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툴리> 리뷰 / Tully, 2018
*이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툴리는 아주 친절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각자의 해석에 달려있는 듯하다. 영화에서 툴리는 중반부가 넘어가서야 등장하고 결말에 다다라서야 그 정체가 밝혀진다. 반전 영화도 아닌데 두근 두근하며 영화를 본 나는 여운 때문에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었다.
I'm here to take care of you.
툴리는 자유분방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주 반짝반짝한 존재다. 그에 비하면 마를로는 늘 포기만 하고 사는 세 아이의 엄마다. 카페인을 포기하고 입맛을 포기하고 친구를 포기하고 새롭게 나아가기보다 매일매일 한 걸음 뒤로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마를로에게 야간 보모라는 툴리의 존재는 한 줄기 빛 같았다. 툴리로 인해 점점 밝아지는 마를로의 모습에 이게 바로 포스터 카피의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라는 거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반전은 마를로의 결혼 전 성이 툴리라는 데서 온다. 첫 번째 충격은 마를로가 툴리였다는 점, 두 번째는 남편은 무얼 했길래 야간 보모가 왔다는 것은 거짓이었다는 것도 몰랐냐는 점이다. 자세히 생각하면 남편은 단 한번도 보모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이름을 물어보지도 나이를 물어보지도 않았다. 더 슬픈 점은 그가 영화 속에서 그리 '나쁘게' 그려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평균적인 남편, 남편의 표준, 저 정도면 됐지, 하는 수준. 무관심은 사람을 더 병들게 한다. 한 마디 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쓸쓸해졌다.
동생을 걱정하는 좋은 친오빠와, 좋은 남편은 아니다만 멀쩡한 수준의 남편까지 치더라도 그녀의 주변에 나쁜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욱 비극적이게 느껴지는 마를로의 깊은 우울이 마음에 와닿았다.
마를로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된 순간은 너무나도 외롭고 화가 나는 오전을 보낸 뒤, 카페에서였을 듯하다. 임신 막달의 거대한 배로 두 아이를 힘겹게 등교시키고 난 후 겨우 끝냈다,라는 심정으로 카페에서 디카페인 음료를 시키는데 모르는 할머니가 도 넘은 오지랖을 부린다. 홧김에 시킨 초코칩 머핀은 입맛이 없어 깨작거리기만 한다. 그런데 옛 친구 '바이올렛'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바이올렛은 20대 시절 함께 살던 룸메이트였다. 여전히 그때 그 모습을 한 친구를 보고 마를로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산을 하고 난 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그야말로 전쟁 같다. 영화에서 마를로는 너무 지친 나머지 야간 보모에게 전화를 하지만 사실은 그때 그 친구 '바이올렛'을 떠올린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마를로는 그 친구가 바라보던 그 시절의 나 '툴리'를 다시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꺼내온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티비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인어 공주 이야기와 툴리가 들려주는 배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 툴리는 비단 꼬리를 가진 자유로운 영혼의 인어 공주다. 마를로는 두 다리를 가진 대신 자유라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마를로는 꿈을 꾸면 늘 깊은 물속에서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헤엄치는 인어의 꿈을 꾼다. 여전히 꿈속의 또 다른 나, 툴리는 결국 아주 중요한 순간 나타나 그녀를 구하기도 한다.
툴리가 들려주는 배 이야기는 이렇다. "매일매일 합판이 바뀌는 배가 있다. 모든 합판이 다 바뀌어버렸을 때 그 배는 이전의 배와 같을까? 다를까?" 마를로의 답은 "다른 배"였다. 그럼 달리 생각해보자. "인간 몸의 세포도 매일 탈락하고 매일 새롭게 생긴다. 그럼 모든 세포가 바뀌는 순간이 오면 나 자신은 이전의 나와 다른 존재인가" 마를로는 망설인다. 툴리는 고민에 도움을 주는 말을 덧붙였다. 인간의 몸에는 단 하나 평생 바뀌지 않는 '청각 세포'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답은 정해졌다. 인간은 매일 합판을 바꿔치는 배와는 다르게, 10년 후에도 10년 전에도 여전히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다.
마를로에게 툴리라는 이름이 결혼 전 잊혀진 성인 것처럼, 몸매도 생각도 너무나도 달라진 것처럼 다른 사람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둘은 같다. 나는 결혼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지만 영화를 보며 위로를 받는 기분을 느꼈다. 하루하루 나이 먹어가며 포기하는 게 점점 많아지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꿈꾸던 것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도, 그래도 나는 '나'다.
위대한 엄마는 없다. 위대한 여성은 없다. 세상이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일 뿐이다. 해피 엔딩은 아니지만 마를로가 이제는 자기 자신 속의 '툴리'를 잃지도 잊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다짐한다.
바이올렛이 툴리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남자를 데려오는 것 때문에 싸워 툴리가 툴툴거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