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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당근 Jul 23. 2020

소염의 돼지갈비

돼지갈비와 소염 편

 새해가 되면 새해 복을 빈다. 일종의 기복 행위인데, 대체로 ‘전화위복’ 유의 기원들이 목적어의 형태만 조금씩 바꿔 매년 등장하는 식이다. 비단 나만의 해당사항은 아닌 듯싶다. 신년 타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핸드폰을 울려대는 무수한 카톡 알람들은, 대체로 사람들의 근면 성실한 기질을 내재하고 있다. 「근하신년」이라는 코멘트로 단번에 요약될 수 있는 다발의 일체성 메시지들이다. 나의 신년에 대한 근하와 함께, 한편으로 절실한 기복의 물물교환 행위를 요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것을 보면 한 해를 살아가는 일이란, 말할 수 없는 체내의 염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인가 싶다. 발병과 축적에 이토록 취약한 세계에서, 고됨과 위험을 감수하며 나는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올해 정초는 염증의 동반과 함께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정수리 뒤쪽이 심상찮았다. 평소에 겪어보지 못했던,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지 싶어 조심스레 손을 대봤더니 머리카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휑한 두피만 만져졌다. 새끼손톱만한 크기였다. 거기가 통증의 진원지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주 좋지 못한 무언가가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탈모다. 내가 탈모라니.

 이제 겨우 서른다섯 살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일단은 빨리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급선무일 터였다. 


 다음 날. 적은 수고를 들여 비교적 인터넷 후기가 괜찮은 동네의 한 피부과를 방문했다. 미리 본 병원 영업 소개란에는 개원 시간이 분명 오전 10시라 표기되어 있었는데, 30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비에는 이미 환자들이 빼곡했다. 죄다 노인들뿐이었다. 어째서 노인들의 아침은 이토록 부지런한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접수대에서 간단한 진료 접수를 한 후, 잠시 로비에서 대기했다. 혹시 몰라 챙겨간 책의 중간 부분을 읽고 있자니 예상보다 금방 내 차례가 돌아왔다. 접수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로 들어섰다. 로비의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진료실에 있던 의사 선생님 역시 할아버지 뻘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대머리여서 나는 잠시 당황했다. 겨우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땜빵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대머리라니. 심지어 그는 내가 들어서자마자 “어디가 아파서 왔어!”라며 호통을 치는 바람에, 나는 하마터면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할 뻔했다. 나는 대체 뭐가 죄송했던 걸까. 평소 두피관리에 성심을 다하지 않았던 죄송함일지도 모르겠다. 환자 의사에 앉아 간략히 증상을 설명했고, 내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은 동작으로 정수리를 살폈다. 


 “응. 별 거 아냐.”

 나는 순간 ‘별 거’의 기준이 몹시 궁금해졌다. 

 “… 별 거 아니라면?”

 “흔한 염증이네. 이놈이 곪으며 모근을 건드려서 머리카락이 다 빠진 거야. 머리카락이야 치료하면 금방 다시 자랄 테니 걱정 말고.”

 “염증이라면 혹시 째야 하나요?”

 “아니. 염증이라고 무조건 외과적 처치를 동반해야 하는 건 아냐. 염증이니까 소염 하면 돼. 약 처방해 줄게. 우리,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진 말자고.” 


 치료기간으로는 약 두어 달이 걸릴 거랬다. 진찰은 거기까지였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던 의사 선생님은 빨리 다음 환자 들어오라며 날 조급하게 내쫓았다.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뒤 황급히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접수대의 직원은 진료비 5300원이 적힌 영수증과 함께 처방전을 내게 건네줬다.


 다사다난한 한 해의 시작이었다. 어떤 새해는 염증의 발병과 함께 찾아오기도 하는 법이었다. 미처 해소되지 못한 고름의 축적과 불유쾌한 증상을 동반한 발병을 향해 나는 속으로 있는 힘껏 욕설을 퍼부었다. 

 「비는 소염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감정의 기복이 어떤 유의 염증이라고 한다면 비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는 책의 구절을, 약의 조제를 기다리던 약국 의자에 앉아 마저 읽었다. 


 저녁에는 애인인 현을 만났다. 사실 만날 생각까진 없었는데 내 병원 방문기를 들은 현이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꼬드기는 바람에 만나게 됐다. 내 정수기를 구경한(그건 분명한 구경이었다.) 현이 말했다. 

 “오빠 대가리가 빠진 기념으로 돼갈이나 조지러 가자.”

 현은 정말 획기적인 언어로 사람을 위로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위로의 범주를 극히 느슨하게 적용했을 경우의 이야기겠지만. 

