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이 미스터리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_기타모리 고>

by 가가책방

「원하건대 꽃 아래 봄에 죽기를

그 추운 음력 이월의 보름에_62쪽」


한 신원 불명의 하이쿠 시인이 어느 추운 봄날 죽은 채 발견됐다.

그런데 그 현장에는 '기적의 꽃'이 피어있었다. 추운 날씨로 개화 시기가 늦어지고 있던 시점에서 발생한 기적적인 일이었다.

'시인의 죽음을 지켜준 꽃'이라는 홀로 죽어가는 이를 꽃 한송이가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해 피어난 것 같은 꽃, 하지만 이 꽃이 핀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세상에 기적은 그토록 흔한 주제에 실제 기적이라고 주목받는 것은 보통 착각이거나 거짓이다.


이 시인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 출신, 과거.

무엇 하나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추측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추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과거를 확신에 가깝게 추측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는 작은 식당인 가나리야의 주인 구도 데쓰야와 프리랜서 작가 이지마 나나오의 두 사람이다. 특히 이지마 나나오는 자신이 신원 불명의 시인으로 기사화된 인물, 가타오카 소교를 고향으로 돌려 보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가타오카 소교의 과거를 밝혀가는 이지마 나나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이웃에게서 산 거였다.

벌써 한참이나 지나 있어서 새삼,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기도 했다.


앞서 발췌한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의 하이쿠는 뭔가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라 함은 꽃 아래 죽고자 하는데 '그 추운'이라는 표현을 적고 있기 때문이다. 추우면 꽃은 개화를 늦추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봄이 되었다고 해도 꽃 아래에서 죽을 수는 없게 되는 거다. 그럼에도 꽃 아래서 죽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꼴이 된다.

역설적인 이유는 '그 추운 음력 이월의 보름'에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것보다 빨리 죽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그 추운 음력 이월의 보름은 잘 견디고 싶다'는 식으로 읽히는 거다.

결국 조금 더 살고 싶은 사람이 쓴 시지 죽음이 금세 찾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이 쓴 시 같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자신의 과거와 신원을 완전히 지운 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왜 그런 삶을 선택했을까?

자신의 신원이 밝혀지게 될 것 같은 순간이 가까워지면 그곳에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던 가타야마 소교와 같은 삶을 살게 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연쇄살인? 범죄로 인한 도피?

의혹은 많고, 추측은 추측을 거듭하게 만들지만 확실한 것은 무엇도 없다.

그런 사람의 과거를 좇는 일은 순탄하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우연히 얻어진 단서가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많은 미스터리가 풀리게 된다.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신에 가까운 답을 얻었다고 해도 죽은 이의 삶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불쑥 끼어들 수 있는 우연들이 확신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반대로 확신에 확신을 더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전해 들은 평보다는 더 좋았다.

억지스럽고 잔혹한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단서를 모으고 추리를 펼쳐 범인을 좁혀가는 미스터리 소설보다 한 인간의 삶 전체를 개괄하는, 오히려 추리가 아무리 확실한 단서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더라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인간의 삶이라는 미스터리를 풀어간다는 게 좋았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 사건 하나에 주목하기보다 전체의 흐름에 비중을 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사고나 사건만이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무명의 시인의 조용한 죽음일지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거대한 미스터리로 다가 올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의 삶, 그 자체가 미스터리다.

삶 전체를 지켜본 사람조차 그 사람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없는 법인데 삶의 일부만을 공유한 타인이야 말할 것도 없는 거다.


이제 이른 꽃은 진 지 오래고, 늦은 꽃들도 피면서 져가고 있다.

곧 여름이 될 거라는 우울한 일기예보도 나오고 있다.


꽃 아래 봄, 죽기를 바라기에 좋은, 음력 3월의 보름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