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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May 25. 2018

나에게 이 버릇없는 문장이 필요했던 이유

<제가 알아서 할게요> 출간 후기 

쇼핑을 나갔다가 모처럼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상큼한 분홍색의 멜빵 치마였다. 옷걸이에서 옷을 꺼내 몸에 대어 보다가 문득 손을 멈칫했다. 내가 서른이 넘어서 여대생처럼 귀여운 옷을 입고 다니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이상해 보이기만 하면 다행이지, 남들이 욕하는 거 아니야?


내 돈으로 사서 내 몸에 걸치는 옷인데 나는 왜 남의 눈치를 보게 되었을까. 내가 살아왔던 세상이 그랬기 때문이다. 서로의 취향을 지적하는 말이 웃음과 함께 숨 쉬듯이 뿌려지는 것을 평생 동안 보고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 취향, 유행 같은 것을 의식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취향까지 나이에 맞추어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아직도 20대나 입을 법한 귀여운 옷을 좋아하는데, 이제 그런 옷을 구매하려고 카운터에 서기만 해도 어쩐지 등이 따갑다. 그들이 사실은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둥글게 살면 마음이 평화로울까 


내가 나를 놓치는 순간마다 가끔 고개를 갸웃하기는 했지만 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난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많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살이 찌면 자기 관리를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기에 다이어트를 하고, 귀찮지만 예의를 갖추기 위해 출근 전에 화장을 하고, 대학 졸업반일 때 나보다 조급한 주변 어른들의 재촉에 '취업을 위한 취업'을 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를 바꾸면 주변의 목소리는 일순 조용해지는 듯하나 내 마음이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조언하는 세상은 내가 살고 싶은 세상과는 달랐다. '애 낳으면 끝이니 결혼 전에 실컷 즐겨'라든가 '회사 밖은 전쟁터인데 퇴사라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네'라든가 하는 조언을 가장한 참견을 들을 때마다 '왜 내 삶이 당신과 같을 것이라 단정하느냐'고 대꾸하고 싶었다. 애정인 척하는 조언이 실은 제 삶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잘난 척일 뿐이라는 걸 감지할 때면 더욱 그랬다.


경험과 경력을 쌓으며 개구리가 된 어른들은 느리게 헤엄치는 올챙이들을 답답해하며, '내가 너만 했을 땐……' 혹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문장을 성급하게 내뱉는다. (72p)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굳이 내 삶의 엑스트라들에까지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101p)


나의 삶에 대한 기준이 남들과 다를 때 나는 때때로 선택해야 했다. 나를 바꿀 것인지,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더라도 내 목소리를 낼 것인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기준을 나에게 끼워 맞춰야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웬만하면 갈등을 만들지 않고 둥글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둥글게 좀 살아'라는 엄마의 말에 '엄마, 싫은 건 싫다고 말해야 둥근 마음으로 살 수 있어'라고 대답하는 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내가 느끼고 있던 막연한 의문이 절정을 찍었다. '결혼했으면 너희 좋을 대로만 살 수는 없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저는 제 좋을 대로 살 건데요?'라고 말대꾸하고 싶어서 마음이 소란했다. 나는 그저 남편과의 관계로 인해 시댁 가족들을 받아들였을 따름이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 내가 시댁에서 '도련님'과 '아가씨'를 존칭하며 가장 낮은 서열로 편입되는 사회적 관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우리 집 제사가 언제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 나에게는 자꾸 시댁에서 제사 날짜를 알려주셨다. 며느리에게 요리를 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시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었고, 나와 집안일을 나눠 하는 남편은 '자상한' 남편이 되었다. 그게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야 자명했다. 온 사회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시댁이고 아들이기 때문에 며느리에게 베풀어야 하는 친절의 기대치가 낮았고, 아내이고 며느리인 나에게는 애교라는 감정 노동까지가 당연하게 요구되었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원래 그래야 한다'는 의무에 둘러싸이다 보니, 그 이전부터 내게 주어졌던 각종 역할에 대해 한 발 물러나서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성별, 나이, 직업, 환경'에 따라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을 학습했을까? 그걸 거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 아들 귀하게 키웠다'는 시아버지에게 나는 '아버님, 저도 귀하게 컸어요'라고 대답하며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며느리가 제사상 차리는 건 당연히 배워야지'라는 말에 '그 문제는 남편의 몫'이라고 답하며 며느리 도리를 외면했다. 미운 털은 좀 박힐지언정 다행히 세상이 뒤집히지는 않았다. 남편이 내가 느끼는 차별적인 문제에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족끼리 꼭 그렇게 칼로 자르듯 이기적으로 굴어야 하냐고?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을 참아내며 계속하면 결국 그 화살은 남편에게 돌아가고, 부부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기존의 가족 때문에 새로운 가족이 무너지는 셈이다. (208p)
결혼이 낡고 버거운 관습으로 여겨지지 않으려면 지난한 갈등을 털어내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여성으로서 살아야 하는 세상에 발을 디뎠다. 난 투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내 삶을 위해서 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하는 소극적인 투쟁이나마 하지 않을 수 없다. (273p)


두 사람만의 작은 세계를 한 걸음만 벗어나도 외부의 수많은 요소가 우리가 구축해온 평화롭고 동등한 부부관계를 무너뜨리려 했다. 모두에게 당연한 불합리함의 조각이 되기보다, 남들이 보기에 불성실하더라도 우리 부부의 당연함을 택하기로 했다. 좋은 며느리가 되려고 무리할 수는 없었다. 며느리가 아니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수행해야 하는 더 중요한 역할들에 에너지를 써야 했다.



조금 이기적이더라도 내 삶을 선택하고 싶다 


브런치에 내가 느낀 세상의 오지랖과 불합리함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연재되는 글을 많은 분들이 읽고 댓글로 의견을 달아주셨고, 연재된 글에 새로운 내용을 더해 책으로 엮었다.


글을 읽고 '내가 느꼈던 불편함에 대해 속 시원하게 풀어주셨다'고 공감된다는 분들도 있는 한편, '요즘 여자들은 너무 이기적이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곧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멀어진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타고난 성별이나 나이, 사랑으로 택한 배우자와의 생활에 대한 수많은 '불합리한' 의무에 동의한 적 없었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주변 사람들의 성향, 주어지거나 만들어간 환경이 다를 것이다. 전통적인 풍습과 가족 내에서의 역할에 가치를 부여하여 살아가는 것이 만족스럽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 다만 각자의 선택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누구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나는 그 다소 과감한 선택을 응원하고 싶다.


납득할 수 없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내게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버르장머리 없는 문장이 필요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주저하지 않기를 응원하고 싶다. … 주변에서 던지는 무성의한 말에 가끔은 속상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보내는 우려 섞인 조언에 때로는 마음이 무거워도,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7p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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