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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Aug 12. 2024

생각 없이 보게 만든 생각 깊은 영화

영화평 ‘트위스터스(TWISTERS)’

영화평 ‘트위스터스(TWISTERS)’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가 있다. 딱히 정해진 구분이 있거나 장르로 분류되지 않지만, “영판 할리우드 풍이야”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영화가 있다. 이때 ‘할리우드 영화’라는 레테르나 ‘할리우드풍’이란 언급에 약간 낮춰보는 느낌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모두 돈을 좋아하지만, 돈을 대놓고 밝히면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름 블록버스터의 정석     


영화 <트위스터스(TWISTERS)>는 할리우드 영화이다. 강조하자면,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이다. 어찌 보면 동화의 구조와 비슷하다. 예상할 수 있는 해피엔딩의 목적지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달려가되 과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간다고 보면 된다. 


주인공은 토네이도 사냥꾼 케이트(데이지 에드가-존스)이다. 대학 시절 고향 오클라호마에서 신박한 아이디어 하나로 토네이도에 맞서다 친구들을 잃고, 지금은 토네이도에서 멀리 떨어진 뉴욕 기상청에서 일한다. 도입부에서 토네이도 사냥꾼 케이트의 자신만만한 모습과 좌절이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통해 그려진다.

전환은 과거 트라우마를 함께 겪은 옛 친구 하비(안소니 라모스)의 등장이다. 토네이도를 없앨 수 있는 획기적인 솔루션을 들고 나타나 케이트에게 합류를 제안한다. 이후 전개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비의 제안을 받아들여 토네이도의 본거지 오클라호마에 도착한 케이트에게 ‘토네이도 카우보이’라 불리는 유튜브 인플루언서 타일러(글렌 파월)가 나타나며 주요 배역이 모두 진용을 갖춘다.


이제 관객은 토네이도에 맞서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곤경에 처하고 그 곤경을 얼마나 극적으로 또 긴박한 재미를 맛보게 하며 극복할지를 기대한다. 주도하는 역할은 케이트가 한다. 여성영웅서사는 더는 특별한 게 아니다. 성 구분 없이 영웅서사만 있을 뿐이다. 스토리에서 처음과 끝을 어떻게 연결지으며 해피엔딩으로 매조질지를 궁금해한다. 예상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다고 봐 무방하다.


로맨스가 빠질 수 없다. 여성 한 명과 남성 두 명이 등장했으니 관객은 해피엔딩에 로맨스가 어떤 모양으로 자리할지를 또한 궁금해한다. 이것 또한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지 않는다.


역대급 토네이도를 정면돌파하는 재난 블록버스터 <트위스터스>는 큰 스케일과 압도적인 몰입감을 제공한다. 여기에 개성 넘치는 캐릭터, 스릴 넘치는 스토리가 더해지면 틀이 완성된다. <미나리>로 121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정이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트위스터스>는 ‘여름 블록버스터의 정석’이란 평가를 받았다. 


<트위스터스>는 지난 7월 19일 북미 개봉 이후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해, 오랜 기간 유지된 <투모로우>(2004)의 재난 영화 최고 오프닝 기록을 갈아치웠다. 확실히 정석은 강력하다.     

디테일의 힘     


사실 재난 영화의 정석쯤은 블로그에 영화 글을 쓰고 영화평을 한다고 하는 많은 사람이 안다. 바둑이 정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석만으로 이길 수 없듯이 재난 영화에서도 정석을 충실히 따랐다고 해서 성공할 수 없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프랭크 마샬의 말에서 <트위스터스> 흥행 비결을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정 감독은 캐릭터, 스토리, 유머뿐만 아니라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서 카메라를 어디에 두고,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정확히 아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정석뿐 아니라 디테일에도 충실하다는 얘기다. 디테일에 충실하기 위해선 충실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감각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꼭 집어내기 힘들지만, 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전체로서 재미있고 몰입감 넘치는 작품을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뜻이다. 글을 쓸 때 조사 은는이가를 본능적으로 구별하여 쓰는 능력이 프로 글쟁이의 기본기에 해당하듯, 정 감독은 화면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를 안다고 하겠다.


토네이도와 오클라호마는 깊이 연결된 단어이다. 제작진은 자연스러운 오클라호마의 풍광을 스크린에 담아내며 실감 나는 토네이도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영화 역사상 CG로 만들어진 날씨 시뮬레이션이나 토네이도 중 가장 복잡하고 진짜 같은 작업물이다”라는 제작진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지장은 없지 싶다. 최고의 제작진이 붙어서 최고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테니 현재로선 최고의 CG를 보여주는 게 관객에 대한 일종의 의무일 테니 말이다.

재난 영화이지만, 주인공들이 재난을 당하지 않고 재난당한 사람들을 구하러 가기에 관람하기에 심정적 여유가 생긴다. 선과 악의 대치를 심각하게 드러내지 않고 대체로 재난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선함과 휴머니즘에 집중한 것도 관객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영화관에 앉아 무시무시한 토네이도 맞서 싸워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불어 사랑을 성취하는 게 할리우드의 영화의 문법이 아닌가. 저급한 취향이라고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든다.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본다고 생각 없다는 얘기를 듣지는 않을 영화다.


데이지 에드가-존스가 오클라호마 지방 억양을 소화하려고 애썼다는데, 외국인으로선 그 노력을 체감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새 영역으로의 전환이 두렵기도 했지만 <트위스터스>는 나에게 모험을 할 수 있게 영감을 주었으며,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대신 두려움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라는 정 감독의 더 새로운 도전을 기대한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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