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31
빅키는 중국의 북방 톈진(天津:천진) 출신 여자로 오스트레일리아 드림을 꿈꾸며 호주로 왔다.
그녀는 호주로 온 여느 중국 사람들과는 좀 달랐다. 보통 이민자들은 타국의 현지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같은 민족들 사이에서 어울려서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려고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빅키는 수호처럼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낮에는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영어공부에 몰두했다. 밤에는 시드니 시티에 있는 주로 백인들이 드나드는 펍에서 일하며 항상 남성들을 상대하며 네이티브에 가까운 영어실력을 키워갔다.
그녀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호주 영주권을 취득하고 더 나아가서 호주사람으로 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중국인의 정체성을 지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는 호주 정부가 원하는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 그런 사람, 즉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혹은 정부의 곳간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곳에 남아 계속 체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지인과의 결혼이었다. 이곳의 남자를 만나서 영주권을 얻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밑바닥 인생을 가장 빨리 바꿀 수 있다는 방법이 그것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这个丫头就杀了自己的妈妈出来的”(저 계집년이 자기 엄마를 잡아먹고 나온 년이여)
빅키는 중국의 허베이성(河北省:하북성) 조그만 시골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네 자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들을 낳기 위해 시도한 네 번째의 출산에서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낳고 난 후 멈추지 않는 하혈로 결국 저 세상으로 떠났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빅키를 ‘지애미를 잡아먹은 괴물’라며 그녀를 불길한 아이로 취급하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만약 그녀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그녀의 탄생은 가문에 대를 잇기 위한 모친의 고귀한 희생과 같은 신화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주변의 갖은 손가락질과 핍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녀는 언젠간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려 버티고 또 버텼다. 그녀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였다. 이미 세상의 쓴 맛이란 쓴 맛은 다 경험한 그녀는 자신이 현실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현실적인 방법들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일단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집에선 그녀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학교 다니는 것을 고집했다. 학교에서의 따돌림 속에서 그녀는 성인이 되기까지 마녀로 살아야 했다. 학교와 그녀가 사는 작은 마을은 마녀사냥의 놀이터 같았다. 친구 한 명 없이 학창 시절을 견뎌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성인이 된 이후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야밤에 홀로 짐을 싸서 집을 뛰쳐나왔다. 아버지가 가족 몰래 집 천장에 숨겨둔 비상금 돈뭉치도 함께 가지고 나왔다. 베이징(北京:북경)으로 향했다. 가족과 이웃의 핍박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른 고난과 핍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살기 위해 돈을 모으려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마사지 업소에서 일했다.
“如果你在澳大利亚这样工作赚钱现在的最小两三倍呢” (네가 만약 호주에서 이렇게 일하면 여기보다 최소 2~3배 이상 돈을 벌 수 있을걸)
“真的吗? 不至于吧?”(정말? 에이 설마요?)
“真的,I swear” (정말이라니까, 맹세코)
빅키는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다 그곳에 자주 찾아와 마사지를 받던 호주에서 온 한 백인의 중년 남성과 말동무가 되었다. 그는 백인 치고는 드물게 중국말을 곧 잘하는 덕에 그녀는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중국 밖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백인은 중국에 장기로 비즈니스 출장을 온 사람이었다. 그는 무슨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지 빅키가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에 대해 물을 때마다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며 그녀가 듣고 싶은 대답을 피해 다녔다. 어쨌든 그는 빅키에겐 의지할 곳 없는 차가운 베이징 밑바닥의 삶에서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때부터 빅키는 미지의 외부 세계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사지 샵에 찾아오는 온갖 진상 손님들의 추태를 받아내며 견뎠다. 그리고 그가 마사지를 받으러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녀는 그 백인 남성과의 만남이 늘어갈수록 점점 오스트레일리아 드림을 꿈꾸기 시작했다.
빅키는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이면 그와 함께 북경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했다. 그녀는 그의 현지 가이드를 자처했지만 사실 그녀보다 그가 북경을 더 잘 아는 듯했다. 그 백인 남자는 독특하게도 유명관광지보다는 중국의 서민들이 사는 골목(후통, 胡同) 같은 곳이나 시장 같은 곳을 찾아다니길 좋아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북경에 현지인들이 쓰는 억양이 센 사투리들을 그에게 표준어로 통역해 주었다. 그는 그 대가로 그녀의 모든 여행의 비용적인 부분을 해결해 주었다.
그녀는 그의 중국어 선생이 되었고 그는 그녀의 영어 선생이 되었다. 그 백인 남자과는 띠동갑이 훌쩍 넘는 나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마치 연인 사이처럼 관계가 발전했다. 하지만 이건 둘만 아는 비공식이자 비공개 연애였다. 사실 누가 알 수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찾아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 둘 다 혈혈단신으로 베이징에 왔다. 대도시 속에 두 이방인의 외로움이 만났다. 연민이었다. 연민이 만든 감정은 마치 중력처럼 서로를 끌어당겼다. 빅키는 다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자신의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으면서 그에게 더욱더 큰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빅키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모든 것을 그 남자에게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빅키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가 호주사람이며 뭔가 비밀스러운 일을 하기 위해 베이징에 왔으며 돈이 아주 많아 보인다는 것 그리고 싸움을 아주 잘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그의 직업은 상당히 의외였다.
