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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tonCottage Apr 29. 2016

영국 날씨에 대한 괜한 씨부림

우박이 내리는 걸 보며...

비가 많이 오는 나라,
안개의 나라 영국.
비오는 Shad Thames,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장소


영국인들은 만나면 날씨 이야기부터 한다는 건 사실이다. 아침이건 오후이건 공원을 산책하건 슈퍼마켓가건 누군가를 만나  '안녕?  잘 지내니?' 다음에 오는 대화는 여지없이 '오늘 날씨 왜 이러니', '오늘은 날씨가 좋아 그치?'이런 류 이다. (보통은Freezing, 내지는 Horrible이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오간다.)  물론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날씨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그럴 거라 생각하겠지만 영국에서의 날씨 이야기는 대부분 진심에서 나오는 짧지만 진지한 대화이다. 우습겠지만 진심 날씨를 염려한다(아니 그런 날씨 속에 있는 자신에 대한 염려). 또한 낯선 혹은 간혹 만난 서로가 유일하게 백 프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 거리이기도 하다.

 

영국은 사실 들리던 소문처럼 안개가 많이 끼진 않는다. 그건 아마도 산업혁명 시절 공해로 인한 스모그 현상 때문에 박힌 오해의 이미지일 듯하다.(물론 내가 타국과 비교하여 얼마나 안개가 빈번히 나타나는지 구글링해 보지는 않았음). 하지만 비 대한 이야기는 '사실' 내지는 '진실' 축에 낄 수 있다. 영국의 비는 그 양적인 측면보다는 빈번함이 문제가 된다. 물론 시기마다 지역마다 홍수가 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는 면도 있지만 홍수는 타국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므로 특이 사항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국에서 내리는 비는 뻔뻔하게도 너무 빈번하고, 그 때를 모르고 내리는 눈치 없음의 극치이다. 또한 종종 우박이 되어 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기도 하며 해가 나는 와중에도 흩뿌리듯이 내리는 통에 우산을 들고 다니기도 민망하게 만든다.


빨간 우체통이 있는 풍경을 찍으려다 비가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처음 런던으로 오기 전 짐을 싸던 나에게 부모님께서는 각자 좋은 우산을 하나씩 사주셨었다. 아마도 자식이 살게 될 곳이 어떤가 은근히 알아보셨을 것이고 그 속에는 비가 많이 와 신사들이 우산을 꼭 들고다닌다는 정보가 제일 크게 자리하고 있었을 . 런던에 도착한 첫날 서울의 고속버스터미널 보다도 못해보이는 공항을(십 수년 전이므로 그때와 지금은 사뭇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음) 빠져나와 예약해 둔 미니캡을 타러 가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이 '부슬부슬'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비의 형태가 되었다.) 미니캡의 분위기는 눅눅하고 꿉꿉했다(물론 낡았고). 유리창을 때리는 비는 부슬부슬 이었다가 촤르륵이었다가 후르륵이었다가를 반복했고 차 안에서는 쾌쾌한 냄새를 싣고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고 있었다. 때는 놀랍게도 7이었다. 7월에 히터를 틀지않으면 으스스한 날씨라니. 그게 영국 날씨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어느 비가 많이 오던 날 난 당당히 부모님이 챙겨 주신 우산을 들고 나갔고 우산은 펼친 지 5분 만에 생을 다했다. 부모님께서 큰 맘먹고 나름 백화점에서 산 비싼 우산이었는데 속이 쓰렸다(늘 어디선가 공짜로 주는 우산만 쓰시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산 없이 걷고 있었고 유행이었는지 생활 필수품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모자 딸린 옷을 입고 -일명 후드티- 우산 대신 후드를 머리에 쓴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마 후, 그다음에 펼친 우산도 바람에 뒤집어져 살이 부러지면서 생을 다했고 그 후로는 나도 꾀죄죄하던 불량해보이든 간에 그냥 후드티를 입고 비가 오면 모자를 뒤집어쓰는 걸로 간단히 비를 피했다. 그로 부터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후드족에 나 또한 동참하게됨(비바람 때문에). 당시 내 주변인들은 그런 영국의 날씨를 딱 3가지로 요약했는데 그건 비, 바람, 비바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서 바람이 불거나

 

라고 말해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어학시절 펍에서 액티비티를 하던  한 나이 든 괴짜 선생이(러브 액츄얼리의 할배 가수 빌리와 꼭 닮은)영국의 계절은 정확히 4계절로 나뉜다고 하며 꺼낸 말이다. 경청하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겨울, 겨울, 조금 따뜻한 겨울, 겨울.

이라고...

신나서 찍은 집앞 사진,간혹 이렇게 눈이 오는 겨울도 있다.

역시 영국은 섬나라여서 그런지 바람이 상당히 불어 때로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런상황에 비가 온다해서 우산을 쓰는 건 그냥 힘들겠다는 의지. 우산을 버리겠다는 의도.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났다, 비가 왔다 다시 해가 나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상황이 반복되는 곳에서 우산을 끼고 다니며 펼쳤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하는 것은 여간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 신사들이 살았던 시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던 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30분 단위로 우박과 비가 번갈아 내리다 해가 반짝했다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사실 며칠 째 이런다.


과연 봄은 언제 오는가? 아니, 벌써 왔는가? 왔다 갔는가?


심지어 엊그저께는 5월을 바라보는, 한국에서는 한창 꽃구경도 지나버린 4월의 막바지인 이 시점에 눈이 내렸다. 12월에 내리는 눈은 반갑지만, 4월말에 내린 눈은 슬프다.

영국에도 가을이 있음을 증명하는 집 앞 풍경, 가을같은 겨울이 더 맞다.
괜한 참견이겠지만 영국을 여행하고 싶다면 한여름에 하는 것이 좋다. 그나마 날씨가 제일 화창하고 그다지 덥지 않으므로(그만큼 관광객들에 치이는 것을 감수하고). 혹은 다른 계절에 여행을 한다면, 모자가 달린 멋스런 우의 하나면 족하다. 다른 옷가지들은그저 비옷을 거들뿐.


사족으로, 내가 생각하는 영국의 계절에 대해 하나 더 덧붙이자면, '겨울, 비가 많이 오는 겨울, 조금 따뜻한 겨울, 아주 추운 겨울'이 아닐까 한다(온난화 때문인지 영국의 여름이 조금씩 더 더워지고 있음에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거지같은 날씨'라고 부르지만)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니 하나는 늘 푸른 잔디이고, 또 하나는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자주 보이는 무지개이다.

모든 구름에는 은빛 테두리가 있는 것 처럼.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지인이 선물(?)한 무지개

-우박이 내리는 걸 보면서 괜스레 이 생각 저 생각에 씨부리 봄-

(방금 내린 쓸데없는 우박 동영상, 시끄러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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