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입했다가 "역대급 탁상행정의 결과" 소리 들었다는 것

by 밀리터리샷
출처 - 휴먼에이드포스트

“빨리빨리”. 한국 사회를 이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부사가 또 있을까? 실제로 택배를 하나 보내도 당일 배송이 되는 한국을 떠나 타지로 가면, 생활이 여간 답답한 게 아니라고 한다. “성격이 왜 그렇게 급하냐”라고 누군가는 질책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IMF 이후 급성장을 이룬 한국인들에게 급한 성격은 곧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지혜와 비례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인들의 성향은 도로에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고작 10분 일찍 가려고 왜 기를 쓰냐”라고 말하기엔 한국에서 10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최근 국내 도로에 도입된 법이 이를 방증한다. 항간에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른바 “탁상행정”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자.

출처 - 연합뉴스

자전거 승차 버스

시범 운행한다


최근 서울시는 2개월간 시내버스 5개 노선에서 '자전거 휴대 승차'를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버스 후면에 거치대를 설치해 자전거를 실을 수 있게 하거나 혹은 차량 내에 자전거 반입이 가능토록 한다는 것이다. 평일에는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주말에는 전 시간대에 이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시범 운행 중인 버스는 총 13대로 각각 여의도, 서대문, 영등포 등 서울 전역을 오가는 노선을 갖고 있다. 자전거는 해당 버스의 휠체어 전용 공간에 세울 수 있으며, 이동 중 휠체어 이용자가 승차하면 자전거 승객은 차에서 내려야 한다. 혹은 이미 휠체어 이용자가 승차한 경우에는 자전거를 반입할 수 없는 식이다. 서울시는 "시내버스에도 자전거 거치가 가능해진다면 택시와 지하철에 이어 대중교통과의 연계성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다보고 있다.

출처 - 중앙일보

“우리나라라고 못할 건 없지”

“교통체증만 더 심해지겠네”


소비자의 반응은 생각보다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선 “해외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법이니 우리나라에서 시행해도 문제없다고 본다”라며 자전거 승차버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 그리고 유럽까지 버스에 자전거를 싣곤 하니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왜 1~2명 편하자고 수십 명이 피해를 봐야 하냐”, “한국 교통체증이 얼마나 심한데, 자전거 싣느라 5~10분 지체되는 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아냐”라며 안 그래도 심한 교통체증이 심화될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법이 나올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기대보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속도 제한


내년 4월부터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전국 도시 지역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안전속도 5030 정책은 전국 도시 지역 일반 도로의 제한속도를 50km/h로, 주택가 등 이면 도로는 30km/h로 하향 조정하는 정책이다.


이전까지는 일반 도로의 제한속도가 대부분 60km였으며, 간혹 70km/h 도로도 존재했다. 이면 도로는 30~40km/h 정도로 제한돼 있었다. 제한속도를 줄이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교통사고 감소를 위해서다. 과속은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니, 속도를 낮춰 교통사고와 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출처 - 중앙일보

“취지는 알겠는데..”

“세금이 부족한가?”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접한 많은 운전자들은 “본 정책의 좋은 취지에 대해서 동의한다”라며, “이면 도로에서 30km/h로 속도를 줄이는 것이 보행자와의 사고 위험 줄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라는 반응이다. 안전이 최우선인 건 운전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도로에서의 속도를 50km/h로 하향시키는 것이다. 교통체증이 심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시행 중인 서울과 부산의 경우 정체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한다. 게다가 50km/h는 사실상 엑셀을 조금만 밟아도 도달하는 속도이기 때문에 “벌금을 통해 세금 채우려는 법안으로 보인다”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확인할 수 있다.

비만 오면

사라지는 차선


빗길 주행 시 차선이 안 보이는 것은 운전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다. 한 운전자는 “밤이라서 어두운 퇴근길에 비까지 내리면 차선이 너무 안 보여서 앞서 가는 차를 따라가며 감으로 운전한다”라며, “초행길은 중앙선 구분도 어려워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 많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교통문화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일반적인 교통사고 100건 당 평균 사망자는 0.5명이지만, 비가 내릴 경우에는 2.3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비가 올 때 차선이 안 보이는 걸까? 바로 울퉁불퉁한 도로 위에 재도색을 거쳐 지저분해진 도로는 금세 마모되고, 여기에 불빛이 반사되기 때문이다. 왜 반사가 되는 걸까? 간단히 말하자면, 차선을 도색할 때 반사성능을 높이기 위해 섞는 ‘글라스 비드’를 제대로 섞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깊게 들어가자면, 시공업체들이 글라스 비드 효과를 내는 규소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적정함량을 섞지 않아서다.

우천형 차선이 생겼다

“왜 이제야 만든 거야?”


그래서 고질적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천형 차선”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천형 차선은 빗길에서 차선의 가시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고안한 차선이며, 반사율이 높은 유리알을 차선에 설치하거나 차선을 돌출시켜 가시성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중부 내륙선, 영동선, 고속 국도 등 총 10 개선에 시범적으로 적용되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개선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비가 올 때도 운전할 수 있겠다”라며 안심하면서 동시에 “왜 이제야 이런 걸 고안해 냈냐”, “시공업체들의 잘못을 왜 소비자인 우리가 책임을 진 것이냐”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문득 나비효과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는 카오스 이론에서 초기값의 미세한 차이에 의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오늘 얘기한 도로 상황을 보니 꼭 맞는 예시가 될 듯하다. 정부가 탁상 행정을 하면 피해는 운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5~10분 지체되는 시간부터 사망까지 그 피해는 다양하다.


법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정부 기관들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실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한 순간의 선택이 국민의 안전과 삶에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점을, 그 막대한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소망하게 되는 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네시스 잡는다는 기아차의 명작 K8를 사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