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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담화 Dec 07. 2022

전통을 지키는 건 사명감이 아니다

사라져 가는 술 문화 - 소줏고리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죠.”


전통을 계승하는 일을 왜 하시나요?라는 나의 물음에 소줏고리를 만들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명감 같은 거창한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나도 멋쩍게 따라 웃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우문현답이었다. 전통을 계승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은 우리의 환상이지,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현실인 것이다.



소줏고리가 무엇이냐면 소주를 만들 때 쓰는 전통 증류기이다. 항아리가 위아래로 붙어있는 것 같은 모양새에 기다란 호스가 붙어있다. 의외로 양조장이나 술과 관련된 업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부분은 장식용 혹은 체험용이다. 시판되는 술을 빚을 때 소줏고리를 사용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소주고리를 만드는 일이 현실이라기에는 부당한 것이 많아 보였다. 소주고리는 너무 복잡했다. 토기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술의 집합체였다. 흙으로 모양을 잡는 데에만 하루 종일이 걸렸고, 말리고 굽고 완성하기까지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그 시간이면 다른 토기 서너 개는 거뜬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왜 소줏고리 주문 제작을 받는지 물었다.


"전통주를 빚는 일도 전통을 지키는 일이잖아요. 그분들이 전통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작하고 있어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그는 바쁘게 돌리던 물레를 멈추고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무엇을 만들든 간에 사용자의 입장을 저희가 헤아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불편한 점이 있었다고 하면 그 부분을 개선해서 만드려고 하고 있어요."



소줏고리는 크게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밑박과 밑박 위에 올라가는 윗박, 윗박 안에 들어가는 속박, 그리고 증류된 소주가 나오는 물대. 제작 과정도 이 네 가지를 하나씩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도자기는 빠르게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흙을 차츰차츰 쌓아가며 완성하는데, 소줏고리는 압축기로 펴낸 넓은 흙판을 붙이고 잘라 만든다. 사용하는 도구는 나무칼과, 접착할 때 쓰는 젖은 흙, 다듬는 데 쓰는 가죽이 전부다. 21세기에 나무와 가죽과 흙으로 커다란 소줏고리가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선사시대 기술을 재현해주는 유튜브를 보는 것 마냥 넋 놓고 보게 된다. 작업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하기 위해 꺼내는 토치에 정신을 차렸다.



“현대인의 생활은 과거의 환경과 달라요. 아궁이 불 떼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쓰던 옹기를 아파트에서 쓰려고 하면 불편한 게 당연하죠. 전통도 현대 생활에 맞게끔 발전해야 해요.” 직접 만든 차 주전자를 기울이며 정희창 명인이 말했다. 그가 만든 주전자 토기에는 다이소에서 구매한 티 스트레이너가 딱 맞게 꽂혀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현대 생활에 맞춰 만든 옹기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소줏고리의 문제점이 직접 가열하다 보니까 불 조절을 잘못하면 탄내가 나요. 그래서 가마솥에 물을 채우고 중탕하는 방식으로 소줏고리를 개량해서 영암에 보냈어요.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탄내가 전혀 안 나요."



이어 책을 하나 꺼내더니 소줏고리 사진을 펼쳤다. 손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소줏고리는 이것처럼 위에다가 찬물을 넣고 물이 식으면 물을 갈아주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옆에 있는 이 진도 홍주 내릴 때 쓰는 진도식 소줏고리에는 밑에 날개가 있어서 흐르는 물만 두면 물이 알아서 빠져나가요." 이어진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옹기 박물관에서 우연히 진도식 소줏고리를 발견했다. 흐르는 물을 이용하는 냉각방식이 현대 생활에 더 잘 맞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때 이후로 진도식 소줏고리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당일날 볼 수 있는 과정은 토기로 모양을 잡는 것까지였다. 이제 앞으로 한 달간 말리고, 굽는 과정을 거쳐 완성될 것이다. 아쉽지만 다른 소줏고리로 만든 소주를 맛보기로 했다. 제주 고소리술을 주문했다. 소줏고리를 제주도에서는 고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만드는 증류식 소주를 고소리술이라고 부른다. 



"고소리술로 나오는 술들은 거칠고 탄 맛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고소리술 시음을 앞둔 CX팀 경진님의 말이다. "이 술은 고소리술의 특징이 살아있으면서도 부드럽네요." 고소리술은 전통방식의 소줏고리를 이용해서인지 투박함을 가지고 있다. 탄 맛, 곡물향, 매운맛. 원소주로 대표되는 요즘 유행하는 증류식 소주가 추구하는 깔끔한 맛과는 대척점에 있다. 무엇이 더 맛있다 맛없다가 아니라 맛이 다르다. 



소줏고리로 찾은 전통은 일상에서 시작해서 투박함으로 끝났다. 전통을 계승하는 일은 누군가에겐 일상이었고,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낸 소주는 투박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사라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소주 하나에도 이처럼 수많은 노력과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른 술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이 많아진다. 소주가 땡기는 밤이다.





술담화가 사라져가는 양조장을 탐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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