 현이 말한 ‘돼갈이’는 우리가 자주 찾는 동네 무한리필 고깃집의 메뉴 이름이다. 특이한 이름과는 달리, 별로 특별할 건 없는 그냥 일반적인 돼지갈비다. 이름 지어 붙이길 좋아하는 우린 편의대로 ‘대가리’라 부르고 있다. 과연 이 돼갈이가 내 대가리에 얼마만큼의 효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돼지갈비는 늘 맛있으므로 군말 없이 따라갔다.  


 그러고 보면 내 돼지갈비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어 왔다. 매달 10일. 돌아오는 아빠의 월급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곤 했다. 아빠의 고향 후배 ‘최 기사’ 아저씨가 퇴직 후 서울시 강북구 삼양동 삼양시장 안쪽에 차렸다던 동네의 작은 돼지갈비 집이었다. 흰색 벽돌 외관과 허름한 간판, 뒤축이 닳은 검정 구두가 빼곡하던 출입문 옆의 신발장이 기억난다. 동네에는 중국집이나 통닭집, 경양식 집도 많았는데 어째선지 우리 가족의 선택은 매번 그 돼지갈비였다. 소염작용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애(愛)라든가 화목이라고 하는 수사들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갈비를 굽는 불판 앞에서만큼은 다들 복에 겨울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불판 위에 놓인 돼지갈비를 엄마와 내가 열심히 집어먹는 동안, 아빠는 혼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몫의 소주잔을 홀짝였다. 감정의 할당 지표량이라는 게 있다면 긍정의 눈금을 채우고도 남았을,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의 잔 안에는 아마도 소명이라든가 책임감 같은 게 들어있지 않았었나 싶다. 그때의 광경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전혀 흐릿해지질 않는다. 고름이 차오르던 우리 가족의 염증을 잠시나마 완화시켰던 그 순간의 작용은, 이를테면 분명한 소염이었다. 단지 돼지갈비만의 힘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각자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의식을 음식 위에 투영할 뿐이다.  


 어릴 때의 기억은 뒤로 하고 일단은 부지런히 고기를 뒤집었다. 지금은 불판 위의 고기가 타지 않도록 사수하는 게 인생의 급선무다. 돼지갈비는 양념이 배어있어 타지 않도록 자주 뒤집어줘야 한다. 먼저 익은 고기 몇 점을 집게로 집어 현의 접시에 얹어줬다. 현은 본인이 먼저 먹질 않고, 구태여 고기와 마늘과 쌈장과 밥으로 속을 채운 상추쌈을 내 입에 “아-”하고 넣어준다. 어쩌면 이런 구태의연한 수고스러움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작고 빛나는 형상일련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마늘이 너무 매운데…” 

 그러자 현이 맞받아쳤다.

 “마늘을 먹어야 건강해지지!”  

 접시 위의 마늘을 상추 아래로 밀어 숨기면서, 나는 적의와 반항심을 한껏 담아 마늘 두 개를 넣은 쌈을 현에게 건넸다. 현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늘 세 개가 들어있는 쌈을 내 입에 밀어 넣었다. 나는 마늘 네 개가 든 쌈을 만드는 대신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미안해. 갈비 먹자, 갈비…”


 의도치 않게 서로의 가학성이 활약하게 된 식사자리였지만, 그래도 따라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작은 긍정이 몇 가지 충족된 이런 저녁 식사의 자리에서, 나는 신체에 양립하는 염증과 소염의 존재를 번번이 깨닫게 된다. 가령 생활이 어떤 유의 염증이라 한다면, 이런 소소하고 충분한 소염의 순간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복을 기원하며 한사코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염증은 결코 위험하지 않다. 위험은커녕, 어떤 기복 행위보다도 충실하고 안정적인 전화위복의 방편일 터였다. 


 식사의 끝 무렵. 나는 볼록해진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 배부르다…. 역시 돼지는 갈비 부위가 젤 맛있어.”

 현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무슨 소리야. 무한리필 집에서 나오는 돼지갈비는 대부분 전지 부위를 쓰는 건데.” 

 여태 내가 먹은 게 돼지갈비가 아니라 돼지 전지였다니. 나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어… 소염엔 돼지갈비인데….”

 혼자 중얼거리려다 말았다. 아무려면 어때. 잘 먹었으면 된 거지. 


 집에 돌아와서는 침대에 엎드려 낮에 읽던 책의 뒷부분을 마저 읽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이다.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쨍하게 개인 사흘째, 우리는 도쿄로 돌아왔다. 혼자 있고 싶은 씁쓸한 기분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문득 말끔한 도쿄의 하늘이 궁금해진다. 하기야 소염이 있고 돼지갈비가 있는 서울의 하늘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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