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꼭대기에서 본 것 <버드 박스>

영화 <버드 박스> 리뷰 / Bird Box, 2018

by 달의 뒤편

*이 리뷰는 스포일러결말에 대한 해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버드 박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버드 박스>는 '산드라 블록' 주연의 공포 장르 영화다. <세컨 찬스>(2014)의 감독 '수잔 비에르'가 연출했고, <컨택트>(2017)의 각색 작업을 한 '에릭 헤이저러'가 각본을 맡았다고 한다. '조시 맬러먼'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 끔찍하게 변해버리는 괴현상에 인류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두 아이를 지켜야 하는 맬러리(산드라 블록)의 이야기를 그렸다. 124분의 꽤 긴 호흡의 러닝타임임에도 뒷 내용이 궁금해서 멈추지 못하고 단숨에 보게 됐다.



어느 날, 전 세계적으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집단 자살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는 차 뛰어들고, 머리에 총을 쏘고, 자해를 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린다. 이들의 공통된 점은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를 보고 눈동자가 변해버린 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스스로 자살하고 만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존재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바람 혹은 그림자 같은 게 지나가는 것을 통해서만 그것이 존재함을 알 수 있고 실제로는 보여주지 않는다. 바이러스일까 악령일까 아니면 내 마음속의 공포일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는 엄청나다. 영화는 종종 눈 앞을 가린 인물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거칠고 불안한 호흡이 함께 들리면, 나는 그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인데도 숨이 막히는 긴장감을 느꼈다. 영화는 사실 뻔하다. 인류의 종말을 그린 많은 SF 공포 영화에서 다루어왔던 소재다. 좀비 바이러스 혹은 알 수 없는 괴현상들이 생겨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고 배신하고 죽고 하는 일들 말이다.


바깥에서는 눈가리개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버드 박스는 누구나 지금 당장에도 느낄 수 있는 '공포'를 담았다는 점에서 다르다.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에 좀비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공포는 지금 방 안의 불을 모두 끄고 눈을 감은 채 화장실을 찾아가 보라고 해도 느낄 수 있다. 영화 속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강제로 보지 못 하게 됐고, 보는 것의 자유를 잃게 됐다. 눈을 감으면 청각이 더욱 예민해진다. 보이지 않아 소리로만 판단해야 하는데 내가 잘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어떡해야 할까. 판타지가 아니라 누구나 당장 경험해볼 수 있지만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쉬운 공포'를 '쉽지 않게' 그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맬러리와 보이, 걸이 릭의 피난처에 도착해서 그곳이 시각 장애인 학교임을 알게 되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들이 보이는 사람들의 세상에 살아갈 때의 공포가 어떨지 감히 상상해보지 못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시각 장애인들은 보이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이들이지만, 버드 박스 속에서는 다르다. 정반대의 극한 상황 속에서 말로리가 겪은, 그리고 나에게 느껴진 공포감이 확 와닿았다.


나무 꼭대기에서 본 것

영화를 보고 나서 톰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났다. 어린 시절 아주 커다란 나무를 타고 올라 꼭대기에서 본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집 안에서만 산 아이들은 바깥세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톰은 그런 아이들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길 원하지만 맬러리는 지독한 현실을 고집한다. 결국 톰은 이야기를 끝까지 전하지 못하고, 맬러리에게만 새 둥지에 있는 다섯 마리의 새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맬러리는 아이들을 찾다가 울면서 말한다. 톰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톰이 사실 본 것은 수 백 명의 아이들과 새들과 우리들이었다고, 우리 네 명이 함께하는 것이었다고 말이다. 거짓말이 섞여있었지만 맬러리 마음속 깊은 바람이었을 것이다.


톰의 이야기 속에서 둥지에 있던 새 다섯 마리는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톰과 맬러리, 보이, 걸, 그리고 어쩌면 둘 사이의 새로운 생명까지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나무 꼭대기에서 본 것은 바로 꿈이다. 그들의 바람이자 아이들의 희망.

톰과 맬러리
인생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이룰 수 없을지 몰라도 꿈꿀 수 있게 해줘야 해. Life is more than just what is. It just could be. What you could make it. You need to promise them dreams that may never come true.


볼 수 없는 세상에서 꿈꾸는 일
살아남아survive 살아있는live 존재가 되는 일

맬러리와 이름이 생긴 보이(톰), 걸(올림피아)은 버드 박스 안의 작은 새 세 마리를 하늘 위로 날려 보낸다. 세 사람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새장 안에 갇힌 새 처럼, 눈가리개와 창문을 막은 집 안에 갇혀만 살던 이들이 날아갈 곳을 찾은 것이다.


버드 박스는 '볼 수 없는 것'과 '보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원하는 대로 볼 수 없는 세상에서 보고 싶은 희망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 톰이 한 말처럼 살아남는 건 살아있는 게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람을 살아있게 만든다. 보이와 걸이 '살아남은 것'에서 더 나아가 이름을 가지고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결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끝으로 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 산드라 블록의 혼신의 독백 연기와 손을 꼼지락거리며 눈빛 연기를 펼친 꼬마 올림피아♡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주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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