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1.
피터 싱어는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철학자는 생활 속 윤리적인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진 학생 운동이 도덕 철학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식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서술한다. 전쟁과 차별의 역사와 환경오염에 맞서는 투쟁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의견을 갖고 직접 문제와 맞서길 바랐다. 여전히 일부 철학자들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는 논의할 만한 심오한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더불어 피터 싱어처럼 독자를 상대로 글을 쓰는 것을 폄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언제나 자신의 글을 독자들과 나누고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1. 윤리적 판단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일이 아니다. 개인의 취향과는 다르다. 만약 윤리적 판단이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문제라면 우리의 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2. 윤리는 반대나 찬성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윤리적인 직관을 공유하고 있다. 인류가 사회적인 포유류에 불과했던 시절,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던 시대에 선조들의 생존을 도와준 본능적 '혐오'는 여전히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내재된 직관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훨씬 더 넓고 복잡한 글로벌 세상에서 옳고 그름의 신뢰할 만한 지침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성의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
서문에 짧게 거론된 위의 문장이 '윤리'에 대한 피터 싱어의 중요한 관점이다. 윤리가 무엇이냐 물었을 때, 그것이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는 전반적인 시각을 달리하는 중대한 사안이고, '이성적 능력'이라는 것은 윤리적 판단이 무조건 지켜야 마땅한 철칙이나 강령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맹점과 모순이 산재한 현실에서 주체적으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2.
효율적 이타주의
세상을 개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성과 실증을 통해 모색하고 실천하는 철학이자 사회운동
- 검소하게 살면서 수입의 상당 부분, 즉 전통적 십일조 개념보다 훨씬 웃도는 금액을 가장 효율적인 구호활동 또는 구호단체를 골라 기부한다.
- 어느 구호활동 또는 구호단체가 가장 효율적인지 조사하고 논의한다. 또는 독자적 평가주체가 조사한 자료를 참고한다.
- 부유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더 보탬이 되기 위해서 능력과 적성이 허락하는 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커리어를 선택한다.
-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기부에 대해 논의하고, 효율적 이타주의 확산에 노력한다.
- 혈액, 골수, 신장 같은 몸의 일부를 모르는 사람에게 기증한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피터 싱어가 만든 하나의 개념이자 사회운동이다. 이 개념의 핵심은 '이타주의'가 아닌 '효율'에 있다. 이에 동의하고 기꺼이 참여하고자 결정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서 공공의 선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숙고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선행'이나 '이타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에 젖지 않는 것이다. 타인을 돕는다는 감정적 만족에 빠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삶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 즉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도울 것인가"이다.
기부행위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대적으로 거액을 한두 개의 자선단체에 몰아서 기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액을 여러 자선단체에 분산 기부하는 사람도 있다. 한두 단체에 집중 기부하는 사람들은 해당 단체가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는지, 실제로 긍정적 효과를 내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구호활동이 입증되면 상당한 액수를 기부한다. 이에 비해 소액의 기부금을 여기저기 내는 사람들은 기부금이 정말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자선 등의 이타적 행위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성취감을 유발하는 '따뜻한 빛(warm glow)' 현상에 빗대 '따뜻한 빛 기부자'로 부른다. 이들은 기부의 효과와는 상관없이 본인이 기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뿌듯함을 느낀다. 이들의 기부금은 대개 10달러 이하의 소액이다. 이 경우 기부 성과보다 기부 건당 처리비용이 커지는 '배보다 배꼽' 현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효율적 이타주의자, 피터 싱어 지음, 이재경 옮김, 21세기 북스
앞서 열거한 <효율적 이타주의>의 몇 가지 사항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위 개념은 철저히 이성에 기초한다. 자신의 이타적 행위 자체에 결과를 두는 감정적 개입을 지양하고, 철저히 목표지향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목표는 "각자 할 수 있는 선線에서 선善을 최대화하기"로, "잉여 재원의 상당 부분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삶"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효율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보다는 여럿을 위하는 것, 더 많이 주기 위해 더 많이 버는 것,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어떤 자선단체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것 등 구체적으로 알아야 '잘'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선행이 현실적으로 세계 어딘가에 영향을 끼치기를 바랄 것이다. 그 대상이 구체적일수록 더 많은 기부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기부단체에서 지원받는 아이들의 정보를 기부자에게 공유하거나 어려움에 직면한 개인의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등 여러 방법으로 이를 확인시키고, 한편으로는 선행의 만족감을 고취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올바른 방법일까? 효율적인 태도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만한 훈훈한 이벤트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그 금액을 말라리아 예방에 사용해 최소한 어린이 세 명, 또는 그보다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생명 하나를 살리는 것이 소원 하나를 들어주는 것보다 중요하고, 이왕이면 생명 셋을 살리는 것이 생명 하나를 살리는 것보다 우선임을 안다. 그래서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심금을 울리는 곳에 기부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용 능력이나 시간이나 돈으로 가장 많은 선을 이룰 수 있는 곳에 기부한다.
