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48 (추가개정판)
"쾅쾅쾅!"
나의 원룸 현관문을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머리맡에 놓아둔 핸드폰을 손으로 더듬어 확인한 시간은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다.
"아놔 ~ 씨X! 또 어떤 자식이 또 술 처먹고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난리야!"
대학가 근처 원룸에는 가끔씩 술에 취한 대학생들이 집을 잘못 찾는 경우가 있다. 남의 집 도어록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거나 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특히 3월의 대학교 개강 시즌이 되면 그런 꽐라된 대학생들의 주사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쾅쾅쾅! 세리야~~ 제발! 문 좀 열어봐 쾅쾅쾅! 제발! 쾅쾅쾅!”
‘아놔! 이 새벽에 또 어떤 새끼가…’
한 번은 새벽에 누가 옆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떤 술 취한 청년의 목소리였다. 그는 몇 분 동안을 옆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그 집에 사는 사는 여자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멈췄다. 잠시 뒤 한 그 청년은 빌라 앞에 있는 오래된 고분 위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여자 이름을 부르짖었다.
♩ ♪ 날 떠나지 마 가는 널 볼 수가 없어 ♫ ♬
그 청년은 박진영의 [날 떠나지 마]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쇼를 하는 통에 그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밤잠을 설치고 베란다로 몰려나와 보기 싫은 생쇼를 감상해야 했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다. 경찰이 그를 고분 위에서 끌어내리려 하자 그는 바지를 내리고 고분 위로 올라오려는 경찰들을 향해 오줌을 갈겼다. 경찰들은 그를 잡으려 올라가다 오줌 세례를 받으며 구경 나온 주민들의 한바탕 폭소를 자아냈다.
"야! 세리! 얼굴값만 하는 줄 알았더니 몸 값까지 하냐!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그때 그 청년은 내가 서있는 베란다 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소리쳤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내 쪽을 응시했다. 알고 보니 그 청년은 나의 옆집에 사는 그 유흥주점 여자를 짝사랑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야단법석에도 그 여자의 방에는 불이 꺼진 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원룸 건물 앞에 주차된 하얀색 BMW3가 그녀가 집에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세리야~ 제발 얼굴 좀 비춰줘~ 나 모든 걸 다 용서할게! 나 너 정말 사랑한단 말이야! 나 이제 너 아님 안돼”
‘세리’라는 옆집 여자는 은택형의 송별회 때 유흥주번 [파라다이스]에서 마주친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녀는 아침에 내가 출근하면 집에 들어오는 듯했고 내가 회사에서 야근 중일 때 출근하는 듯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다. 지금 저 젊은 청년은 그녀가 몸도 파는 여자라는 사실을 이제야서 알게 된 모양이다. 사실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오밤 중에 술에 취해 그녀 집을 찾아오는 남자가 여럿 있었다.
‘참~ 옆집 여자 진짜 얼굴값 몸값 다 하는구만’
그녀는 끝내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 청년은 결국 경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것으로 소동이 마무리되었다. 소동이 끝나고 동네가 조용해지자 옆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한 남자가 원룸 입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서둘러 앞에 주차된 검은색 벤츠를 타고 조용히 사라졌다.
“쾅쾅쾅!”
“아놔~ 또 어떤 자식이 찾아온 거야? 근데 왜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 지랄이야!
이번엔 알콜성 치매로 집도 헷갈린 모양이다. 모처럼의 단잠을 깨어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다. 하지만 나가봐야 좋을 게 없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길 바라며 귀를 막고 이불을 덮어썼다.
"쾅쾅쾅, 大叔! 是我貂蝉开门啊!” (아저씨! 나예요 띠아오챤! 문 좀 열어줘요)
"헉! 이 시간에 띠아오챤이?"
들리는 목소리는 띠아오챤이 분명해 보인다. 뭔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다소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성큼 다가간다.
"띠아오챤?"
