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늙은 모자가 있는 풍경

[안치용의 프롬나드]

by 안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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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많이 늙었네.”

오랜만에 보는 아들 얼굴을 보시다가 식사 중에 한 말씀한다. 별말씀을 다하신다. 중늙은이 된 지 이미 오래인데. 일률비교가 어렵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는 나보다 어려서 며느리 보았고 손자손녀도 보았다. 지금 죽어도 요절 소리를 못 듣게 된 지 한참이다.


내가 보기엔 어머니가 더 늙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 즈음이 되어서야 마주하게 된, 그야말로 노모는 영락없는 꼬부랑 할머니. 낙상의 후유증으로 걷는 게 마음대로 안 될뿐더러 계단 오르기는 더 버겁다. 화장실을 물어봐서 근처까지 안내했더니, 혼자 갈 수 있다며 손을 뿌리치고 꼬부랑꼬부랑 걸어간다.


서로를 늙었다고 생각하는 모자가 함께하는 점심. 전화로 한 얘기를 또 반복하는 어머니 앞에서 아들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갈비탕 속의 갈빗살을 발라내는 데 집중한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불확실하지만, 내 관점에 아마도 소가 살았을 때 땅을 보는 쪽에 붙었던 살은 잘게 잘라서 국물만 있는 어머니 갈비탕 그릇에 재투입하고, 심장을 비롯한 소의 내부와 붙어있던 쪽의 살은 통으로 발라 내 입으로 들어온다. 사실 내 입안에서 씹힌 부위가 쫄깃해서 갈빗살의 더 맛있는 부분이지만, 미각도 흐릿한 노인네 입안에선 제대로 씹히기 힘들어 이렇게 뼈를 경계로 안과 밖이 분리된다.(소 갈빗살의 안과 밖을 제대로 파악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건너편 모자는 이쪽 모자보다 더 늙었다. 먹고 나가는 저쪽 어머니는 거의 땅에 붙어서 걷는다. 아들 허리는 내 허리 정도로 꼿꼿해 보이지만 어쩐지 그의 어깨 위에, 내가 진 세월보다 많은 세월이 올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 다과를 마주한 모자. 옛날 같으면 과도를 빼앗을 텐데, 지금은 과육의 거의 반을 껍질과 함께 버리는 아들의 사과깎기를 대충 바라본다. “사과가 맛있네.”


며칠 전 합정동 뒷골목에서 만난 어느 꼬부랑 할머니. 폐지가 산만큼 쌓인 리어카를 과속방지턱 앞에 두고 그 앞에 서서 멀리서부터 나를 바라본다. 리어카 미는 데 익숙하지 못하여 턱을 넘는 과정에 사과상자 같은 게 떨어진다. 약한 동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조금만 더 밀어달라고, 약속에 늦지 않을 만큼만 리어카를 밀고 갈길 간다. 뒤돌아보니 ㄱ자 몸을 하고 리어카를 미는 할머니 등 위로 겨울바람이 묵직하게 지나간다.


라디오 뉴스에 경부고속도로 정체가 심해 밤 10시쯤 해소될 것 같다고. 잘 빠지는 올림픽대로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PC 앞에 할 일이 쌓여 있다. 확연히 쇠약해진 내 오른손 중지와 자판을 번갈아 쳐다보다 PC 부팅 버튼을 누른다. 어머니는 낮에 혼자 집에 있을 때 식탁에 앉아서 옛날 살던 집이 있던 방향으로 창밖을 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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