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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Oct 24. 2024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지금도 교보문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선 자리가 달라졌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교보문고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들이다. 


 독자의 자리에 있을 때 교보문고는 길을 잃고 싶은 책의 숲에 난 한 갈래 길이었다. 높은 서가 사이를 오가며 끌리는 대로 책을 꺼내 읽어도 좋은 열린 공간이었다. 서점 안에 카페가 생기고 문구 코너의 크기가 커졌어도 여전히 교보문고는 교보문고였다. 

 특히 마음에 든 건 '서울 한 복판에 서점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신용호 회장의 마음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슬로건이었다. 다양한 기획과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들이 이어지는 그 공간은 출판계의 천국처럼 보였다.


 짧은 출판사 근무 경험동안 알게 된 건 교보문고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전혀 다른 기업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고 관리는 물론 공급률도 달랐다. 운영이거나 경영상에 어떤 필요 혹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그 같은 방법을 택했겠지만 담당자로서는 똑같아 보이는 두 업체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정신 차려야 했다. 

 출판도시 문화재단에서 단기 프로젝트 기간 동안 일할 때도 도서의 기증, 혹은 제공 등 업무에서 교보문고와 인터넷 교보문고는 전혀 소통하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 


 책방을 시작하고 얼마나 됐을까. 교보문고에서도 총판 업무를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어쩌면 다른 루트, 혹은 작은 이익이나마 생기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결국 계약하지 않았다. 교보문고는 그냥 계속 서점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도서 공급을 더 여러 군데서 받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팔아봐야 얼마나 팔겠나 하는 마음. 교보는 문고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올해 10월 10일이 됐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그의 책은 좀처럼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얼마 후 교보문고에서 한시적으로 한강 작가의 책을 팔지 않겠다는 게시물을 올려서 깜짝 놀랐다. 어디서 놀랐는가 하면, 11월 1일부터 다시 판매를 재개하겠다는 부분에서다.


 10월 11일 주문 분을 어제서 받았다. 거의 2주일이 걸린 셈이다. 

그럼 지금 주문하면 언제쯤 받게 될까.

짧게 잡아도 1주일은 소요될 것이다. 그러면 11월이 된다. 

독자인 채로 남았더라면 "와! 역시 교보문고!!" 하며 감탄했을 텐데.

사짜라도 나 역시 서점인이므로 속사정을 조금 아는 한 그럴 수가 없다. 이건 그저 기만일 뿐.


 지금도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오래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일인가 하면 오프라인 매장 판매량을 집계해서 매긴다는 점을 활용하기 위해 직원, 지인을 동원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리는 일이 있던 것이다. 서점에서 그런 방식을 인지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일 이후 책과 출판세계에 품었던 동경, 환상, 낭만이 부서진 건 사실이다. 매출과 성과로 말해야 하는 세계인 것이다. 살아남아야 하므로, 확장을 위한 동력이란 금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현실은 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비로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다시 10월 31일까지 오프라인 매장에서 한강 작가의 도서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교보문고 오프라인 매장의 발표를 생각한다. 그건 분명 좋은 일이고, 누군가는 환영할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일 뿐이고, 온라인 서점으로 달려가게 할 일이고, 도서의 재고를 기다리는 지역의 동네 서점에게는 발만 동동 구르며 애태우는 시간일 뿐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었다는데, 그 사람이 만든 책은 어떤 사람을 만들어 버린 걸까.

언제나 불황이라던 그 세계에 일어난 이 작은 불길은 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지금 이대로는 찰나에 불과한, 한 순간의 꿈에서 깨어나 고통스러운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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