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고양 Jul 07. 2022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공부하기 가장 좋은 공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MMCA)

컬렉팅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어떻게든 알아야겠다는 욕구가 생긴다. 지금은 자금사정때문에 어렵지만, 나중에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나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화백들의 그림 한점 소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딱딱하게 책으로 근현대미술사를 공부하기보다는 직접 작품을 보고 느끼며 알아가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곳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다. 일단 소장품이 방대하고도 훌륭하고, 큐레이터들도 미술사에 대한 지식, 안목의 측면에서 우리나라 탑급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시각을 빌어 우리도 몇 년 정도 시간을 가지고 전시를 감상한다면 미술사에 대해 어느정도 배경 지식이 쌓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을 보는 안목은 덤이고 말이다.


현재는 3,4,5,6 전시실에서 2022.9.18일까지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사실 일부 전시회에서는 일부 작가나 미술사조에 집중해서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렇게 시대별로 쭉 정리가 된 전시는 드문 편이다. 나도 그간에 책에서 봤던 작가들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한번에 쭉 보니 어렵던 미술사가 정리가 조금은 정리가 된 느낌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수준높은 소장품 등으로 구성된 특별전도 볼거리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공간인만큼 큐레이션에 있어 관객에게 새로움을 선사하는 다양한 시도들도 한다는 점도 높이 사야 한다. 나도 어쩌다가 잠시 회사 박물관 담당자가 되서 전시 기획 등을 하는 걸 곁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이디어 짜내고 작품 구색 맞추는 것이 얼마나 미춰버릴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전시회에 올 때마다 큐레이터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전시 구경을 시작한다. 이번에 마련된 특별전은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와 "가면무도회"였는데, 동영상 제작이나 어울리는 음악까지 매치한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한 큐레이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수준높은 전시들을 놓치지 말고 감상해주는 것이 우리의 도리다.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2022.9.18일까지)


당신이 극심한 주차난을 뚫고 겨우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했다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반드시 이 전시만큼을 휘휘 둘러보고 가길 바란다. 특히 앞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팜플렛도 꼭 챙기면 좋겠다. 20분 내에 한국근현대미술에 대해 어느정도 얼개를 짤 수 있도록 구성된 금쪽같은 팜플렛이다. 일단 3층으로 올라가서 5~6전시실을 따라 1900~1970년대까지의 미술사를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한 후, 2층 3~4 전시실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미술을 감상하면 된다.


나와 남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전시실은 1900년대 초부터 1940년대까지의 미술품들이 전시된 5 전시실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사실 화가들은 있었지만 이들은 궁에 속하거나 고위층의 미술품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그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1세대 유화가들이 등장하면서 도쿄에서 유학하며 서양의 화풍을 배워온 화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때 작품들을 보면 서양의 화풍을 배우며 화가들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화폭에 무엇을 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역력했다. 시대의 격변 속에서 서양 화풍을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적인 미를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와 자아성찰이 있었을지를 생각하면 존경스럽다.


내가 감명을 받고 그 작품 앞에서 마치 그 작가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몇 작품을 여기 소개해본다.



우아함의 결정체,
이인성 화백의 <카이유>


나와 남편이 상설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바로 이인성의 "카이유"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인성 화백을 재발견했다고나 할까. 그간에 전시회에서 간간히 마주치긴 해서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수작을 보고 반하지 않을  없었다.

이인성, <카이유>, 1932

이인성(1912~1950)은 당시 조선인들이 거의 유일하게 화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통로였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속 6회의 특선을 차지한 스타 작가였다. 하지만 38살의 너무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서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이 카이유는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1932) 입선작이며, 원래 일본 황실 소장이었다가 어느 신하에게 하사품으로 전달되어 그 자손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행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보면 흰색 카이유가 눈에 확 들어왔다가 이내 다른 꽃들과 어우러져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 무어라 말을 거는 듯한 조소, 권진규


권진규(1922.4.7일~1973.5.4일)는 점토를 구운 테라코타를 이용한 조소로 유명한 작가이다. 사실 나는 회화, 그중에서도 유화를 가장 좋아하기에 그간에 권진규 선생님의 작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옥션 프리뷰에 출품된 "혜정"을 보고 권진규 선생님에 대해 스터디해보고 다양한 작업들을 보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너무 아쉬웠던 것은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권진규 탄생 백주년기념전을 열었는데 관람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아는만큼 볼 기회가 생기는데 말이다.


