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원죄'의 한진을 바로잡으려면

'비정상 한진의 정상화'가 민주주의다

by 안치용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최악의 대통령 자리를 두고 경합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관람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 <국제시장>. 그 영화에 은근슬쩍 한진 얘기가 나온다. 영화 속에서 베트남전에 민간인 기술자로 ‘참전’한 덕수(황정민 분)는 대한상사라는 회사의 조끼를 걸치고 있다. ‘대한상사’가 베트남전에서 맹활약한 한진상사를 뜻한다는 데에 별다른 이견은 없어 보인다. 한진상사는 요즘 총수일가의 패악질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대한항공을 주력사로 거느린 한진그룹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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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22일 서울에서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열려 그 시기 한국군의 양민학살 사건을 재조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한국군은 사실상 미국의 용병이 되어 머나먼 남쪽 나라 베트남에서 베트남의 민족해방을 좌절시키기 위해 싸웠다. 참전 명분이 없었고, 그랬기에 국제사회에서 양키 용병으로 비난을 산 저간의 과정은 생략하고,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수행한 한국 군인들에게 전투 행위 자체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비전투원인 베트남 민간인에게 저지른 전쟁범죄는 규명되고 상응하여 진실된 사과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너무 시간이 흘러 현실적으로 전쟁범죄 처벌이 가능할지는 불확실하다. 늦어진 대로라도 진상규명과 사과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베트남전은 이처럼 우리에게 ‘더러운 전쟁’이지만, 남의 전쟁에서 청춘을 바친 당시의 청춘들에게까지 (예외가 있긴 하겠지만) 그 ‘더러운’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역시 5000명 이상이 죽고 1만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고엽제 피해 등 전쟁 후유증을 앓은 사람의 숫자는 훨씬 더 많다. 더 중요한 사실은 베트남 전쟁에서 숨지거나 다친 사람들은 대체로 민초들이었다는 점이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정부가 자행한 사실상의 국가범죄이며, 희생자는 한국인이든 베트남인이든 거의 민중계급에서 나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국가범죄’를 기획한 인물은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이지만, 이러한 범죄 행위에 영합하여 또는 이러한 피의 역사를 기회로 삼아 이익을 챙긴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나 짐작하듯 대표적 인물이 한진그룹 창업자 고 조중훈이다.


“1945년 11월 트럭 한 대로 창업한” 조중훈은 베트남전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의 계기를 마련한다. 베트남전쟁에서 보인 수완으로 박정희의 눈에 들어,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대로 대통령이 밀어줄 테니 맡아보라고 해서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1969년에 인수하여 대한항공을 출범시켰다. 현재 한진그룹의 토대를 전쟁 통에 닦은 셈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재벌이 정경유착과 모리배 정신으로 무장하여 자리를 잡고 성장하였지만 한진은 ‘피의 역사’가 더해져 더 사악하고 음울한 태생을 지니게 된다.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피를 돈으로 바꿔가며 성장한 태생의 비천함과 사악함은, 어쩌면 제대로 된 경영을 펼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으로 속죄를 받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한진의 역사는 비천함과 사악함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심화하는 듯하다. 이러한 양상은 이미 조중훈 선대회장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나타났다. 베트남전쟁에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한진은 파월기술자들의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아 1971년 9월에 이들로부터 칼빌딩이 방화를 당하기에 이른다. ‘떼어먹을 돈이 따로 있지, 사선을 넘으며 벌어들인 푼돈을 재벌이 떼어 먹느냐’는 분노가 방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 한진 일가의 갑질은 한진그룹의 과거를 돌아볼 때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인다. 문제가 많고도 많은 한국 재벌들 가운데서 특별히 ‘피의 원죄’를 지닌 한진은 그들의 부를 만들어준 수많은 원혼을 생각해서도 정상적인 기업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반대로 총수일가가 일상적으로 ‘피[血]갑질’을 일삼는 사이코패스 기업을 만들어냈다.


조현아에 이은 조현민의 치기 어린 행태가 촉발한 이번 사태에, 총수일가와 그들에게 자신의 안위를 묶어놓은 그룹 내 일부 기득권을 제외하곤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조씨 일가의 가족경영이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난파했다는 명백한 징표다. 대한항공 직원들까지 조직적으로 총수일가의 비리와 갑질을 언론과 사정기관에 제보하는 상황은, 경영학적으로도 이 기업은 사망판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미래를 이야기해보자. 앞서 살펴보았듯,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이란 게 젊은 한국 청년들이 말 그대로 피 흘려가며 일군 내용상으로 ‘국민’기업이기에 안타깝게도 우리는 한진이 망하기를 바랄 수가 없다. 오히려 사악하고 비전한 태생을 떨어버리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국민적 힘을 모아야 한다.


