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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seinate Jul 14. 2017

공무원 노량진특구, 비상구는 없을까?

[서평]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 역을 맡았던 배우 안재홍은 이전에 영화 <족구왕>에서 군대를 제대한 복학생 만섭으로 등장한 바 있다. 뛰어난 족구 실력과 함께 군대를 마친 만섭.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대학 기숙사에 들어간 만섭에게 기숙사 선배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권한다.

선배: "너 무슨 과야?"
만섭: "민족의 혈, 생활경영대 식품영양학과."
선배: "음, 공무원 시험 준비해."
만섭: "근데 저는 공무원 시험에는 별로..."
(중략)
선배: "음,  공무원 시험 준비해."

특출난 것 없는 만섭에게 별다른 탈출구가 없을 것이라 여긴 선배는 만섭에게 공무원 시험을 추천한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을 인생의 대안이자 출구로 여기는 대학생이 영화 속 선배 뿐만은 아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공무원 시대다. 2013년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의 경쟁률은 75대 1로 역대 최고에 달했고, 7급 공무원 공채 시험은 이미 100대 1을 넘겼다. 2016년도 전라북도 지방직 7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는 4명을 모집하는데 1138명이 지원한 바 있다. 일본 만화 <원피스>의 등장인물들은 원피스를 찾아서 떠나지만, 특별한 재능이나 좋은 스펙이 없는 한국의 대학생들은 공무원 시험을 찾아 노량진으로 떠난다. 

노량진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쾌속 성장하고 있는 공무원 시험 업체들이다. 공시생들은 공O기, 박O각, 메가O터디를 비롯한 거대 업체에 등록하고, 인근 고시원에 방을 알아본다. 좋은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기 위해 아침 일찍 줄을 서고, 끼니는 노량진 특유의 저렴한 식당에서 채운다. 인근 식당은 식권을 한 달 치를 끊어 판매하기도 한다. 사육신 공원에서 바라보는 속세는 멀기만 하다. 그럼에도 노량진에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노량진은 청춘의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청춘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사회학자 오찬호가 공무원 시험과 노량진에 대한 책을 썼다. 사회를 고발하는 내용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로 이미 이름을 알린 그다. 

이번 신작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모든 꿈과 희망을 접고 공무원 시험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안정성도, 인간적 근로도 없는 곳에서 믿을 건 9급 공무원 뿐인 한국의 자화상을 그린다.

저자는 전작 <진격의 대학교>에서 가상의 대학교를 상정하고 학생의 입을 빌려 사회를 비판했다. 이번에는 지구에 이주하기로 마음먹고 이주 국가를 선택할 외계인의 입장에서 한국의 모습을 그린다. 

외계인의 입장에서 파악하기에, 한국은 이주 후보국에서 제외해야 하는 나라다. 9급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 사회는 밝지 않다.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 속에서, 불안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나라는 어둡기 그지없다.

책에서 보여주는 수험생들의 모습은 이미 다른 다큐멘터리나 영상 매체에서도 묘사된 바 있다. 공무원에 도전하는 수험생들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고, 합격 비법과 수기를 읽으면서 의욕을 불태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십대 일의 경쟁은 만만치 않다. 노량진 역 횡단보도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 중 한 명 정도 합격하는 시험이다. 그래도 노량진에서 공무원을 준비하고 싶은 이들은 전국에서 몰려온다. 

물가가 매우 저렴한 노량진이지만, 그렇다고 9급 공무원 준비에 돈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 학원비, 식비, 노량진으로의 이사 시의 월세 등을 감안하면 오랫동안 준비하기에는 서민들에게 부담이 된다. 9급 공무원의 월급 역시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초봉은 기본급만으로는 130만 원 정도다.

9급 공무원은 과거에는 선호되는 직장이 아니었다. 경제 성장기의 다른 일자리보다 적은 급여, 비정규직이 없는 상황에서의 강조되는 안정성, 연금 등은 크게 특징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고관대작이 되어 이름을 떨치는 행정고시도 아니었기에, 지금과 같은 높은 경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사회적 원인에서 찾는다. 저자가 바라본 한국은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이다. 첫째로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둘째로는 과정이 불공정하며, 마지막으로 결과도 불평등하다. 안정된 삶을 찾기 힘든 불안도 공무원 시험을 택하게 하는 요소다.

