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의 전화

이직의 타이밍

by 커리어 아티스트

요즘 마켓에서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건지 헤드헌터의 전화가 슬슬 오고 있다.


나는 이직을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는 프로이직러로서 전화가 올 때는 어느 정도의 조건만 맞다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일단 시도라도 하는 편이었다. 면접 경험 자체가 하나의 연습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헤드헌터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던 중 그녀의 질문에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지금 다른 기회를 찾고 계시나요?


모든 기회를 차단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평생직장이란 것은 없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조건이 맞다면 일단 면접을 시도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리 망설여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지금 있는 회사에서 딱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는 건 아니라서 크게 내키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 경력이 15년 이상이 되고 나니 업계가 좁은 것도 있고, 담당해야 할 고객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평판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우선시되고 있다. 업계 이벤트에 나가면 다 아는 얼굴들이 때문이다. 또한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에게 신경 쓸 일이 많아질 것 같아서 워라밸도 역시 고려사항에 빠질 수 없는 것 같고.


사실 헤드헌터가 새로 제시한 롤은 객관적으로 보면 연봉이나 직급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묻고 따지지도 않고 도전했을 텐데,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보는 게 낯설었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길어지면 커리어의 야망도 쪼그라드는 걸까. 점점 모험을 꺼리게 되고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리어에 대해서 여전히 열정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또다시 긴장하면서 적응하고 사람들과 네트워킹하고 배우고 하는 과정들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조직은 없다는 걸 깨달아서 일수도, 어딜 가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기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산책을 하며 생각정리를 하던 중, 오랜만에 지인 언니랑 전화통화를 했다. 같은 업계에서 있어서인지 조금만 이야기해도 뭔지 알 것 같은, 혹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찐한 공감의 대화가 너무 반가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언니 덕분에 저절로 생각정리가 되었다.

어차피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미리 걱정할 필요 없고, 안되면 마는 거고, 된다고 하면 그때 나의 마켓 밸류를 토대로 협상해볼 여지가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는 것. 일단 면접을 통해서 시장에서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만약 그것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스킬 셋을 쌓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수 있는 기회라는 것. 듣고 보니 정말 앞서서 결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언니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서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나의 가치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당신 말고는 아무도 당신의 가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No one can figure out your worth but you

-Pearl Bai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