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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불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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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Sep 17. 2023

나는 불편한 게 많다

불편러의 일기

 어려서부터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함께 정한 규칙, 알고 있는 원칙,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법들을 되도록 지키려는 고집 탓이다. 돌아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늘 있었다. 다만 되도록, 최대한, 상황과 여력이 허락하는 한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확신 없는 고집이었으므로 이것은 신념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티끌만큼에 불과하더라도 뭔가, 누군가에게는 해가 되는 일이 줄어들 거라 믿고 싶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순간이 많았다고 느낀다. 기분이 상하든 마음에 걸리든 일어나지 않았을 다툼과 갈등을 겪게 되든 좋은 일보다 좋지 않은 일이 더 잦았던 거다. 

 

 혼자가 아니게 되면서 어려움은 더 커졌다. 분명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불편을 불편이라고 하고,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하는 나날들. 그건 원칙이나 융통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내과 참을성의 문제가 됐다. 나는 최대한 바른생활을 하고자 했을 뿐인데 그 바른생활이 우리의 생활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몇 번인가 분한 패배를 겪었다. 상대는 논리적이지 않았으나 인간적이었으므로, 나 역시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을 파고들 때마다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왜 불법을 행하나." 이 말은 지금도 가슴에 박혀 있는 아픈 말이다. 


 여전히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완벽히 선량하거나 합법적인 인간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일기를 쓰기로 했다. 어떤 사건이었는지, 상황은 어떠했는지, 예상되는 피해와 후에 일어날지 모를 가능성을 포함한 수명이 짧은 디스토피아가 생겨났다가 이야기의 끝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로맨스라 할지라도 그것이 불륜에 속한다면 내내 부끄러워하고 미안하고 괴로워하다 바로잡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는 방법은 합리화가 아니라 승화다. 화내고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자. 


BM*을 타는 남자 에피소드. 

어떤 평일 낮에 일어난 일이다. 평소처럼 운전을 하는데 서행하던 앞차가 멈추는 듯하더니 10미터쯤 앞에서 후진 기어를 넣더니 차를 세워버린다. 비상등이나 방향 지시등은 켜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 있었는데 차에서 내리면서 뒤에 서 있는 내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간다. 어디를 가나 했더니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인가 보다. 그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가게 건물 옆 공터에 차를 세우려던 나는 뒤에 오는 차를 조심하며 앞에 세운 차를 피해 차선을 변경한 후 진행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함께 운전자의 시선, 행동의 무례함이 몹시 불편했다. 참기 싫어져서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조수석 창문을 내려 멈춰 서서 노려보는 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경적에 자신이 놀랐으니 사과를 하라며 맞섰다. 그가 차를 세운 곳은 초등학교 앞으로 황색 실선 두 줄이 그려진 절대 주정차 금지 구역이다. 바뀐 법에 의하면 1분에 한 번씩 주정차 신고를 당할 수 있는 위치였고, 그 10미터 앞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크게 두 가지가 불편했다. 후행 차량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후진과 정차라는 행동이 첫 번째였고, 그 행동에 전혀 미안함이나 문제점을 발견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두 번째였다. 나는 그 상황이 몹시 유감스러웠지만 '자신이 놀랄 수 있지 않냐'며 사과를 요구하는 그의 말을 받아들여서 경적을 울린 걸 사과했다. 그러나 정차나 후행차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는 사과받지 못했다. 그게 몹시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더 유감스러운 일들이 벌어졌지만 쓰지 않기로 하자. 사안이 다르지만 나 역시 불법을 행했다며 던진 "법을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라는 말이 오래 마음을 무겁게 했다고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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