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과 항해사들의 보다 발전된 관계를 바라며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그 일에 싫증을 내며 기피하고 싶은 심정을 가지기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중에서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완수하려고 노력하며 산다는 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또한 쓸데없이 책잡히지 않으려 애를 써가며 살아간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선박에서는 항해 중 선교 당직사관으로 3인의 항해사가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이항사의 00시-04시, 12시-16시,
일항사의 04시-08시, 16시-20시,
삼항사가 08시-12시, 20시-24시, 이렇게 한사람이 네 시간씩 두 번에 걸쳐 하루 여덟 시간의 항해당직을 갖는다. 여기서 초임사관인 삼항사의 근무시간은 선장의 근무시간으로 볼 수 있으며 사실 처음 배를 타는 신참의 삼항사가 승선하면 선장은 일일이 당직수칙등과 필요한 현장의 지식을 가르쳐 주며 몇 항차는 함께 당직을 서다시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당직 사항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삼항사로 태어나고, 선장의 선교 출입도 많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삼항사로 근무를 시작 차츰 상위 직으로 진급 승진하여 근무하는 선장되기 전의 사관들은 대부분 자신의 담당 당직시간에 선장이 선교에 올라오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경향이 짙다.
예전 삼항사 시절 선장으로부터 받은 교육을 당시는 받아 들였지만 머리가 커가면서 - 진급하면서 - 부터는 그런 일들이 자신에 대한 간섭이고 쓸데없는 노파심에 의한 잔소리쯤으로 치부하는 나쁜 악습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되는 모습니다. 특히 일항사가 되면 곧 선장을 바라보는 직책인 만큼 어떤 면에서는 자기가 모시는 선장의 일하는 모습에서 좋은 점을 배우려고 노력하며 어느 사관보다도 더욱 선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터인데도,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당직 중에 선장이 브리지에 오면 나도 이제 곧 선장이 될 사람인데 그 체면을 봐 주지도 않고 무엇 때문에 내 당직 시간에 나타난단 말인가? 하는 마치 선장이 자신의 실력을 불신하기에 간섭하려고 나타나는 양으로 곡해 해가며 싫어하는 사람도 여러 명 경험 했었다.
한편, 선장의 경우로 보면, 이제 나이도 들을 만큼 들었고 하루 종일 당직을 서지는 않아도 24시간 당직이라는 직책상의 멍에와 지휘관이 겪어야 하는 외로움까지 간직하며 나이에 따른 새벽 일찍 깨는 습관까지 생기면 배안에서 갈 곳이 어디겠는가? 자연히 선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시간(새벽)에 선교당직을 서고 있는 일항사는 좀 편하게 시간을 보내며(?) 당직 서려던 기회도 빼앗기는 형국이니 자연히 버겁고 힘들며 싫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추측이 된다.
따라서 이런저런 상황을 환히 꿰어 알고 있는 선장이 마냥 쉽고 편한 마음만으로 선교에 들락거린다고 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 동안 말라카 해협과 싱가포르 해협을 통항 하느라 긴장했던 신경의 피로가 어제 저녁 싱가포르 해협을 마지막으로 빠져나와 해방되니 모처럼의 깊은 숙면으로 평소보다 늦게 기상 했기에 아침 운동을 생략한 채 선교로 올라갔다.
아직도 싱가포르 항로가 주는 선박의 몰려듬과 흩어짐이 남아있는 해역이어서 인지 선박의 모습이 여러 척 눈에 뜨이는데 그중에는 우리배의 우현에서 자신의 좌현을 보이며 접근하는 국제 충돌예방법 15 조 규정인 CROSSING SITUATION(횡단상태) 경우를 적용 시켜야하는 침로의 횡단상황이 발생되어 있는 배가 보인다.
거리가 5마일로 가까워질 때 까지도 우리 당직사관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우리더러 오른쪽으로 틀어 피해 달란 말인가” 하고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중얼거린 후 곧 오른쪽으로 조타하여 좌현대 좌현으로 통과해 가도록 지시를 했고 그대로 실시하여 두 선박 모두 좌현 대 좌현으로 무사히 통과 하였는데 이일을 하고 난후 나의 느낌이 혹시나 일항사가 고깝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다음 승선부터는 선장으로 나가게 된 선장 진급 순위 일위를 받아 놓고 있는 이 친구가 그렇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과 혹시 그런 마음을 가졌을 것에 대비하여 기회를 보아 차근히 이야기를 하여줌으로서 그가 앞으로 행 할 선장 직무에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