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는 영상 통화로 충분한가
가나안 성도와 관계를 누리다 보면, 굳이 꼭 교회에 가야 하냐는 말을 듣는다. 유튜브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유튜브로 드리는 예배가 더 간절한 예배일 수 있고, 유튜브로 드리는 예배가 더 신실한 예배일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때로는 유튜브 설교와 유튜브 찬양이 더 은혜가 될 수 있다. 교회의 설교와 찬양에 충족을 경험하지 못하는 많은 성도들이 유튜브를 통해 충족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튜브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의심스럽다.
원거리 연애를 한다고 해보자. 직접 만나지 않고 영상 통화로 교제를 하는 것은 충분할까? 때로는 눈 앞에 있을 때보다 통화로 이야기하는 게 더 깊은 대화가 오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굳이 직접 만나지 않고 음성 통화나 영상 통화로 교제하는 게 나을까?
과거 펜팔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직접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편지로 대화를 몇 년 동안 나눴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때로는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가 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을 펜팔 친구와 공유하다가, 어느새 그 누구보다 깊은 내적 친밀함을 경험하여 결국에는 결혼까지 하게 된 커플들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직접 대면하는 관계보다 펜팔이나 음성 통화가 더 나은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소한 이런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저 사람들 중 누구도 "이런 관계로 충분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채팅으로만 교제를 하던 친구가 직접 만나는 걸 두려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면 이 관계가 깨지거나 실망할까봐서이다. 물론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을 더 잘 알까봐 두려워한다는 거다. 즉, 채팅으로는 그 사람을 아는데 한계가 있다는 반증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펜팔로 관계를 진전시켰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보았는데, 그들 중에는 결혼까지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반응이었다. 그들 중에 그 누구도 펜팔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더 깊은 관계를 원했다.
안트워프에 살던 한 유대인 남자가 호주에 사는 유대인 여자를 (중매로) 한 번 보고 펜팔로 관계를 이어나갔었다. 하지만 펜팔로는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낼 수 없었다. 펜팔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빨리 결혼해서 같이 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펜팔로 충분하니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해보자. "펜팔로 충분한데 굳이 일찍 결혼해야 해?"라고 이야기했다면, 저 유대인 남자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건 너가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유튜브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유튜브 예배로 충분하다며 굳이 교회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없고, 쉽게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지역의 성도들이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불충분하다는 거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외국에 사는데 교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가족끼리 수년 간 예배를 드렸던 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인교회가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며 몇 년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기도했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유튜브 예배로 충분한가요?" 라고 물어보자, "그걸로 충분할 수 있을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분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 예배를 사모한다면,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사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몇 시간씩 걸려서 먼 교회까지 나오는 거다.
그런데 유튜브 예배로 충분하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과연 정말로 예배를 사모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 놀랍다. 요즈음에는 외국에 살아도 가족과 연락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피치 못하는 이유로 가족과 영상 통화로 관계를 맺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영상 통화로 충분하시죠?"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들 내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외국에 사는지라 첫 아이의 출산을 지켜볼 수 없었다. 한국에 가고 났더니, 이미 아들이 태어나 있었다. 물론 아들의 100일 모습도 직접 볼 수가 없었다. 또한 아들의 첫 번째 생일날도 같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 "영상 통화로 충분하시죠?"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한다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발전은 참으로 놀랍다. 아들이 처음으로 혼자 일어난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영상으로 보았다. 아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과,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는 모습을 전부 영상으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되어서 이걸로 충분하다고, 굳이 아이와 함께 있을 필요가 있냐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상으로 다 볼 수 있는데 굳이 같이 있어야 하냐고 말하는 아버지라면, "정말로 아들을 사랑하세요?"라고 묻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유튜브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영상으로 충분한데 굳이 직접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예배에 대한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심인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믿음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