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질 소리에 잠에서 깨어, 소박하지만 정리된 삶을 살아간다. 일반인들이 무시하는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묵묵히,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닦고 청소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책을 읽다 잠든다. 항상 똑같은 조용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것 같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아저씨. 그런 그의 굳어진 얼굴이 풀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때가 있다. 바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는 시간, 그리고 코모레비(木漏れ日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히라야마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며, 사람들과의 거리를 지키고, 자신의 작은 순간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화장실뿐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신의 삶을 늘 깨끗하게 닦고 있다. 깨끗하게 콧수염 정리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또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영혼이 녹슬지 않도록 가꾼다. 그런 그의 삶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 작은 소중한 삶이 얼마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지 점점 깨달아간다.
그러나 마음이 깊은 사람은 그만큼 큰 상처를 지니고 있는 법이고, 사람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히라야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 정도의 깊이에 도달했단 말인가. 삶의 모든 것에서 소중함을 느끼는 히라야마는, 아마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사람이리라. 그 음악과 햇빛 사이로, 히라야마의 깊은 상처는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빔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의 삶 사이에 빛과 그림자가 가득한 꿈을 그려 넣는다. 시각세포는 두 가지가 있다. 색을 인지하는 세포와 빛과 그림자를 인지하는 세포. 밝은 곳에서는 색으로 모든 것을 인식하지만, 빛이 별로 없는 어두운 곳에서는 빛과 그림자만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빛과 그림자만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세상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준다. 히라야마는 꿈속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코모레비에 대해 자막까지 넣어가며 설명을 했지만, 코모레비는 빛이 주체다. 빔 벤더스가 설명한 히라야마의 과거 깨달음의 시점에도 빛이 중요한 모티브라고 했다.
하지만 히라야마의 꿈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바로 그림자다. 히라야마가 자기 전 책에서 읽었던 구절 중에 '影(영: 그림자)'라는 한자가 유독 두드러지며, 나뭇잎의 그림자들이 서로 겹쳐진다. 코모레비는 일렁이는 햇빛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면 바로 일렁이며 겹쳐진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의 꿈은 그림자가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는 자신의 과거를 딱히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과거를 입에 담는 것조차 상처가 되는 그런 깊은 상처일터다. 바로 히라야마가 살고 있는, 불에 탄 흔적이 얼핏 보이는 낡은 집처럼.
나에게도 그런 짙은 상흔의 과거가 있다. 삶의 모든 것이 부서지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두고, 원망의 화살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 위로의 말이나 손길에게도 피해를 줄까 봐 멀리 떠났던 시절. 그 달동네에는 골목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동네 사람들이 앉아서 쉬던 커다란 느티나무와 평상이 있었다. 아주 잠시만 있을 수 있었지만 그 평상 나무 그늘에 누워서 느티나무 그늘 사이로 비치는 코모레비를 보는 것이 그렇게도 위로가 되었다. 일렁이는 햇빛은 마치 내 삶이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그 위안과 희망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도 그 시절을 견뎠다. 히라야마가 코모레비를 보며 잠시 평안해지는 그 미소는 바로 그 시절 나의 미소였다.
히라야마와 같이 맥주를 나누던 '그 남자'는 히라야마에게 물어본다. "그림자도 겹치면 짙어질까요?" 히라야마는 당장 해보자고 한다. 그 남자는 그림자가 똑같아 보인다고 하고, 그림자 전문가인 히라야마는 짙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빛은 파동이기도 하므로 회절현상이 일어난다. 광원이 완벽하게 1개라고 하고 반사하는 물질이 없어도, 그림자 속에 들어간다고 해서 완벽히 빛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림자 속에도 주변 빛의 회절현상으로 빛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회절되는 빛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그림자를 겹치면, 점점 어두워진다. 그림자 속에도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 겹쳐지는 그림자를 많이 본 히라야마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상처도 겹치면 짙어진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렇게 겹치고 겹친 그림자들의 사이가, 바로 코모레비처럼 빛난다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와 그림자의 틈, 상처와 상처의 틈, 아주 작은 공간들, 비어있는 줄 알았던 그곳이 희망이라는 걸,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그 순간만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 그의 삶은 코모레비와 같아졌다. 그가 항상 흑백 사진으로 남기는 그날그날의 코모레비는, 항상 똑같아 보이지만 다른 소중한 그의 일기인 것이다. 일기는 한자로 日記라고 한다. 히라야마는 말 그대로, 그날의 태양을 기록하고 있다.
깊은 상처는 히라야마에게 모든 날들이 완벽하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날도 모두가 완벽하다. 그림자의 뒤엔 빛이, 죽음 뒤엔 생명이, 이별 뒤엔 사랑이, 눈물 뒤엔 웃음이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덧없이 사라져가는 생의 한 뒤켠에, 빔 벤더스의 유서와도 같은 이 작품은 낡은 카세트 테잎의 노래처럼 탁한 빛으로 관객의 마음 속을 비춘다. 그러기에 모든 나날들은 아름답다고.
* 영화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보는 글들인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시리즈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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