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시간도 피어내는 일이었다면

꽃잔디



우리 집 건물 사이에 꽃잔디가 피어 있는 걸 봤어요.

꽃잔디.

연분홍빛으로 바닥을 따라 가득 피어나,

누군가 일부러 돌보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덮어가는, 그런 꽃이에요.


처음엔 무심히 지나쳤는데,

어느 날은 출근길에도

또 어느 날은 퇴근길에도

자꾸 그 꽃이 눈에 들어왔어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피어있고

작고 단정한 꽃잎이 서로를 감싸듯 다정히 모여 있죠.


그 모습이 괜히 마음을 놓이게 했어요.

바닥을 덮을 만큼 가득 피어 있는 걸 보고

‘참 잘 자라고 있구나’ 싶었거든요.



dlrj2.jpg



ㅣ피고 지는 꽃의 리듬처럼


그런데 어느 날 저녁, 꽃잎이 오므려져 있는 걸 보고

‘아픈가? 시들었나?’ '언제 또 피려나?' 하고 괜한 걱정을 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 한 달 넘게 지켜본 꽃은,

다시 피고, 또다시 오므리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고 있었어요.


어떤 날은 활짝 피어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조용히 오므려져 있었어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모습이 아니었죠.

그건 꼭,

스스로만 아는 리듬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dlrj1.jpg



ㅣ멈춘 듯 보이는 시간도 살아가는 일이라면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래요.

활짝 웃고, 열심히 일하고,

누군가의 기대에 응답하고 있을 땐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입을 닫고, 마음을 오므리고,

멈추는 순간엔 괜히 불안했어요.


그동안은 피어 있는 시간만을

‘잘 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닫히는 순간,

쉬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괜히 스스로를 다그치곤 했죠.


하지만 그 조용한 순간들은

아프거나 시든 게 아니었고,

그저 자신을 지키는 시간이었어요.

다시 피어나기 위해 잠시 꽃잎을 접어 둔 것이죠.


우리 역시 마음의 문을 살짝 닫아두는 시간이 필요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내 안의 에너지를 지키기 위한

보호의 시간이었는지도 몰라요.


꽃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꽃잎을 접듯,

우리의 마음도

보이지 않게 자신을 감싸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당신의 오늘은 어떤 모습인가요?


피어 있는 중인가요, 오므리는 중인가요?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고,

그 시간도 살아가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말해줄 수 있다면

오늘은 조금 덜 지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마음을 꼭 열지 않아도 괜찮은

‘나만의 쉼의 리듬’을 허락해 보세요.

그게 단 5분이라도.


오늘도 나의 쉼이 당신의 쉼으로 이어질 수 있길 바라며.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3화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서툴렀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