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필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지명과 기관명, 인물명 등은 가상의 이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구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문콕을 당했어요."
"어디신데요?"
"행복마트 주차장이요."
"출동하겠습니다."
신고자의 말은 단호했지만, 그 말의 절반쯤은 흘려들었다.
하루에 한 건씩은 꼭 들어오는 문콕 신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무심코 문을 세게 열었다거나,
아이가 모르고 문을 열었다거나,
어디서 긁힌 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여기였던 것 같다고 하는 그런 부류의...
상대를 찾아낸다 해도 대부분은 몰랐다고 말하고,
설령 알았다 해도 형사처벌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실수로 인한 경미한 손괴는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설명을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납득하긴 한다.
조금 찜찜해하며 돌아갈 뿐.
현장에 도착해 손전등을 켰다.
조수석 문 아래를 비춰본다.
새끼손톱만 한 움푹 팬 자국.
페인트는 벗겨지고, 금속 표면이 드러나 있다.
"차량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나요?"
"아니요."
근처에 CCTV가 있다.
"영상을 확인해 보겠습니다만
실수였거나 다른 장소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말을 예고해 두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느 문콕 신고처럼 감정도 대응도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마트 사무실로 들어가 CCTV를 확인한다.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건 기기의 시간.
실제 시간과 다르면 전부 시간 낭비다.
다음으로는 차량 주차 장면.
의심 가는 시간의 좌우 차량의 움직임만 봐도 대부분 파악이 가능하다.
오늘도 그렇게 시작한다.
신고자의 차량을 먼저 확인하고 의심 차량들을 좁혀가던 중,
조수석 문 아래, 어딘가 낯설지가 않다.
몇 해 전, 부모님 댁에 들렀던 어느 날.
내 차 조수석 문 아래가 움푹 파여 있었다.
누가 얼마나 세게 문을 열었는지 흔적이 또렷했다.
작은 상처였지만 기분은 깊게 긁혔다.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가며 범인을 수색했다.
차종, 색상, 문 여는 각도까지 계산하며.
'잡히기만 해 봐라' 분노로 뒤덮였던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 밭일을 마치시고 돌아오시며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혹시… 차에 흠집 같은 거 났니?"
"응? 왜요?"
"새벽에 짐 좀 옮기다가… 내가 그랬을지도 몰라서. 미안하다."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그날
옆에 주차된 차 중 하나를 범인이라 단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확신했기에
아버지이셨을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타인을 향하던 분노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되돌아왔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화면을 가로지른다.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행인인 줄 알고 빠르게 넘겼다.
그런데 그 남자가 옆 차량 운전석 쪽으로 향한다.
'설마... 아니겠지?'
잠시 망설이다가
신고자의 차와 옆 차 사이 좁은 틈새로 몸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리고는 운전석 문을 열려고 애쓴다.
하지만 문은 반도 채 열리지 않았고,
몇 차례 더 시도하다 결국 포기한 듯
뒤로 돌아 조수석 문을 통해 차에 올라탔다.
일 분쯤 지났을까.
'쾅!'
옆 차의 운전석 문이 열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충격은 눈으로도 느껴졌다.
실수이기를 바란다.
두 번째 '쾅!'
이쯤에서 멈췄으면 좋겠다.
세 번째 '쾅!'
그 바람은 산산이 부서졌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뚝하고 끊어졌다.
이건 실수가 아니다.
그 남자의 행동은 고의적이었다.
고개를 들고 신고자를 바라봤다.
별일 아닐거라 넘겨짚고 지나치려 했던
동기마저 결핍된 나의 무기력함은
'실수'라는 말로는 가릴 수 없는
깊은 무안함으로 다가왔다.
"확인 결과, 조사해 볼 필요는 있겠네요."
"... 아, 그래요? 제가 괜히 예민하게 굴었던 게 아니었네요."
그녀는 안도와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내 눈을 피하며 웃었다.
웃음이라기엔 씁쓸했고
씁쓸하다기엔 복잡해 보였다.
그 표정 속엔 단순한 화가 아닌
우리에겐 사소했지만 그들에겐 절실했던
수많은 사건들이 남긴 감정이 고여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말속에서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함.
둔화된 감정 속에 감춰진 잊고 지냈던 감수성.
그것은 신고자의 몫이 아니라 나의 몫이었어야 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고
내 말투는 익숙한 절차에 잠겨 있었다.
사건은 단순할 거라 넘겨짚었고
피해는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며
고의는 아닐 거라 단정했다.
그녀에게 있던 예민함은
정작 나에게는 없었다.
내가 본 건 사실이 아니라
익숙한 틀에 맞춘 판단에 불과했고
내가 들은 건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별 일 아닐 거야'라고 반복하던 내면의 회피였다.
한 사람의 분노와 불안을 그저
'실수'라는 단어 하나로 덮어버리고 있었다.
"…"
그녀의 복잡해 보이는 그 웃음 앞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양치기 소년이 항상 거짓만 말한 건 아니었다.
늑대가 나타난 그날
그는 진심으로 외쳤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의 판단은
사실이 아니라 기억과 익숙함에 기댄 반사적인 것이었다.
"쟤는 늘 거짓말을 하니까."
그 선입견이 진짜 위협 앞에서 눈을 감게 만들었다.
참극은 결국 '선입견'과 '속단'에서 비롯됐다.
선입견은 판단을 흐리고
속단은 진실을 가린다.
그날 나는
한번 더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