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

영화 [12명의 죽고 싶은 아이들]

by 감은빛

0.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리 썩 좋지도 않음


처음에 어쩌다 이 영화를 선택하여 보았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저녁을 차린 후 뭔가 보면서 먹으려고 한참 OTT에서 영화를 찾아보다가, 어쩌다 딱 걸렸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고, 약간 추리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 끌렸었다. 전체적으로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중요한 포인트들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굳이 왜 저런 전개를 선택했나 하는 지점들도 있고, 등장인물들이 너무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들도 있고 등등등 이래저래 단점들이 꽤 많기는 하다. 결론은 사실 너무 뻔한 이야기라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뻔한 지점들과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괜찮게 봤다. 아마 큰 기대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1. 등장인물


함께 자살하기 위해 폐병원으로 모이는 아이들. 뒷문 비번을 누르고 들어와서 입구에서 금고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번호가 적힌 팻말을 순서대로 가져오는 것이 규칙. 그래서 들어온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게 되는데, 나중에 뒤에서 밝혀지지만, 실제로는 먼저 들어온 사람들 중 일부가 뒤쪽 팻말을 갖게 되면서 그 사이에 몇몇 일들이 있었던 것을 추리를 통해 풀어내게 된다. 일단은 팻말에 적인 번호순으로 등장인물을 알아보자.


제로: 팻말이 없는 사람.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1번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다수의 수면제를 복용한 것으로 보이는 상태였다. 가장 먼저(사실은 운영자가 이 방의 잠긴 문을 먼저 열었지만, 운영자가 뭔가 확인하기 위해 나간 사이에, 1번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음) 자살(영화 속 표현은 안락사)을 실행할 방(아마도 회의실로 보이는 넓은 방의 가운데 큰 탁자가 있고, 탁자를 둘러싸고 12개의 침대가 놓여있음)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들이 서로 번호로 부르는데, 이 사람은 번호가 없어서 편의상 제로라고 부르기로 한다.


1번: 사토시. 배우는 타카스기 마히로. 안경을 낀 샤프한 이미지의 남학생. 흰 교복 와이셔츠를 입었다. 이 모임의 주동자이자, 함께 안락사할 청소년들을 모으는 사이트의 운영자. 영화 후반의 언급을 보면 이미 여러 차례 이런 행사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몇 차례 안락사를 위한 모임이 있었지만, 모두 도중에 안락사를 포기하고 살아서 헤어졌다는 뜻이다. 폐병원 뒷문 비밀번호와 금고 번호를 포함 이 모임 전체 규칙을 알려주고, 모든 것을 준비한 사람. 사실 이 폐병원은 아버지가 운영했던 병원이며,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자살하고, 형이 의대에 떨어져서 형과 엄마가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각각 다른 친척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자살할 청소년들을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결말 부분에서 앞으로도 또 자살할 청소년들을 모을거라고 하며, 그 말을 들은 7번 안리가 그러면 자신이 다시 참여하겠다고 말한다.


2번: 켄이치. 배우는 후치노 유토. 검은 재킷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 왕따였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왕따를 주도하고 시작한 사람이 당시 담임선생이었다고 말한다. 부모님께 전학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영화 초반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역할이 없어진다. 맨 처음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 제로의 존재를 이유로 곧바로 안락사를 실행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냈다. 그래서 나중에 10번 세이고가 하마터면 여기 아이들이 모두 살해당한 것처럼 밝혀질 수도 있었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이 10번은 흔히 말하는 일진 캐릭터로 일반적인 경우라면 전형적인 왕따나 학폭의 가해자 캐릭터이다.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왕따 피해자와 가해자를 의도적으로 연결하고, 연예인과 연예인 추종자(팬)을 연결시킨다. 암튼 초반에 아이들이 논의하는 모습을 보면, 이 모임의 규칙 상 한 명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실행을 보류하고 전원이 합의할 때까지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도중에 안락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고, 남음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면 안락사를 실행할 수 있다고. 맨 처음 찬반을 물었을 때 다른 아이들은 얼른 안락사를 실행하자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반면, 이 2번이 반대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제로의 존재에 대해 논의하고 추리를 시작한다.