그 일은 총수일가가 저지른 갑질과 비리를 낱낱이 밝히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냥 주주로 남았다면 이렇게 추궁당하지 않았겠지만, 경영을 책임지고 기업을 지배하며 온갖 특권을 누리고 탈법과 비위를 저지른 사회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그들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져야 한다.


윤리적 추궁과는 별개로, 무엇보다 현행법에 의거하여 총수 일가의 비리나 비위는 빠짐없이 밝혀서 엄정하게 법을 적용해야 마땅하다. 그동안 누린 부당한 특권까지 포함하여, 범법사실로 확인된 모든 것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 만일 비위가 확인된다면 총수 일가 전체를 감옥에 보내는 것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한진은 사악한 재벌이지만, 다른 재벌이라고 크게 다르리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번에 한진의 사례에 바르게 대처함으로써 한국 재벌들을 스스로 경계케 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사회는 한 걸음 진보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다음으로는, 총수일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병행하여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를 사회의 힘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는 데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차제에 대한항공을 국유화하면 좋겠지만, 혁명적 상황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실현할 방법이 없다.(국유화는 국가와 정부의 수준에 따라 자칫 해악이 될 수도 있기에 잘 따져봐야 할 해법이지만, 현재의 한진보다 더 나쁜 소유형태를 찾을 수는 없기에 이론상으로 검토할 수는 있어 보인다.)


따라서 현실적 대안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다. 현재 대한항공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한진칼(29.96%)을 포함, 33.34%(보통주)이다. 한진칼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조양호(17.84%)를 포함, 28.96%이다. 특수관계인에는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이 이름을 올렸다. 조양호 회장과 그 자녀들이 한진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감안할 때 흩어진 나머지 지분으로 조씨 일가의 경영참여를 막기는 힘들어 보인다. 결국 실패한 경영자를 끌어내려 기업가치를 높이자는 방향으로 자본시장 내의 움직임을 조직하고, 재벌의 사회적 영향력과 관련하여 사회정의을 실현하려는 시민적 움직임을 결집하는 ‘투 트랙’으로 조씨 일가를 경영에서 배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소액주주들은 한진그룹의 직원그룹과 연대하여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관여’를 촉구하는 ‘레터’를 보내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대주주의 무능력과 부패를 폭로하고 대주주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여야 한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지분에 대해서는 더 강력하게 ‘국민적 의사표시’를 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 동시에 소액주주끼리 단결하여 투자가치를 지키면서 주주로서 책임을 다하는 소액주주운동을 활성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회적으로는 불매운동을 포함하여 부패 대주주의 경영참여를 차단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예를 들어 칼호텔 불매운동을 조직하거나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 개인적 불매와 함께 칼호텔의 기업 및 단체 고객에게 칼호텔 이용시 항의전화ㆍ서한발송 등 압박수단을 활용하여 불매전선을 확장하고 나아가 한진그룹이 제공하는 서비스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불매 운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필요하다면 시민사회 차원에서 ‘한진그룹 대주주 조씨일가의 경영배제 운동본부’ 같은 걸 구성해서 조씨 일가가 물러날 때까지 싸워보는 보다 전투적인 방책도 고려할 수 있겠다.


‘본부’ 같은 네트워크나 연대 조직이 만들어진다면 시민창안을 통해 더 발랄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찾아내어 ‘비정상 한진의 정상화’를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재벌개혁은 당연히 정부 차원에서도 추진되어야 하지만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고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양호 회장은 ‘조현민 사태’가 발발하고 열흘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22일 국민과 대한항공 직원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고 두 딸의 퇴진 방침을 밝혔다. 조 회장은 사과문에서 “조현민 전무에 대해 대한항공 전무직을 포함해 한진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하고,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도 사장직 등 현재의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또한 대한항공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겠다면서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를 전문경영인 부회장으로 보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 사장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다, 총수에 의해 임명된 부회장이 전문경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론이 나빠지고 범법행위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하자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궁여지책으로 나온 꼼수라는 걸 삼척동자도 안다.


조씨 일가의 사과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앞서 제안한 ‘투 트랙’으로 비정상의 한진을 정상화하는 것만이 한진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시민사회의 단합된 힘을 과시할 수 있다면 재벌개혁이 더 힘을 받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발전할 수 있다. 재벌개혁의 본질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이글은 프레시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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