앞선 세대는 고졸 가장의 소득으로 30대에 중산층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세대는 대졸 맞벌이 부부가 40이 넘어야 중산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취업이 요구하는 스펙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학벌, 학점, 토익과 토익 스피킹을 비롯한 영어는 기본이며 이외에도 봉사, 어학연수 등의 스펙도 필요하다. 

학생 시절을 사회 운동이나 학내 언론 활동으로 보냈다면 취업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중산층 가정의 학생이 학벌, 학점, 영어점수, 자격증,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과 외모의 스펙 관리에 전념하기는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

월세를 내기 위해 '매달' 열심히 살아도 '매해' 자신은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체험한다. 고생 끝에 낙원이 오는 게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낙하만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수많은 대학생들의 노량진행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51P

여기에,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운 학교의 학생들은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패배자' 정체성을 주입받고 자신의 입시를 패배로 여기는 심리가 탈출구를 찾도록 한다. 더 큰 노력을 시도하는 이들은 온갖 의심의 눈초리 속에서 위축된다. 

만약 취업에 성공하여 열심히 일해도 얼마나 일할지 알 수 없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더 이상 오랜 정년을 보장하지 못한다. 은퇴한 중년층이 택할 수 있는 자영업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결국 이런 걸 보고 자란 자녀 세대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기업의 집단주의적인 회사 문화나 사기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라는 헌신의 강요 역시 젊은 세대들에게 공무원을 선택하게 하는 요소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버려질 회사인데 젊은이들은 가치관과 생활을 모두 회사에 투입하고 싶지 않다. 회사를 위해 헌신하다가 잘린 50대 중장년층까지 공무원 시험에 새롭게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 빨리 공무원을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 전략으로 비춰지게 된다.

여성들도 공무원 시험을 선호한다. 임신이나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과 회사의 곱지 않은 눈초리는 여성에게 매우 부담이다. 과거보다 사회에 진출한 여성이 늘었지만 이들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사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유지하기는 지금도 쉽지 않다. 

결국, 이 모든 이유가 사람들이 노량진을 인간 블랙홀로 만들고 공무원 시험 합격률을 폭등하게 만든 것이다. 공정한 기회와 과정이 박탈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안정을 찾아야하는 현실이 이 문제의 진짜 원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실패하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모험과 강박에 빠져야 하는 현실이 공무원에 대한 선호를 높이고 있다.

한국인들은 이미 인간이면서 '인간이 되기 위한' 경쟁을 한다. 누구나 실패하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강박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가 무척이나 중요하니 사회 전반적으로 '안정적이고 검증된 직업군'(그래서 공무원!)에 대한 맹목적 선호가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해도, 실은 모두 기만"이다. -104P

저자는 사실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은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한다. 건물주나 공무원이 꿈인 나라이기 때문에 애초에 대통령을 꿈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도전 정신이 없다고, 나약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이들이 행하는 노력은 불안정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매일 매일의 모험이기 때문이다.

소득을 비롯한 사회적 격차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소득의 하위 계층이 겪을 현실이 인간다움이 보장되는 한계선보다 낮다면 도저히 사람처럼 살 수가 없다. 불평등이 내재된 곳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대접을 받기 위해 포화 상태의 경쟁으로 나아가는 길 뿐이다. 

저자는 '억울하면 공무원이 되라', '꼬우면 너도 성공해라'는 대응으로는 문제만 악화될 뿐이라고 본다. 대신, 비판적 시민으로서 개인들이 변화하여, 인간이라면 당연히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여야 한다고 본다. 패배가 죄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악화되지 않고 비판적 시민으로 살아갈 것을 말한다.

안정을 택하는 젊은이들의 나약함을 비판하고 손을 놓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쉬운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을 말한다. 노량진 맥도날드 앞에서 사람을 만나고, 노량진을 다룬 매체를 보고, 공무원 시험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내재한 불안을 찾아갔다. 

책은 노량진이 더 붐비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 사회가 선택한 가치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한다. "헬조선이라고 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고 한탄하는 미래가 오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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