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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Jul 26. 2020

남편 살해범에겐 변호사 딸이 있었다

영화평 '결백', 정의에 대해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과 전개를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결백>은 제목 ‘결백’에서 드러나듯 크게 보아 법정 드라마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알게 되겠지만 ‘결백’이란 단어는, 각본까지 쓴 박상현 감독의 승부수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어머니를 유능한 변호사인 딸이 어머니의 결백을 입증한다. 이 한 문장에 조금씩 살이 붙으면 영화가 만들어진다. 살인 용의자인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고, 어머니를 구해내는 딸은 오래 전 고향을 떠나 사실상 가족과 의절한 상태이다. 살인사건은 게다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일어난다. 딸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디테일의 명과 암


<결백>의 스토리는 처음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갈수록 살이 붙어가며 복잡해진다. 변호사인 딸이 치매 걸린 어머니의 결백을 증명하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의 성패는 복선과 음모, 그리고 반전을 어떻게 배치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텐데, 되치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색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영화는 먼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을 보여준다. 이어 기억을 잃은 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내몰린 어머니의 체포장면을 가족과 인연을 끊고 서울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딸이 TV로 보게 된다. TV 자막은 다음과 같다.


“대천의 장례식장에서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 발생. 용의자 긴급 체포“


살인사건 용의자 ‘화자’는 배종옥이, 어머니 화자의 결백을 밝히려는 변호사 '정인'을 신혜선이, 영화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인 악역 '추 시장'을 허준호가 맡았다. “추악한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담은 무죄 입증 추적극”이란 것이 영화사의 설명인데, 이 설명과, 영화와는 무관해 보이는 영화 도입부의 사건이 결말을 암시한다. 결백을 밝힌다기보다는 무죄를 입증하려고 한 것이 이 영화 플롯의 핵심이다.


감독은 변호사 정인에 의한 또 다른 ‘무죄 입증’ 사건을 모두에 배치하여 관객에게 자신이 영화를 어떻게 풀어갈지 그 실마리를 던져놓는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화자는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대부분 딸인 정인을 알아보지 못한다. 치매 걸린 사람이 살인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관객은 직관적으로 화자의 ‘결백’을 받아들이면서 정인이 악당들에 맞서 어떻게 ‘결백’을 증명하여 해피엔딩을 끌어낼지를 기대한다.


정인이 사건을 추적함에 따라 악당 중의 악당 ‘추 시장’과 마을 사람들의 과거 행적, 그들이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밝혀지며 영화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취하게 된다. 부당하게 살인자로 몰린 늙고 병든 여인과 그를 지켜내려는 그의 딸. 악당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딸의 '어머니 무죄 입증'을 저지하고 급기야 살해까지 기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영화에서 해피엔딩이 정해진 결말이라고 할 때 그러한 방해책동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악당들은 응징되고 억울한 여인은 무죄를 입증 받는다. 예상할 수 있고 실제로 영화 <결백>에서 적용된 스토리이다. 그러나 이 스토리는 안과 밖이 다르다. 앞서 말한 되치기가 일어난다.


‘무죄 입증 추적극’이란 컨셉에 반영된 이 영화의 되치기 기술은 ‘결백’과 무죄입증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구사되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관객이 변호사 정인이 구사한 되치기에 불편해 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법적 정의라고 하는 것이 현실에서 작용할 때 ‘사법적’이란 수식어를 떼어난 정의 자체와 어긋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법적 판단은 개인이 행한 어떤 구체적 행위의 무죄 유죄를 따진다. 그것은 법률 전문가 혹은 훈련 받은 사법관료들에 의한 영혼 없는 기술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보편적 법 감정은 구체적 행위보다는 어떤 사건에 휘말린 개인이 처한 맥락을 본다. 따라서 때로 보편적 법 감정은 사법적 판단에 따른 유죄에 대해 ‘결백’하다고 상이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영화 <결백>은 이러한 어긋남을 파고들었다. 긴장과 재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전반부에 ‘누명’과 ‘결백’이란 이항대립을 만들어냈다면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후반부에 ‘유죄’와 ‘정의’를 대립시킨다. 결국 180도를 돌린 게 아니라 360도를 돌린 게 되는데, 그렇다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영화의 출연자들이 산출한 극중 의미의 위상은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한 사건의 무죄 입증은 결말의 무죄 입증과 겹쳐지며 수미상관을 취하지만, 그 외형상의 동일성은 질적으로 커다란 윤리적인 차이를 내포한다. 이처럼 끊임없는 되치기가 영화 내내 작동한다.


이러한 플롯상의 재능은 칭찬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되치기를 위한 잔기술이 너무 많이 들어가 영화의 완성도를 어느 정도 갉아먹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좋은 착상에 어울릴 법한 큰 기술로 승부를 보았다면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기에 안타깝다. 영화든 소설이든 픽션은 관객과 독자의 개연성 감각에 호소하며 공감을 확보하는 법이다. 과도한 디테일이 개연성을 파괴하면서 억지스런 연결을 만들어낼 우려를 감독은 고민해야 한다.

신혜선과 배종옥, 극중 모녀의 여성주의 연대?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익숙한 주연 신혜선은 드라마 <학교 2013>을 시작으로 <아이가 다섯>, <비밀의 숲>, <황금빛 내 인생>, <단, 하나의 사랑]>등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경력을 쌓았다. <결백>은 신혜선의 첫 스크린 주연작. 박상현 감독은 “신혜선 배우처럼 발음이 정확하면서 감정의 템포까지 조절하는 배우가 흔치 않다. 현장에서 눈물의 타이밍까지 조절하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기억을 잃은 살인 용의자 ‘화자’ 역으로 영화에 무게감을 더한 배종옥은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으로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결백>은 두 여성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워 폭력적이고 사악한 남성 중심적인 사회 체계를 돌파케 한 데서 또 다른 감상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엄마나 그의 ‘결백’을 증명한 딸이나 모두 정의를 실현하는 데 단호함을 보였다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억압과 폭력에 대해서도 단호한 모녀의 연대를 실현했다.


영화 <결백>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실제 뉴스에서 접했을 법한 사건의 현실감을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보령과 대천(현 보령시)이 통합되기 전의 대천의 지역 특색을 찾아내 영화에 등장시켰다. 특유의 사투리를 공간과 결합한 가상의 지방자치단체 ‘대천시’가 영화의 무대가 된다. 






글 안치용/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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