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역할이 트랙터의 도입으로 인해서 점진적으로 줄어들어 완전히 제거된 것처럼, 기계의 도입으로 인해서 인간의 역할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 바실리 레온티에프(Wassily Leontief)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실리 레온티에프는 198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약 40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인공지능(AI, Artifical Intelligence)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시점에 직장인들에게 더 위협적으로 들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인간의 역할을 빠르게 지워나가는 중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2023년 보고서에서 1,400만 개의 일자리가 매년 AI 때문에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2025년 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 기업의 41%가 2030년까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AI 때문에 나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주는 Chat GPT와 같은 AI 기술에 대한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전문가들은 AI를 최대한 열심히 공부해서 디지털 리터러시를 키우라고 주문하거나, 창의력·공감적 능력과 같은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관점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본질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직장인들이 지속가능한 커리어를 밟아나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이름이 아니라 저작권이 찍힌 자신의 이름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내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계약직 신분으로 일을 하던 영국인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 NGO의 법률 관련 컨설턴트로 근무하던 그녀는 자신이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사회초년생으로서 나는 '계약직'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4대 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즉 실력과 경험이 부족한 인턴과 비슷한 위치의 직장인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국에서는 자신처럼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며,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이력을 관리하기보다는 개인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은 정규직으로 올 수 있었음에도 계약직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그렇게 행동한 가장 주된 이유는 자신이 일을 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으로 귀속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9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회사에서 작성한 기획서나 제안서와 같은 '업무상 저작물'은 회사의 저작물에 속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회사에서 아무리 날고 기는 기획안을 제출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내가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가 예측한 것처럼, AI와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쉽고 빠르게 다양한 콘텐츠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면서 저작물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는 직장인들에게도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그녀가 내게 건넨 교훈은 대한민국의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 직장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가져다준다. 왜냐하면 노동 시장에서 계약직이 증가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플랫폼·AI 등과 같은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장기적인 노동 시장 구조의 변화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서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고용 구조를 계약직, 파견직,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등과 같은 단기 계약 중심의 유연한 방식으로 바꿀 니즈를 갖게 된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겸직 금지 정책이다. 과거 대부분의 기업들은 강력하게 직장인들에게 겸직 금지의 의무를 준수할 것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SNS, 유튜브 등과 같은 1인 미디어 플랫폼의 발전으로 인해서 겸직 금지 조항은 과거에 비해서 완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만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직장인들의 대부분은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업무에 투자하지만, 이러한 노동은 대부분 '일회적'으로 끝나버린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이직·퇴사·휴직 등을 하는 순간 자신의 노력과 경력이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경제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실존의 위협마저 느끼면서 신음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AI 시대의 직장인들은 기업이 아니라 저작권에 배팅해야 한다. 회사에서 쌓은 지식과 노하우를 콘텐츠로 만들어낸다면, 이 콘텐츠가 저작권법에 의거하여 개인의 가장 강력한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2조 제1호
저작권의 핵심적인 원칙 중 하나는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Idea)'와 '표현(Expression)'을 구분하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표현'한 업무상 저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 든 '아이디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형태로 재가공함으로써 직장인들은 물리적인 수익과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자산을 늘려나갈 수 있다.
남미의 경제학자인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가 말한 것처럼, 모든 직장인들은 '죽은 자본(Dead Capital)'을 가지고 있다. 그가 제3세계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지닌 물리적 자본이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죽어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듯이,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며 쌓은 지식과 경험이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가오는 AI시대에 지속가능한 커리어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저작권이라는 법적 제도를 통해서 자신이 뇌에 저장되어 있는 노하우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늘 그렇듯이 기술의 진보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경고했던 것처럼, 기술은 자본가의 손에 의해 노동자들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물론, AI 기술은 잠재적으로 모든 개인이 손에 쥘 수 있는 지능형 생산수단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주장이 현재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AI 기술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활용한다면 개미들에게 자율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저작권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 개인의 이름으로 매체를 통해서 표현한 저작물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모든 직장인들이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영상을 플랫폼에 업로드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의 지적 자본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자본을 늘려나감으로써, 모든 직장인들이 정당하게 자신이 쌓아온 노하우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1. Wassily Leontief (1983). National Perspective: The Definition of problems and Opportunities.
2. World Economic Forum (2023). The Future of Jobs Report.
3. World Economic Forum (2025). Future of Jobs Report.
4. Hernando de Soto (2000). The Mystery of Capital.
5. Karl Marx (1867). Capital: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