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강원도 인제 겨울 백패킹
06년 2월 폭설 속, 아침가리골을 넘다
06년 1월 강원도 깊숙이 자리한 아침가리골로 떠났던 1박 2일간의 동계 백패킹은 내 인생에서 짜릿한 모험 중 하나였다. 한겨울의 깊은 산 속, 눈 덮인 길과 얼어붙은 계곡을 헤치며 우리는 찟겨진 '조각지도' 하나에 의지한 채 구령덕봉으로 출발했다.
출발 당시에는 맑았던 하늘이었지만, 산속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오후가 되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거세져 폭설로 변했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나아가던 중,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는 나침반도 없이 월둔을 관통하는 유실된 비포장길을 몇차례 지프와 바이크로 다녔던 기억 과 감각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잡이였다.
한참을 헤매다 마주한 것은 암릉을 덮은 눈과 얼어붙은 낭떠러지였다. 돌아가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눈 속에서 길을 다시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는 아이젠의 발톱 하나 하나에 의지해 조심스레 낭떠러지를 건너기로 했다. 눈과 얼음이 뒤덮인 가파른 경사에서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한순간의 실수라도 저 아래 깊은 계곡으로 떨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계곡의 눈길을 헤치고 겨우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눈길 사선을 넘어오느라 방향은 잊었고 지도는 무용지물 이였다 해거름이 지나는 어둠과 쌓인 눈으로 세상은 온통 검푸른 모습이였다
방향상 폐교가 근처에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찾아갔다. 눈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 폐교는 마치 오랜 시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곳에 있었다.
창문이 깨지고 문짝이 삐걱대는 폐교 내부는 황량했지만,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였다. 마른 나무를 주워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동상에 걸릴 듯한 손을 녹이며 따뜻한 커피한잔에 온몸은 피곤했지만, 폭설 속에서 길을 잃고, 낭떠러지를 넘고, 폐교에서 맞이한 이 겨울밤은 그 어떤 여행의 경험보다 강렬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고, 다시 길을 나섰다. 눈 덮인 산길은 여전히 험난했지만, 우리는 어제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지금은 아침가리골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한겨울의 거친 눈보라 속을 헤쳐 나가던 그 순간이 선명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새로운 길을 향해, 또 다른 모험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