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액땜이겠지

by 김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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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코로나19도 이겨내고 희망찬 내일이 다가오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폭설이 내리기 전까진.


춘천에 촬영 겸 멘토를 해주셨던 교수님을 만나러 갔다. 춘천에서 군 생활을 했던지라 춘천도 반갑고 교수님도 반가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사는 얘기, 일 얘기 모두 즐겁게 나누고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서울로 출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2021년은 산뜻한 출발이었다.


화투패를 맛깔나게 쪼듯 하늘이 나를 쪼인 시간은 대략 춘천을 벗어나고 30분쯤 됐을 때다. 하늘에서 예쁜 쓰레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눈이다. 군 생활 때도 지긋지긋했던 눈이 윈도를 두드리더니 점점 시야를 가렸다.


서울에 도착했을 땐 이미 폭설로 변해 도로는 분으로 뒤덮였다. 지인 사무실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정확히 5분 뒤, 머릿속에 가느다란 스파크가 스쳐 지나갔다.


“어라? 내 지갑 어딨지?”


지갑이 사라졌다. 차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외투를 찾아봐도 마찬가지, 다시 지인 사무실로 돌아가 찾아봤으나 도통 보이지 않았다. 평소 워낙 지갑을 잘 잃어버려 덤덤하게 넘어갈 법도 하지만 하필이면 전날 현금을 인출했다. 거기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복권이 한 장 들어가 있었다. ‘아, 그거 1등짜린데’.


그래 액땜한 셈 치자. 그렇게 생각하고 화를 삭인 채 도로에 올랐다.


웰컴 투 헬! 올림픽대로는 지옥으로 가는 하이패스였다. 폭설로 인해 차들이 옆으로 갔다 뒤로 갔다 정신이 없다. 오르막길에서 길 잃은 들짐승처럼 헤매는 차들을 헤치며 겨우겨우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왔다.


“xx~”


육두문자가 흘러나왔다. 올림릭대로를 빠져나와 당도한 동작역, 교차로에서 빌빌거리는 차들이 통행을 가로막았다. 클랙슨도 소용없고 돌아갈 길도 없다. 그저 한없이 기다릴 뿐. 망부석이 될지, 돌부처가 될지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동작역을 빠져나오는 데 대략 3시간을 걸린 것 같다. 그 3시간 동안 생리현상이 문을 두드리지 않은 사실에 감사할 정도. 아마 생리현상이 방문했다면 하늘로 찾아가 조물주와 맞짱 떠서 내가 짱 먹었을 듯.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 하루를 정리할 기운도 없이 잠에 빠졌다. 씻고 자야지 싶어 일어나 시계를 보니 7시다. 퇴근하자마자 출근이라니.


지갑을 잃어버린 탓에 구걸해서 병원 진료를 받았고, 차에 기름을 넣다가 카드가 없어 중간에 멈춰야 했다. 백 원짜리 동전을 모아 간신히 저녁밥으로 김밥을 사 먹었는데 하필 그게 또 유통기한이 지났는지 복통을 일으켰다. 변기에 들락날락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육두문자와 액땜이려니~하는 자기 위안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