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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Apr 06. 2021

전쟁의 소용돌이를 그린 영화 <스파이의 아내>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스파이의  아내> 2020 6 NHK에서 방영된 스페셜 드라마를 화면 비율과 색상을 극장용으로 맞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공포와 폭력의 표현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예리하게 표현하는 J 호러 장르의 대가인 그가 시대극을 찍어 보고 싶어 만들었다 한다.




<사진 제공 - M&M FILM>



1940년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와 행복하게 살던 고베의 무역상 유사쿠 (타카하시 잇세이)가 사업차 만주에 갔다가, 그곳에서 엄청난 만행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충성심, 신뢰,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스파이의 아내가 된 사토코의 변화에 초점을 둔다. 태평양 전쟁을 목전에 두고 시공간의 불안이 엄습하지만 유사쿠 부부는 근대화 생활을 누리며 취미로 무성영화를 만들며 위스키를 마시며 시대를 즐기며 산다. 하지만 시대는 이 부부에게 의심의 씨를 뿌리기 시작한다. 타이지(히가시데 마사히로)와의 관계, 그리고 의문의 여인 히로코(현리)와 함께 남편이 만주에서 돌아오면서부터이다. 불안과 의심, 긴장감을 주지만 서스펜스를 겹겹이 쌓진 못한다. 주인공은 알지 못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 알만한 정보로 사건이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는 방심할 수 없게 한다. 카메라의 프레임 안의 이야기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잘 설명되지 않는 대상과 마주치며 외부에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진실을 보기 위해 어둠을 택하여 필름을 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무심코 지나갔을 것들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믿음과 의심, 진실과 거짓, 필름의 내용 그리고 스파이와 스파이의 아내, 손을 흔들며 아련하게 카메라의 밖으로 사라지는 유사쿠 (타카하시 잇세이)와 카메라의 안에서 절규하는 사토코 (아오이 유우) 대립되는 모든 것이 안과 밖처럼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에서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스스로 과거를 청산할 이유가 없었다. 일본은 그들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들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논리를 펴 책임을 회피하거나 죄의식을 무의식으로 억압해왔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일본의 군국주의에서 벌어졌던 참상을 꺼냈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에 더 많이 신중했을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자가 아닌 코스모폴리탄으로 유사쿠를 정의하였고 사토코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스파이의 아내가 되고 필름의 목격자인 사적 영역에서 넘어서 전쟁을 목도하게 되는 인물로 그렸다. 시대의 사명감과 책임감도 갖지 않은 사토코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은 크지 않다. 사토코와 유사쿠의 열망이 다르기 때문에 사토코에게서 한발 거리를 두게 된다. 멜로 주인공처럼 화사했던 사토코가 비극의 주인공으로 향하는 엔딩의 황량한 해변의 모습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군국주의가 남긴 일본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사진 제공 -  M&M FILM>



공포물을 찍으면서 기요시 감독이 쌓은 공감대는 주로 도시주의 (urbanism)를 배경으로 하는데 2차 세계대전으로 부서진 일본 도시와 공동체 사회에 대한 고찰의 결과물이다. 전쟁의 끝을 향한 고베의 폭격 역시 그가 말하고 싶은 도시의 모습이다. 영화 <침략하는 산책자>를 통해서 개념을 빼앗는 외계인을 등장시켰던 기요시 감독은  <스파이의 아내>를 통해서 어떤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웃고 있는 주인공들 사이에선 내적 불안과 위기가 흐르고  영화 안의 영화를 통해서 현실과 허구에 대해 혼란스럽게 만드는 음모를 꾸민다. 잔잔한 수면 아래 소용돌이는 더욱 격렬하게 휘감고 있고 그들의 운명은 어지럽기만 하다. 공포란 표면적 타이틀을 떼었지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장기(長技)는 여전히 영화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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