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러의 시작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의 대사로 알려진 말이다.
막을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 보낸 악당에게 삼촌이 목숨을 잃게 되면서 스파이더맨은 영웅으로 각성한다. 자신이 가진 힘과 힘을 가진 자신에게 어떤 책임을 느낀 거다. 행동하지 않는 지성,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응징하는 초인으로서. 영화 속 영웅들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힘과 능력으로 지구를 지킨다. 비록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지구라는 거대한 공동체와 우주라는 광활한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불법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우주나 지구 규모의 재해 혹은 악당의 음모는 나 같은 소시민에게는 영화 속 이야기 같은 멀고 먼 이야기다. 지난여름 전국 곳곳을 휩쓴 수해에도 나와 가족, 가까운 이웃에 큰 피해가 없었음에 안도하던 무심함의 소유자이며 환경오염의 우려에도 편리한 플라스틱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인간적인 인간인 것이다.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 없고, 이기적이며 자기 합리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성. 그러나 그런 인간성을 갖고 있어도 부끄러울 때가 있다. 인간이라 실수할 수 있는 건데도 부끄러운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때로 몇 년 혹은 몇 달씩 그런 부끄러움을 잊고 지내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잊고 지낸 부끄러움과 부끄러움을 잊고 지낸 스스로가 몹시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부끄러운 생을 살았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 속 요조도 아닌데, 그 첫 문장이 내 것 같던 순간도 있다.
"신뢰는 죄인가요."
같은 작품 속 혼잣말을 오래 곱씹은 날도 있다. 사람들을 의심 없이 믿다가는 큰 고통을 겪게 된다는 불신을 되새기면서 속으로는 "속은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게 맞는가 되묻던 시간들. 순진하다가 비난이 되고 영악해야 살아남는 세상이 정상인가에 대한 회의. 작은 불편을 호소했을 때 들이닥치는 더 큰 곤란의 장면과 들려오는 소식들에 과연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무사히 이 생을 살아낼 수 있는 건가 고민하던 답답함. 영화 속 영웅들처럼 힘이 있다면 정말 부끄러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기도 했다. 큰 힘이 있다면 큰 책임을 질 텐데, 지금 내겐 큰 힘이 없으므로 괜히 나서면 곤란해진다는 합리화가 분하면서도 부끄러웠던 거다. 정말 분한 날에는 이래야 했다거나 저렇게 했다면 어떨까 별 소용도 없는 고민으로 오래 뒤척이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결국 어디에 호소하지도 못하고 혼자 일기장에 데스노트를 쓰듯 울분에 찬 이야기를 남기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다툼에서 매번 패배했다. 내가 절대 옳다고 생각할 때, 다른 사람도 그 옳고 그름을 알고 있을 거라고 믿을 때 더 처참하게 패배했다.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완강한 반박과 되돌아오는 분노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괜한 일을 벌여서 일이 커지고 말았다. 앞으로 이런저런 보복들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힘이 없는데, 그만한 여력도 없는데 쓸데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는 현실 인식과 하지만 정말 잘못한 건 그들이 아닌가 하는 믿음 사이에서 배가 되어 돌아온 고통을 견뎌야 했다.
나는 겁이 많으므로 결국 이렇게 일기장 앞으로 도망쳐올 수밖에 없었다. 프로불편러가 되지 못하는 아마추어불편러로. 그들의 앞에서 외치지 못하는 소리, 다 하지 못한 말을 여기 백지에 적어두는 것이다. 다수의 공감, 지지가 없는 올바름은 또 다른 독재다. 다수가 공감하고 올바르다고 지지한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는 최후의 보루, 후방이면서 가장 치열해야 하는 전방이 된다. 당당하게 정당한 불편을 말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해결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배워야지 하면서도 나는 저렇게는 못하겠다는 현실 인식이 뼈 아픈 날도 많다. 그들이 입을 불이익이나 보복이 남일 같지 않아서 걱정되기도 하고 의외로 수월하게 해결되는 문제에 겁 많은 스스로가 무안하기도 하다. 이유 없는, 핑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는 옳다고 믿는 세계를 관철하기에 나는 너무나 약하다. 방구석이나 책상머리에서 키보드를 두드릴 때 가장 강한 것이다.
내가 가진 작은 힘에 따르는 가장 큰 책임은 기억하고 곱씹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논쟁으로 판가름하지 않고 풀어놓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만 어느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기억하는 것과 지금 아무렇지 않으므로 앞으로도 아무 생각하지 않는 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융통성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원칙을 기억하면서 현재에 무해한 것을 허락하는 일. 거기에는 나의 편리함만큼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음이 전제되어야 함을.
앞으로 적어나갈 불편한 것 대부분이 그런 문제일 거라고 생각한다. 당장 문제가 되지 않으나 언제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예감으로 지켜지지 않을 때 불편했던 일들. 불이 났을 때가 아니라면 차를 세워둬도 아무 문제없었을 소방차 전용 주차장이 불이 났을 때 절대적으로 중요해지듯이 '평소에는 아무 문제없었다', '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느냐'는 변명이 뒤따르는 이야기들이 여기에 남을 것이다. 나의 불편함이 우리의 불편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나의 편리함이 어떤 위험들을 일으킬 수 있을지 상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부끄러움을 안고. 내내 부끄러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