다행히 국현 상설전에서 권진규의 마스크를 감상할 귀한 기회가 있었다. 내가 방문한 시점에는 특별전 "가면무도회"에 잠시 옮겨져서 전시되고 있었지만 특별전이 끝나면 "시대를 보는 눈" 전시로 돌아갈 예정이다.



권진규, 마스크

마스크는 나의 정체와 표정, 감정을 숨기기 위한 수단이다. 이 마스크는 준엄하게 뭔가 이야기하려는 듯한 표정이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텅 빈듯한 표정이기도 하다. 오래된 그리스 유물같이도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설명에도 마스크의 형태감이 오래된 그리스 조각을 생각나게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 마음속에 이 표정이 오래 남아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권진규 선생님에 대한 책을 한권 사서 읽어봐야겠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이중섭


이중섭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알 정도로 유명한 작가다.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이고,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작가이기에 그런지 국현에서도 당연히 소장하고 있었다.


이중섭 작품을 보면 정말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가득 느껴진다. 전쟁으로 인해 만날 수 없는 가족들에게 그들이 한때 함께 살았던 제주를 배경으로 만나면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그려 편지로 보냈다고 한다. 극한의 생활고, 좋지 못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이렇게 아름답고 밝은 그림을 그려냈다는 사실을 알면 이 작품들이 달리 보인다. 끝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쓸쓸히 숨을 거뒀다는 걸 알게 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이중섭, 애들과 물고기와 게(1950년대)




담담하고 강한 슬픔, 윤형근


윤형근(1928년~2007년)은 한국전쟁, 반공법 등 한국사의 굴곡 속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던 작가다. 총 3번 복역, 1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 강렬한 경험들이 그의 작품의 주된 모티프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은 굉장히 강한 필치로 순간 압도하는 듯 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거기서 떠나가기 어렵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 아이코닉한 작품세계를 그는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서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한번에 찍어 내려 그은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그의 인생이 담겨있는 한 획, 한 획을 마치 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마음에 깊이 감명받게 되면서 마치 이미 작고한 작가의 분노 그리고 슬픔을 캔버스를 통해 마주하는 듯하다. 나는 아무래도 슬픔에 매료되는 사람인가보다.


윤형근



도심속에서 벗어나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산 속에 있는 미술관이다 보니 미술작품을 보고 나와서도 곧바로 일상속에 돌아온다는 느낌보다는 조금은 나만의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있었다. 도심 속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산과 나무를 바라보며 잠시 앉아서 어떤 작품이 제일 좋았는지 남편과 정답게 대화를 나눴다.


1층 아트숍에서 팔고 있는 MMCA의 책들도 한번 살펴보자. 나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MMCA에서 나오는 책들은 수준이 높아서 읽어보면 한국미술사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사실 미술관 1층의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전시회의 여운을 느끼고 싶었는데 내가 나오는 시점에는 이미 문을 닫았었다. 다음 번에는 꼭 아이와 셋이 들러보고 싶다.


전시관 앞에는 요새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해외작가인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도 있었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본 뒤로 조형물은 처음 본 것 같다.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미술관 앞에 있으니 더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뭘까?



아이를 데리고 가는 분들을 위한 정보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전시에 따라 다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주차가 헬이기로 유명한 곳이다. 아이가 없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했겠지만, 유모차 때문에 어쩔수 없이 차를 가지고 갔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정말 주차하는데만 40분이 넘게 걸렸다. 사람이 더 밀리는 시간에는 더 심할 것 같으니, 만약 가능하다면 평일 낮에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미술관 입구까지도 거의 5분 넘게 올라가야 했다는 점..


유모차 반입은 가능하지만 전시실로 올라갈 때 백남준 선생님 작품 앞을 지나야 하는데, 거기에 계단이 조금 있어서 유모차를 들고 올라가야 했다.


혹시 미리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 가고 싶으신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구글 아트가 있으니 전시정보를 미리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내용을 미리 알면 아이에게 설명해주기도 좋지 않을까.


링크: https://artsandculture.google.com/story/qAUBkfpskaLP1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