효율적 이타주의자, 피터 싱어 지음, 이재경 옮김, 21세기 북스
피터 싱어는 기부단체를 불신하기 때문에 기꺼이 기부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2007년에 설립된 자선단체 평가기관 기브 웰(GiveWell)을 소개한다. 기브 웰이 최고등급을 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비용효과성 있게 쓰일 것을 보장받는 일이므로 기부에 대한 회의적인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대안이 된다. 자신의 돈이 어떤 경로로 기부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는 순간부터 기부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선한 영향력을 지속 가능할 힘이 생길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효율적 이타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삶의 목적과 가치에 선행을 높은 위치에 두고 어떻게 하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사람들. 그들은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커리어를 선택하고 수입의 절반을 기부하지만, 과중한 사명이 부여되거나 숨 막히는 윤리의식에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타인을 돕는다. 여행, 취미, 자녀 교육, 의식주와 심리적 안정과 기쁨을 놓치지 않으면서 선행의 지속가능을 도모한다. 이타주의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성취감을 갖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직접적으로 남을 돕지만, 간접적으로는 스스로를 돕는다".
줄리아 와이즈는 꼬마 적부터 남달랐다. 자신은 부족함 없이 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1달러를 쓸 때마다 자신보다 1달러가 절실한 사람의 손에서 돈을 빼앗는 기분이었다. 줄리아의 고민은 얼마를 기부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얼마를 남기느냐다.
줄리아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어린 나이에 얻은 통찰은 4세기에 밀라노 대주교로 활동했으며 초대 서방교회 대 교부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성 암브로시우스의 가르침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의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사람의 것이었던 것을 되돌려주는 것뿐이다. 애초에 모두가 더불어 사용하라고 공동으로 받은 것을 그동안 그대 혼자 횡탈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 암브로시우스의 가르침은 기독교 전통의 일부가 됐다. 중세 이탈리아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엄밀히 말해서,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이 남의 소유물을 몰래 가져다 쓰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취한 것은 그 필요에 의해서 그 사람의 소유가 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아퀴나스의 이런 급진적 견해를 한 번도 배격하지 않았고, 심지어 여러 차례 반복 전달했다.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도 성 암브로시우스가 가난한 사람에게 준 것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뿐이라고 말한 구절을 인용한 바 있고, 1967년에 반포한 회칙 <민족들의 발전 Populorum Progressio>에 다음과 같이 공표했다.
"잘 사는 나라들에 남아도는 부는 가난한 나라들에 재분배되어야 함을 거듭 확인코자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근친의 권익을 위해 적용했던 법을 이제는 우리 세계의 모든 궁핍한 사람들에게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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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구제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은 복음서에 실린 예수와 부자의 대화에도 뚜렷이 나타나 있다. 어느 날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자신은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왔다며 천국에 가려면 어떤 선행을 더 해야 하는지 물었다. 예수가 답했다.
"그대가 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대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이 가르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독교인은 많지 않다. 그런데 화가이자 국제원조기관 직원인 호주 사람 애론 무어(Aaron Moore)는 달랐다. 애론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위의 성경구절과 함께 나의 말을 링크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희생으로 큰 불행을 막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
효율적 이타주의자, 피터 싱어 지음, 이재경 옮김, 21세기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