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 반쪽의 이야기 The half of it >

by Erin Park

2020년 코로나는 너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극장은 회차를 줄이고 거리두기로 좌석을 조정했다. 거리두기 2.5 단계가 되면서 상영관 내 취식 금지와 오후 9시 이후엔 극장의 불이 꺼진다. 거리두기 초기엔 앉으면 안 되는 좌석 표시가 상영관 의자에 없었다. 거리두기 좌석에 앉아서 팝콘을 먹으면서 상영 중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스탭을 불러와서 제 자리에 앉히니 그 수많은 빈자리 중에 하필이면 내 옆이었다. 이때는 열을 비우는 거리두기 좌석 방식이었다. 결국 나와 남자 친구는 스탭과 함께 상영관을 나와서 영화 보는 것을 포기했다. 스탭도 미안했는지 요청도 안 했는데 바로 환불을 해 주었다. 현장 매표 시 좌석은 거리두기 하라고 강요하질 못한다고 한다. 한 번은 마스크도 안 쓰고 내가 예매한 좌석에 앉아서 나보고 딴 자리에 앉아서 보라고 하길래 마스크 쓰고 이야기하라 했다가 잘난 척하지 말라는 소리도 들은 적도 있다. 코로나 초창기, 공포가 극에 달았던 때이다. 코로나 초기엔 뭐든지 다 혼란스러웠다. 용산 아이맥스에서 놀란전을 하던 9월, 갑자기 좌석 조정과 함께 앉을 수 없게 좌석을 아예 뽑아버린 극장의 혼란도 올해의 혼란일 것이다.



올해 코로나 확진자 동선 때문에 간담이 서늘한 적이 있었다. 영화를 보러 간 것은 아니고 휴일이라 생일 콤보만 포장하러 간 극장에 영화를 봤던 사람이 확진이 되어 영화관이 동선에 떴다. 약간의 시간차로 비켜 갔는데 그 영화관은 매점만 영업을 멈추고 상영관은 영업을 그대로 하였다. 이때만 해도 상영관에 확진자가 다녀가면 방역 소독하고 전체 영업을 멈췄던 때이다. 그리고 또 몇달이 지난 후, 주말에 쇼핑몰에 있는 극장을 다녀왔는데 월요일에 그 쇼핑몰 직원이 코로나 확진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를 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옷을 보러 매장을 둘러봤다.그래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몇 층 매장인지 알아봤고 다행히도 우린 그 층은 들리지 않았지만 행여나 나로 인해 누군가를 감염시킬까 하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 없는 상영관과 회차를 찾아서 영화를 보러 다녔다. 영화들은 개봉이 미뤄지고 점점 영화관에 가는 횟수는 줄었고 동선을 최소로 하고 요깃거리를 간단하게 준비해서 밖의 음식을 사 먹질 않았다. 소위 대관이라고 우리 둘만 영화를 봐도 절대로 마스크를 벗지도 않았고 철저하게 좌석을 닦고 손소독제를 사용하였고 팝콘은 늘 비닐을 챙겨가서 포장해왔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데도 코로나 시대에 영화관을 가는 것에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리두기 2.5 단계에 취식이 금지되어도 여전히 눈을 피해서 취식을 하고 거리두기 좌석의 안내를 뜯고 붙어 앉고 상영관 내에서 마스크를 아예 안 쓰고 보면서 끝나고 나갈 때 쓰는 사람도 있다. 결정적으로 방역 수칙을 무시하고 출입 명부를 하지 않고 관 타기를 하는 사람을 직접 보고서는 극장이 무서워졌다. 개봉 전에 시사회를 즐겨 다녔고 개봉일에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2020년은 젠틀맨을 마지막으로 홍보 대행사의 개인적인 요청에도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올해의 마지막 날 조조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리마스터링을 보고 왔다. 영화 한번 보는 게 이렇게 힘든데 폰딧불이가 너무 많았다. 조도를 낮췄더라도 핸드폰을 보는 횟수가 너무 잦아서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 힘들었다. 거리두기를 하니까 불편하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img.jpg 넷플릭스 오리지널 <반쪽의 이야기>



집에 돌아와 잠시 쉬었다 넷플릭스의 "반쪽의 이야기"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 집중을 못해서 주인공 엘리 추가 성소수자란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그냥 단지 애스터를 부러워하고 그녀처럼 되고 싶어 하나 보다 그렇게 내 맘대로 단정 지으면서 영화를 봤다. 전에 엉뚱하게 죽은 사람으로 결론 내려버린 영화 '지구 최후의 밤'처럼 어려운 영화도 아닌데, "영화가 괜찮네, 꼭 봐" 이렇게 친구 둘에게 이야기했고 왜는 생략해버렸다.


고전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설정을 가져와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영리한 구성을 하였다. 대필을 하는 시라노 엘리 추, 시라노의 사랑을 받은 록산느 애스터, 그리고 대필을 부탁하는 폴 , 성별과 인종의 설정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살리는 대사에 담겨 있는 메시지, 유연한 극의 진행, 극의 밸런스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OST, 무엇보다도 퀴어스러움 ( Queerness)과 퀴어하기 (Queering) 어느 것을 강요하지 않고 주체성을 찾는 과정을 성장담으로 녹인 따스함이 묻어난 작품이다.


자신을 향해 "칙칙폭폭 추추"라고 놀리는 이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 한번 치켜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신을 지키는 엘리 추를 보면서 비문을 섞어가면서 누군가에게 비난을 한 적이 없나 되돌아보게 되었고 엘리 추의 자전거와 속도를 맞춰 뛰는 폴을 보면서 배려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넷플릭스의 시대"란 책엔 일반 시청자가 시간적으로 전문 평론가와 같은 조건으로 영화를 접근하게 된다고 한다. 동일한 개봉의 기회이다. (전문가들이 전체 시즌이 개봉되기 하루 또는 이틀 전에 일부 에피소드의 접근이 부여된다) 그래서 코멘트 섹션에서 댓글을 쓰는 일부 시청자가 기사를 쓴 기자보다 해박할 개연성이 있다 한다. 집중 시청, 반복 시청, 다양한 몰아보기까지 가능하니 안목을 키울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수용자의 권력이 강화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넷플릭스는 코로나 시대에 극장을 대신해 모두에게 다양하고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전처럼 극장을 자주 갈 수 없는 상황이고 날카로워지고 지쳐버린 심신에 영화란 엔터테인먼트를 선사한다. 집에 머물러 달라는 방역당국의 당부에 SNS엔 OTT를 이용하며 집에 머무르는 것을 인증하는 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새해에는 더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면 하고 꿈을 꾸어본다. 잃어버린 일상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반쪽을 찾아 우리는 여행을 할 것이며 더 성장할 것이다. 올해의 마지막 나의 영화 " 반쪽의 이야기"를 2020년 마지막 장에 남겨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리뷰의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