“哎! 你这个老鬼子怎么跟小丫头弄什么呢?(이런! 늙은 코쟁이가 이렇게 어린 계집이랑 뭐 하는 거야?)
“Fuck! What did you say?”(씨발! 뭐라고 한 거야?)
“这老鬼说什么脏话呀? 你找死吗?“(이 늙은 코쟁이가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죽고 싶어?)
“퍽! 퍽!”
“욱! 으악! 아아아아악”
“와장창!”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말 저녁 사람으로 북적대는 북경의 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빅키와 백인남자가 식사를 하고 있는 옆자리에 있던 호기 좋고 덩치 좋은 젊은 중국청년들의 걸어온 시비가 그 시작이었다.
백인 남자는 순식간에 3명의 떡대 좋은 청년들을 한 명씩 보기 좋게 식당 바닥에 때려눕혔다. 건장한 청년 셋이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그의 손놀림은 분명 예사롭지 않았다. 그가 일반인이 아닐 거라는 것은 빅키뿐만 아니라 그 식당 안에서 무료로 4D액션영화, 아니 액션 연극을 감상한 모든 식객들의 생각과도 같았다.
“住手,跪下! “ (꼼짝 말고 무릎 꿇어!)
잠시 뒤, 공안들이 식당에 들이닥쳤다. 백인 남성은 핸드폰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영어로 뭐라고 1분이 채 되지 않는 통화를 하고 막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공안이 현장에 들이닥쳤다. 두 명의 공안이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보고는 그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지레 겁을 잔뜩 집어 먹고는 총부터 꺼내 들고 멀찌감치 떨어져 백인 남성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잠시 뒤, 공안과는 또 다른 제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현장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공안의 총을 순식간에 빼앗더니 자신들의 신분증 같은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귀속말을 나누었다. 그러자 공안은 조용히 현장을 떠났고 그 제복을 입은 자들은 사건 현장에 널브러져 있던 중국 청년 셋을 검은색 벤에 싣고는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빅키와 백인 남자는 유유히 그 식당을 빠져나왔다. 빅키는 방금 전에 벌어진 상황에 넋이 나가있었다. 물론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식당 안은 사람들 또한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빅키에게 그 백인 남자은 친구이면서도 미스터리였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빅키를 자신의 숙소로 데려갔다. 왕푸징(王府井)에 위치한 고층빌딩이었다. 화려한 1층 로비와 금색으로 도배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그의 숙소는 북경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급 호텔의 펜트 하우스였다. 빅키는 생전 처음으로 그런 럭셔리한 호텔을 경험했다. 매일 청소와 빨래를 대신해 주는 관리인이 있는지 방은 하얗고 깨끗한 새 침대보와 베개가 놓여있었다. 그녀는 그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간 사이 집안을 둘러보다 우연히 열어본 옷장에서 낯선 군복을 발견했다. 군복에는 빅터(Victor)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때 비로소 그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냥 자신을‘왕시엔셩’(王先生, 왕 씨 아저씨)라고만 불러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종종 농담처럼 王大哥(왕오빠)라고 부르곤 했다. 더욱이 빅키의 원래 이름 왕찡(王静,왕정)이었기에 그가 마치 아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빠라고 부를 순 없었다. 그래서 ‘왕 씨 아저씨’ 혹은 ‘왕오빠’라는 두 가지의 호칭을 병행해서 불렀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전자를, 둘 만 있을 때는 후자의 호칭을 사용했다. 결정적으로 아빠와는 남녀의 육체적 관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빅키는 언제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와 그런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날밤 빅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새하얗고 부드러운 침대 위에 몸을 뉘었고 순백 위에 선홍색의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곳곳에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 단칸방에서 그녀는 다시 쿰쿰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배를 움켜잡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 울음의 의미는 너무도 복잡 미묘했다. 그와는 너무도 다른 자신의 현실과 정사 이후 사타구니 사이에서 밀려오는 열상의 통증 그리고 빨갛게 물든 침대보를 걷어내고 몸에 묻은 자신의 흔적을 서둘러 씻어내는 그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욕실에서 나온 그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잠에 골아떨어졌지만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냥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 하얀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아마 그 눈물의 의미는 이 밤이 그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녀가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감했던 것처럼 한동안 그와의 연락이 끊겼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그의 호텔 앞을 찾아갔다. 며칠을 그의 호텔 앞에서 그를 기다렸지만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호텔 로비에서 그날 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이 마주쳤던 객실 청소부 아주머니로부터 그가 이미 호주로 떠났다는 사실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엎으려 한참을 울었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한 번도 마음을 줘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 마음을 가져가 버린 그가 원망스러웠다. 비워진 마음에 찾아든 공허함을 견기기 힘들었다. 그 공허는 미움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하얀 종이 위에 그의 이름을 써내려 갔다.
[Victor], 【王大哥】
그리고 그 밑에 자신의 이름을 써내려 갔다
[Vicky], 【王静】
그녀는 호주로 가야 했다. 빼앗긴 마음을 다시 찾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