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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주스 Jun 15. 2024

[영화] 언론의 미래,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굿나잇 앤 굿럭>에 대한 감상

    신문 구독을 하지 않은 것은 이미 아득한 옛날 일이고, 이젠 저녁 8시, 9시 뉴스를 보지 않은 지도 한참된 것 같다. 대신 나는 아침에 일어나거나 잠들기 전에 SNS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확인하면서, 확실히 뉴스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렇게 소비 방식이 바뀐 것은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술발달의 측면도 있지만,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언론사가 주목하는 주제와 순서를 그대로 수용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커진 영향도 있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부분의 퇴행에 주된 이유는 언론 문제가 크다는 인식이 있던 차에 <굿나잇 앤 굿럭>이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다. 조니 클루니가 감독도 하고 출연도 했다고 해서 바로 찾아봤다. 벌써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된 영화였다.

   영화는 50년대 극단적 반공주의 분위기 속에서 극도로 위축되어 메카시즘을 비판하는 언론이 없었던 시대 상황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공습상황을 취재하며 언론인으로서 명성을 쌓은 에드워드 R. 머로가 주인공이다. 그는 미국 CBS방송국의 시사프로그램 “SEE IT NOW”를 진행하고 있다. 어느 날, 머로는 아버지가 세르비아 신문을 봤다는 이유로 군에서 쫓겨난 한 공군에 대한 지역 신문 기사에 주목한다. 해당 주제는 당시 정치 환경상 메카시 측 공격을 받기 쉬운 주제여서 방송국 내부의 반대로 극심했지만, 굴하지 않고, 심층 취재에 들어간다. 머로와 뉴스팀은 군 당국이 무리하게 연좌제를 적용하면서, 절차와 근거 없이 진행된 전역 조치였음을 팩트 위주로 취재하여 보도한다.

   첫 방송 후 예상대로 메카시 측의 공격이 들어왔다. 바로 메카시 쪽 인사가 머로의 20년 전 행적 일부와 허위사실을 짜깁기하여 '머로의 공산주의자 증거'라며 방송국에 가짜 증거를 투서한 것이다. 이에 머로는 메카시 의정 활동을 직접 비판하는 방송을 준비한다. 그동안의 메카시 발언과 행적 사이의 모순과 억지 주장에 포커스를 맞춰 비판한 방송 내용은 내부의 우려가 무색할 만큼 15:1이라는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이 여론으로 강제전역 당했던 공군의 복직도 결정된다. 메카시에 대한 비판 보도 3주 후, 메카시는 반박방송을 하지만 방송 내용에 대한 반론이 아닌 머로가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을 포함한 인신 공격성 내용으로만 가득 찼다. 메카시가 내세운 근거는 방송국에 투서했던 협박 자료 그대로였다. 이에 머로는 자신을 공격한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의 후속보도를 통해 그동안 메카시가 공산주의자 색출에 사용했던 근거들의 신뢰성에 타격을 준다. 

  머로와 뉴스팀의 방송들은 메카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고조시키면서, 결국 미국 상원에서 메카시 개인비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든다. 그러나 머로의 보도가 계속되는 동안 프로그램에 대한 스폰서 중단과 그로 인한 수익률 압박이 계속되었고, 그의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낮고 인기 없는 시간대로 방송 시간이 바뀌면서 영화가 끝난다.


   머로가 공군 강제전역 사건 보도를 준비할 때, 방송국 내부에서 내세우는 주된 반대 논리는 '머로가 정치적 편향 없이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기로 한 입장'을 버렸다는 것이었다. 머로가 내부를 설득하면서 언론 중립성에 대해 말하는 내용은 참 인상적이다. 머로가 생각하는 중립은 단순히 가운데 서 있는 위치가 아니라 공익의 관점이었다. 어떤 쟁점에서 양쪽이 모두 떳떳하고 타당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이 이득이 아닌 공익적 차원에서 판단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의 중립성이자 언론인의 양심이라고 말한다. 머로가 말하는 언론의 중립성은 자연스레 국민의 공익적 차원이 아닌 단순한 기계적 중립으로 오히려 정치적 편향을 가중시키는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머로는 메카시의 어떤 공격에도 맞서 방송을 하겠다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방송 보도 후에 나오는 주요 언론의 평가에는 매우 긴장한다. 머로와 뉴스팀에게 뉴욕타임스 등의 유력 언론의 지지 사설이 나오지 않았다면 머로의 방송내용이 계속 지속될 수 있었을까? 머로의 취재 내용들은 사회 공론장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추가적인 심층 보도를 이어갈 동력을 잃었을 것이다. 권력을 비판하는 옳은 기사에 함께 연대하고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영화 속 언론의 모습과 언론들의 연대가 사라진 현재의 모습이 슬프게 겹쳐졌다. 

   권력을 비판하면 권력의 타깃이 될까 봐 침묵하고 있는다고 권력으로부터 안전할까? 영화 속에서도 머로가 메카시 비판 보도를 준비할 때, CBS 사장은 머로와 제작팀에게 메카시에게 흠이 잡힐 일로 빌미를 주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자기 검열하는 시간도 갖는다. 하지만 머로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울 가짜 증거를 만들 듯, 권력이 타깃 한 상대는 어떤 것도 흠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 머로가 메카시를 상대로 승리한 이유는 머로와 뉴스팀이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해서가 아니고, 메카시의 권력남용을 견고한 논리와 언어로 끈질기게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라 비판하는 사람의 자격과 자질을 따지는 것은 권력자를 비판할 용기와 시도를 꺾어버리는 권력자의 교묘한 논리에 빠져들게 한다는 시사점을 영화가 주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언론인의 양심과 연대만으로는 올바른 언론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 준다. 머로의 프로그램 방송 시간대가 변경되는 것은 영화 마지막에 짧게 표현되고 끝나지만, 실제로는 프로그램 시간 변경 후에도 시청률과 광고판매 저조 등 수익률 악화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고 한다. 강력하지만 일시적일 수 있는 정치권력에는 언론이 강하게 맞서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언론도 결국 먹고사는 경제문제와 연결되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70년 전 미국 상황으로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 사회가 건강한 언론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특출 난 언론인 몇 명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대해 계속 고민하게 한다. 

  이 영화는 부시 행정부였던 2005년 무렵의 미국 현실을 1950년 상황에 빗댄 영화임에도, 2024년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느낌이다. 그만큼 언론의 환경은 바뀌어도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그래서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는 언론의 문제는 늘 반복되고 있다는 역사들을 말해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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