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스물여덟 살이 된 여성입니다. 현재 졸업 논문 작성이라는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갑갑해서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선생님(인생에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시는 점에서 좋은 선생님 같으셔서 이렇게 적었는데, 괜찮으신지요?)블로그를 보게 되었네요.
그곳에서 참 많은 사람들의 고민 내용을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제 바보 같고 어리석은 고민도 선생님께서는 따뜻하게 봐주시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상담 안내서에 최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써달라고 하셔서, 제가 쓸 수 있는 한 구체적으로 쓰려고 해요. 다만 제가 솜씨가 없어서 다소 내용이 좀 많이 길고 두서없을 수 있음을 먼저 양해 부탁드릴게요.
저는 지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졸업 논문을 준비 중인 석사 2학년 학생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흔히 말하는 모범생의 전형이었고, 한국에서도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명문대에서 어문계열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미지출처 : https://wonderfulmind.co.kr/4-foolproof-methods-overcome-anxiety-immediately/
초등학교 때부터 너무 입시, 시험 위주의 공부에 시달린 탓인지 그 반작용으로 대학생 때는 정말 공부 제대로 안하고 열심히 놀았었네요. 그래서 사람들도 새로 만나보고, 여러 가지 동아리에 들어가서 공연도 하는 등, 지금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 학점 관리 같은 것은 뒷전으로 한 채 정말 즐기는 대학 생활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렇게 놀았으면서 적당 수준의 학점이 나왔는지 신기할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졸업을 앞두고서 전공 지역으로 교환학생을 일 년간 가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대충 1년 바짝 다녀와서 취업준비한 다음 일해야지, 이런 안일한 생각이었죠. 그러나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자극, 내가 전공으로 삼고 있었던 이곳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지금은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역시 한국인으로 그때 현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와의 만남을 통한 깨달음 등이 이유가 되어, 결국 귀국하고서 대학원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책 읽는 것, 깊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데다가, 졸업을 앞두고서 논문을 쓰던 경험이 너무 재미있던 것도 있었고요. 물론 집에서는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도 집안 환경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 대한 말씀을 간략하게 드리자면 저는 1남 2녀 삼남매 중 맏이로 연년생 여동생과 다섯 살 차이 남동생이 있습니다. 저희 남매는 정말 부모님 덕에 비록 풍요롭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굶거나 하고 싶은 것을 아주 못하는, 그런 삶은 살지 않았네요. 다만 여기 적으면서도 부끄러운 문제지만 여동생이 심리적으로 취약해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하루도 집안이 편안한 적 없었다는 게 걸림돌이었죠.
저 역시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사춘기를 거치면서 비뚤어진 남동생 문제 등이 겹치면서 저희 집은 과도한 지출이 늘어났고 그 때문에 제 해외 유학을 지원해 주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녀로서 집안에 책임을 지우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렇다고 제 인생에서 정말 처음으로 제가 원하는 진로를 포기한 채, 취업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아직 무슨 일을 하고 싶지도 않은 상태에서, 괜히 스펙 쌓기에 돈을 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장학금 제도를 찾아보았고 운 좋게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게 되었네요. 여기까지는 저도 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문제는 전공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제 전공은 ‘지역학’이라고 해당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을 복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사실 학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게 이게 마치 경영학처럼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다가 역사도 짧아서 제대로 된 연구론도 찾기가 힘든 편입니다. 최근 들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역 전문가를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투자가 이루어지고는 있으나(특히 미국 등에서요) ‘학자’로서의 길을 가고 싶었던 제가 봤을 때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네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전공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 실체를 잘 몰랐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대학원을 가야 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석사를 하려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셨고, 저는 그분들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최근 유행하는 학문인 지역학을 하면 취직이 잘 될 거다! 그런 논리를 펼치면서 본 전공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제 본래 관심사는 종교학, 역사학 같은 좀 더 인문학적인 분야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지역’에 대한 모든 것을 공부하는 학문인만큼 분명 제 관심 분야에 대한 정보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공부를 시작해보니 생각보다도 부실한 학과 커리큘럼과 학교 정책은 제가 석사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나? 라는 의문을 주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선택한 장학제도는 해외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해당 국가에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정해준 학교에서만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제 전공 국가에서는 외국인은 관련 프로그램으로만 장학생을 뽑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제가 지금 공부하는 학교는 이곳에서도 나름 쳐주는 곳이지만(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대표 대학교 열군데 안에 들어가나 SKY급은 안 되는?) 한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되도 않는 자존심 때문일까요. 앞에서 말한 기대에 못 미치는 시스템에다가 더해 한국에서 가졌던 그 알량한 자존심이 더해져서 공부에 대한 열정이 확 식어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외국어 실력으로 공부하는 거라 남들보다 훨씬 열심히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공부하며 제 선택에 회의감을 크게 느꼈어요. 마음도 꽁해있고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고요. 오죽하면 제 남자친구가 좋은 학교 프로그램이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사실 제 남자친구는 연인 사이를 떠나서 정말 객관적으로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했기에 그게 다 가능했던 것인데도 제 어수룩한 마음은 끊임없이 제 선택에 대한 원망,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심지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원하는 학교로 가지 못했다면서, 집안 사정을 원망하고 부모님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기도 했네요. 제가 하고 싶은 종교학과 역사학을 다시 공부하겠다며, 다른 학교에 지원을 내기도 했고요. 물론 얄짤없이 떨어졌지만요 ^^;;