"是! 大叔! 你快点儿开门,好不好?”(예 아저씨 빨리 문 좀 열어요)
나는 잠긴 문을 열었다. 띠아오챤은 가죽 미니스커트에 쇄골이 다 드러나 보이는 달라붙은 니트를 입고 있다. 얼굴엔 짙은 화장이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기에 범벅이 되어 얼룩져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니트는 누군가가 심하게 잡아당긴 모양이다. 한쪽으로 심하게 늘어나 그녀의 브레지어 한쪽이 드러나 보일 정도이다. 그녀는 내가 문을 열기가 무섭게 현관으로 뛰어들어오고는 서둘러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문고리를 잡은 채 현관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有什么事?你鞋子呢?” (무슨 일이야? 신발은?)
그녀는 대답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거친 숨을 내쉬며 숨을 고른다. 그녀는 맨발로 뛰어왔는지 스타킹을 입고 있는 발바닥은 흙이 잔뜩 묻어있다.
"大叔! 你帮我拿点水好吗?” (아저씨! 물 좀 줄래요?)
나는 얼른 냉장고로 가서 생수를 컵에 따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한 번에 물을 다 들이켜고는 현관 문고리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서 방안으로 발을 옮긴다.
"미안해요 아저씨!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도대체?"
"今晚我睡在你家可以吗?”(오늘 밤 아저씨 집에서 자도 돼요?)
“你先说一说,到底什么事? 又是上次那些私人放贷家伙们?” (우선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설마
또 접때 그 사채업자들이야?)
“不是”(아녜요)
“那么...”(그럼...)
“我先洗一洗,好不好?"(우선 좀 씻으면 안 될까요?)
그녀는 욕실로 향한다. 발바닥을 다쳤는지 한쪽 발을 바닥에 제대로 딛질 못하며 절뚝거리며 욕실로 들어간다.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고 샤워기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난 이 상황이 옛 기억을 다시 상기시키며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이건 도대체 뭐지? 반복되는 건가? 오늘 잠은 다 잤구만, 내일 출근해야는데... 아하~'
한참이 지나 물소리가 멈춘다. 욕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그녀가 문틈 사이로 고개만 내민다. 젖은 머리를 올려 잡은 손 아래로 물기가 흘러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大叔! 给我简单的衣服好吗?”(아저씨, 간단히 입을 옷 좀 없어요?)
나는 옷장 서랍에서 흰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내 그녀가 내민 손에 쥐어준다. 그녀는 잠시 뒤 머리엔 수건을 두른 채 욕실에서 나온다. 절뚝거리며 몇 걸음을 내딛다가 방바닥에 주저앉는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발바닥을 매만진다.
"我脚掌好像被划伤了吧”(나 아무래도 발바닥을 다친 것 같아요)
나도 같이 방바닥에 앉아 그녀의 발바닥을 살핀다. 그녀는 맨발로 뛰어오다 무언가 깊고 날카로운 것에 베어 살과 살이 벌어져 있다. 붉은 속살에서 계속 핏물이 새어 나오고 있다. 나는 그녀의 발에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고 밴드로 벌어진 살을 붙여준다. 그녀는 적지 않는 통증에도 내가 그 일을 끝낼 때까지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现在怎么样?"(이제 어때?)
"还好 谢谢!”(괜찮아요 고마워요)
그녀는 내가 붙인 밴드를 만져본다. 나와 상처 부위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연다.
"大叔! 你能帮我吗?”(아저씨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띠아오챤은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응시하며 말한다.
“这是第一次啊,我求人家做什么” (나 처음이야, 누구에게 부탁이란 거 해보는 게…)
그녀는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부탁이란 것을 해보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궁금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 [잠언] 3:27 -
불현듯 오늘 낮에 교회에서 봤던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가장 괴롭고 아픈 상처는 다른 이에게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사람이란 본디 사악해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곳을 후벼 팔 수도 있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상처받은 자는 누군가에게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다. 그래서 비밀을 지켜줄 신이라는 존재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도움을 바란다. 지금 나는 그녀에게 유일한 신과 같은 존재이다.
나는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