 지금의 나는 (아마도) 남들이 보기에 호감형이고, 성격도 좋고, 털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이 모습조차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쌓아 올린 나의 단단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저 나만이 나의 진짜 속 마음을 알 뿐이다. 그리고 사실 내 속마음을 알기란 여전히 힘들다. 나조차도 나를 모르는데 남이 어떻게 나를 알 수 있을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쉽게 판단했다. 그들이 본모습이 정말 나일까?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도 인간이란 참 무력하고 연약하다. 아니 내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많은 고민 중, 미키피디아라는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그 유튜브에서 본인이 매개체가 되어 소개해준 두 사람이 나를 빼고 만날 때, 어떤 이유에서든 서운함을 느꼈다라는 말이 스쳐지나가듯 나왔다. 나보다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사람들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위안을 얻었다.
나 자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때때로 나를 숨 막히게 만든다. 사실 상대를 탓하면 편하기도 하다. "왜 대화를 안 하려고 해? 속 참 좁네." "왜 나만 빼고 만나? 나한테 통보하듯 말해? 배려가 없네."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은 없다. 그냥 그렇게 된 것뿐이다.
손절을 당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가 "그거 질투해서 그래."라고 말했다. 문득 그것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 관계일 수록 그 사람이 소중할 수록 나를 빼고 그들끼리 놀 때 문득 '질투'가 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 친구와도 그랬던 것 같다. "왜 나랑은 안 놀아?" 라고 했던 그녀의 말이 스쳐지나갔고 나는 인스타에 내 스토리 '전시'를 많이 하지 않았는가. 끊임없는 전시가 남의 눈에 "쟤는 바쁘니까." "쟤는 나 빼고도 재밌으니까."라는 생각을 심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봐도 "내 잘못"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관계와 말투, 툭 던진 말 한마디에 그날의 기분이 결정되는 날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탓을 외부로 돌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것이 옳지 않더라도. 귀책사유가 나에게만 있지 않으니까.
하, 여전히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