그런 식으로 약 1년 하고도 2,3개월을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제가 내린 결론은 제가 지금 하는 공부에 만족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렇게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도 있었는데, 아예 제 분야가 싫은 것도 아니었고, 이왕 공짜로 시작한 공부 마무리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이왕 하는 거 논문이라도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제 전공과 접합시켜서 잘 마무리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다만 문제는 너무 방황을 오랫동안 해버린 탓에 정작 제일 중요한 전공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얻은 게 별로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서, 논문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계속 자괴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불러일으키네요. (왠지 이제야 본론에 들어선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ㅠㅠ)
저는 일단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그냥 일반 직장에 취업하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습니다…... 성격이 조직 생활에 잘 안 맞기도 하고, 술도 못 마시고, 무엇보다 해외에서 살면서 우리나라의 부조리한 직장 문화와 시스템에 개선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직장에서 제가 이 회사를 위해 무언가를 기여한다는 점을 느낄 수 없다는 게 가장 싫었습니다. 유학 전 잠깐 아르바이트식으로 일해본적이 있는데, 이왕 어차피 모든 일이 힘든 거면 차라리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재밌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크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좀 더 좋아하고 재밌는 공부를 업으로 삼아서 연구원이나 학자로서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으로 석사를 택한 것이고요. 그런데 정작 석사 과정에 들어와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정작 얻은 것도 없고, 회의심만 생겨버린 탓에 이제는 공부에 대한 의지도 생기지가 않네요. 즉 현재 제 상태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다는 거네요.
그나마 직장 생활과 학문,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공부가 약간은 우세하지만, 이마저도 지금 제가 이렇게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박사를 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또 만약에 박사를 한다면 이번만큼은 지금 제가 하는 분야와 원래 관심 있었던 분야를 좀 합치는, 그런 형태의 공부를 하고 싶은데, 제가 원래 관심 있어 한 종교학 쪽에 대한 지식이 얕다보니까, 전문적으로 종교학을 다시 공부하지 않고서 제가 박사를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만약에 시간, 돈, 언어 등의 모든 장벽만 없다면 종교학 석사를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현실적인 장벽(예를 들면 여자로서 결코 적지 않은 나이, 결혼 문제, 경제적인 문제, 진로 문제 등)이 마음에 걸리고요. 남자친구는 석사를 다시 하고 싶으면 해보던가, 아니면 박사 과정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분야도 따로 열심히 연구를 해 성과를 내라, 이렇게 위로를 해주고 있습니다만…제가 결정장애가 있는데다가 너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마음이 자신이 안 생기네요. 게다가 졸업 논문도 제가 원래 쓰고자 했던 방향과는 좀 다른 쪽으로 가면서, 이걸 통해 내가 성과를 낼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쓰고 나니 제가 2년을 정말 제대로 알차게 살지 못했다는 게 보이네요. 처음 시작을 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제 인생을 제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는 생각에 두근두근하고 의지에 가득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나이만 먹고 얻은 것도 없는, 어떻게 보면 실패자가 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합니다. 그나마 가족들과 남자친구의 위로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견디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너무 길고 두서없는 길로 선생님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처음에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제 초라한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이과생처럼 심플하고 이해되기 쉽게 쓸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늘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라 그런지 실타래처럼 풀풀 이것저것 말하게 되네요.
지금 꿈도 없고, 의지도 없는, 게다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저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선생님의 따뜻한 독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시 한 번 기나긴 이야기를 들어주신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리며, 한국은 지금 날씨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곧 있을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늘 평안한 하루되시길 기도드리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000 올림
* 글쓴이 정철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커리어 코치로, 대학교수로, 외부 특강 강사로, 작가로, 칼럼니스트로, 상담가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KBS, SBS, MBC, YTN, 한국직업방송 등 여러 방송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연간 200여 회 강연활동과 매월 100여명을 상담하고, 인터넷상으로는 1천만 명이 방문한 블로그 ‘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로도 활동하며 ‘따뜻한 카리스마’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다.
나사렛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대구대학교에서 취업전담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동아대 강의전담교수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진로백서>, <따뜻한 독설>,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가슴 뛰는 비전> 등의 다수 저서를 집필했다. 사단법인 한국직업진로지도협회를 설립해 부회장으로서 대한민국의 진로성숙도를 높이고자 힘쓰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가슴 뛰는 꿈과 희망찬 진로방향을 제시하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언론으로부터 닉네임까지 얻으며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취업진로지도 전문가 과정을 운영하며 400여명의 전문가를 배출해왔다. 궁극적으로는 진로성숙도를 높여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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