3번: 미츠에. 배우는 후루카와 코토네. 짙은 화장에 밝은 분홍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여학생. 보라색 꽃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전체적으로 화려한 옷차림(옷에도 보라색 꽃들이 달려있음)을 한 소녀. 이런 패션을 고쓰로리 스타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금 후에 보면 거의 비슷한 분위기로 분장한 연예인(아마도 락밴드의 보컬이 아닐까 추정할 수 있는)이 먼저 자살했기 때문에 따라서 죽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맹목적으로 특정한 연예인을 추종하는 아이. 그런 측면이 더 드러나는데 죽은 연예인이 좋아했던 담배를 따라서 피우지만, 기침만 할 뿐 제대로 담배를 피울 줄도 몰랐던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나중에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4번 료코를 보고 크게 놀라는데, 이후 료코가 안락사를 포기하기 전까지 실행을 반대하며, 아주 적극적인 반대파로 돌아선다. 료코와 같이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하면, 또 자신과 같은 추종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4번: 료코. 배우는 하시모토 칸나. 배우가 일본에서 천년돌(천년에 한번 나올만한 아이돌?)이라 불리는 미모라서 그런지, 영화에서도 아주 유명한 아이돌 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비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흰 마스크로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나중에 모자와 마스크를 벗자 유명한 하이틴 스타를 알아보고 모두 놀랐다. 알고 보니 영화 시작즈음에 누군가 이 아이가 표지 모델로 나온 잡지를 보는 장면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도착했으나 건물 밖 벤치에서 여러 개비의 박하향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나중에 실내 흡연실에서도 담배를 피워서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던 인물이 4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까 3번 항목에서 말했듯이, 미츠에는 료코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뒤에 안락사를 빨리 실행 하자는 입장에서 안락사 실행을 아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5번: 신지로. 배우는 아라타 맛켄유. 검은 비니 모자에 검은 테 안경을 쓴 남학생. 검푸른색 재킷의 교복을 입고 있다가 나중에는 재킷을 벗고 다닌다. 이 영화에 비슷한 인상에 안경을 낀 남자 아이가 여럿 나와서 초반에는 엄청 헷갈린다. 그나마 이 아이는 중반 이후로 거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기에 조금 덜 헷갈리긴 한다. 어쩌면일본사람들은 배우들에게 조금 더 익숙하니 덜 헷갈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불치병으로 추정되는 큰 병을 어려서부터 앓았고, 계속 병실에서 지냈다고 하며, 한 달 후일지, 혹은 일 년 후 일지 모르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사는 것보다는 죽음을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기 위해 이 자살 모임에 참가했다고 말한다. 나중에 가발을 썼다는 사실을 밝히고 자신의 민머리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댜. 어려서부터 병실에서 추리소설을 주로 읽었고, 부모가 경찰이라고 한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 반드시 필요한 탐정 역할의 캐릭터다. 중반부 이후 이야기가 너무 이 아이의 추리대로만 흘러가서 아쉬운 전개를 보여준다. 사실 자살을 선택할 동기로만 보면 가장 동기가 약해 보이는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긴 시간 큰 병을 앓았다면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야 하지 않을까?


6번: 메이코. 배우는 쿠로시마 유이나. 올백으로 머리를 넘겨 머리끈과 핀으로 고정한 여학생. 자주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인다. 아주 젼형적인 짜증 유발 캐릭터이자 답답이 캐릭터.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버지가 어쩌다 상황이 어려워져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데, 본인이 자살하면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보험으로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자살모임에 참여했다. 백 번 양보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설정한다고 해도, 이 친구처럼 맹목적으로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인물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반에 밝혀지는 악역이자 민폐 캐릭터이다. 막판에 결국 모두가 자살을 포기할 때 이 친구가 자살을 포기하는 이유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살의 이유도, 나중에 자살을 포기하는 이유도 모두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참 답이 안 나오는 인물이다. 원작에서도 이렇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인물일까 하는의문이 든다.


7번: 안리. 배우는 스기사키 하나. 긴 생머리에 귀가 약간 뾰족해 보이는 여학생. 교복은 아니고 상복 느낌의 약간 독특한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아마 자살하기 위해 일부러 선택한 옷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태도로 전체 분위기를 휘어잡는 캐릭터이다. 7번이라서 크고 긴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1번 맞은편에 혼자 앉았기 때문에 더욱 분위기를 압도하는 느낌이 든다. 그 자리에 배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7번으로 설정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청소년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에 사회적 의미를 담으려고 하며, 함께한 아이들이 모두 자신의 뜻에 따라 죽음을 선택한 것처럼 유서를 적어놓고 왔다고 밝힌다. 후반부까지 자신이 자살을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다가 나중에야 큰 화상을 입었다고 고백하며 다리의 흉터를 보여준다. 실은 자신이 4살일 때,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남동생이 화재로 사망하는데, 이 일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저 어린 아이였을 뿐이고, 당시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을 엄마라는 인간이 전혀 아이들을 돌보지 않다가 그 화재를 일으켰다.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도 않던 엄마가 어쩌다 들어왔다가 담배를 피우고 나가면서 불이 난 것이다.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어른들에게 항의하는 의미로 자살을 선택한 아이이며, 자신의 뜻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처음부터 아주 강경하게 안락사를 주장하는 인물이다. 결국 마지막에 설득당해 뜻을 잠시 접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강경하던 아이가 너무 손쉽게 포기하는 장면이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8번: 타카히로. 배우는 하기와라 리쿠. 하늘색 셔츠에 남색 조끼를 입은(아마도 교복?) 남학생. 말을 더듬는 증상으로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어린이에게 주어서는 안 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등 많은 약을 먹였기 때문에 말을 더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신이 온갖 종류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등을 먹어왔기 때문에 초반에 제로의 주변에 버려진 수면제로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말 더듬는 현상이 평생 낫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자살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9번: 노부오. 배우는 키타무라 타쿠미. 검은테 안경을 쓰고 흰 셔츠를 입은 남학생. 아마도 처음엔 입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베이지 색 재킷을 계속 손에 들고 다닌다. 1년 전에 자신을 왕따 시킨 주동자를 계단에서 밀어서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 사고로 처리되었고, 주동자가 없어진 덕분에 왕따에서도 벗어나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영화 중반에 가장 먼저 안락사를 포기한다. 자살하기 전에 먼저 경찰에 자수하여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이후 자신은 발언하지 않고 그저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하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는다.


