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화려하게 꾸미고 외출한 날, 집에 와서 씻고 편안한 복장을 한 본인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어떤 모습인가요? 마법이 풀려서 마차가 다시 호박이 된 것처럼, 나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왠지 가까운 사람 외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내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회사, 직위, 업무, 유니폼, 의사의 가운 등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벗었을 때의 나는 그것들을 입었을 때와 상당한 괴리가 있죠.
한 때 잘나가던 분들이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 후 신분이 급격히 바뀌는 일은 더이상 드문 일이 아닙니다. 잘나가던 사업가가 사업 실패 후에 비참한 처지가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겠죠. 승승장구 할 때는 부와 명예가 영원할 것 같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요.
페이스북에서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소위 최고의 명문대 출신에 국가직 공무원으로 조직에서 인정받고 덕망과 명예로움을 다 갖추며 아주 높은 자리까지 나오신 엘리트 였던 분의 사연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그에 해당하는 보상이 따라오듯이 자식농사 잘 지으면 노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나 봅니다. 연금도 자식을위해 목돈으로 다 타서 쓰시고, 아파트까지 팔아서 딸아이 시집 보내느라 다 쓰시고 아무 것도 없이 노년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정작 사회인이 된 자식들이 보내오는 돈은 각각 10만원, 20만원 정도..
두분 은 현재 일용직이니 알바 등을 하시며 근근이 살아가신다는데, 최근에는 택시운전이나 경비쪽의 일을 찾아보고 계신답니다. 잘나갈 때 그렇게 찾아오고살갑게 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도 연락하지 않고, 평생을 쌓아온 사회적 자본이 은퇴와 동시에 붕괴되는 경험이 더해지니 쓸쓸함과 허무함이 이루 말할수 없겠죠.
그렇게 제 2의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 역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공백기를 가진 적이 몇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대기업 소속의 누군가에서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때마다학교에 소속되어 필요한 역량을 보충하며 미래를 준비했지만,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저의 경우와 달리 안정적인 직장에서 평생을 승진과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며 살아온 분들이 계시죠. 등산을 하듯 과장, 차장, 부서장, 팀장, 상무, 전무, 사장까지 오르는 힘겨운 과정을 즐기며 인생의 전부를 걸은 분들이요. 자식도, 아내 또는 남편도 다 팽개치고 승진과 사회적인 인정을 추구하며 살아왔는데,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에 갑자기 실업자가 됩니다. 실업자가 되자 그동안 애정에 굶주려 불만이 많았던 가족들은 나를 환영하기는 커녕 귀찮게 생각하네요? 자식의 교육과성공을 위해 헌신했다고 생각하지만, 자식들은 크게 고마워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제야 회사는 나를 평생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자식은 나의 노년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실망과 좌절감을 경험하죠..
사업적 수완이 좋은 분은 조금 더 작은 기업의 대표이사로 가기도 하지만, 공무원과 같이 안정적인 일을 했거나, 전 직장에서 어정쩡한 위치에서 퇴직을 하는경우에는 무슨 일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습니다. 생계를 위해 좋지 않은 일을 덥석 잡으면 희망 없는 노년, 인생 2막이 펼쳐지는 것이죠.
나의 진짜 가치를 알고 싶으면 회사나 소속을 제거 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보면 됩니다. 이사, 상무, 사장의 감투가 사라져도, 어느 회사 직원, 어느 대학 출신이라는 포장이 사라져도 여전히 멋지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거에요.
자연인이 되었을 때에도 당신의 삶은 충분히 가치있고 충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