10번: 세이고. 배우는 반도 료타. 이런 영화에 꼭 한 명은 등장해야 할 양아치 캐릭터. 노랑머리에 얼굴에 옅은 흉터가 있는 남학생이다. 분홍색 티셔츠 위에 남색 셔츠를 입고 단추를 잠그지 않은 차림. 목걸이를 두 개나 걸고 있으며 귀걸이도 하고 있다. 흡연자로서 박하향 담배를 피운 아이가 4번 료코를 확인한다. '바바'라고 부르는(아마도 계모? 할머니?)이가 자신의 생명보험을 들어놓았는데, 1년 안에 자살을 해야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다고 하며, 1년이 지나면 자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될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태도는 불량하기 그지 없지만, 왕따 피해자인 2번에게 자신이 조금 힘을 쓰면 금방 왕따에서 벗어날 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등, 다른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1번: 마이. 배우는 요시카와 아이. 금발의 여학생. 흰 와이셔츠에 남색 리본을 맨 교복 차림이다. 흰 곰인형을 안고 다닌다. 소위 말하는 갸루 소녀로 역시 이런 류의 이야기에 꼭 한 명을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비교적 밝은 성격이며 활발하게 다른 아이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헤르페스 때문이라고,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평생 낫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3번 미츠에 였던가? 한 여자아이가 겨우 그런 이유로 자살하는 거냐는 뉘앙스로 말하자, 평생 낫지 않는 병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하는 장면이 나온다. 온라인으로 만난 어떤 아저씨 때문에 헤르페스에 걸렸다고 하는데, 이 헤르페스 라는 것을 밝히기 전에는 마치 에이즈 같은 심각한 병에 걸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극 중 다른 아이가 겨우? 라고 반응하는 것처럼 상식적으로는 자살의 동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 맞는데, 일부러 이렇게 엉뚱한 아이를 하나 넣은 의도가 읽혀서 그냥 넘어가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여기까지 와서 아이들과 스스럼 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아도 도무지 자살을 선택한 아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12번: 유키. 배우는 타케우치 아이사. 붉은색 계열의 체크무니 셔츠를 입고 안에 흰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 등장하는 장면 내내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몸이 좋지 않은 상태라고 하며 무언가 짐을 나르거나 할 때 다른 아이들이 배려해준다. 사실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모든 원인을 제공하는 아이다. 제로는 유키의 오빠이며, 둘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오빠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차라리 둘이 함께 죽으려고 오빠를 데려왔다가 정체 모를 한 사람이 먼저 죽어있는 것으로 오해하여, 제로가 살해당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자신들이 모두 자살이 아닌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지는 것이 싫어서 추리를 시작하게 된다. 자상한 오빠가 자전거를 태워줬는데, 장난으로 오빠가 목에 건 목도리를 잡아당기다가 차에 치여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자신이 오빠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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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제 도착 순서


가장 먼저 도착한 아이는 7번 안리였다. 그는 청소년들의 단체 자살로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했고, 이 거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일찍 와서 옥상에 자리를 잡고 이후 도착하는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도착한 아이는 9번 노부오. 그도 도착하자마자 옥상으로 와서 죽기 전에 하늘을 보려고 했으나, 옥상에서 안리와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세 번째로 도착한 아이가 12번 유키였으며, 유키가 자신의 오빠인 제로를 휠체어 태워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 모든 상황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점.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휠체어에 앉혀 데리고 올 수 있나? 일단 식물인간이라면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고, 호흡기를 떼는 순간 사망해야 한다. 그리고 식물인간이 휠체어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바닥으로 쓰러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앉아 있으려면 의식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휠체어에 묶어 둬야 하는데, 영화엔 그런 묘사가 없었다. 이후 장면은 폐병원의 뒷문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좁아서 휠체어는 들어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리와 노부오는 휠체어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옥상에서 내려오고, 유키는 노부오와 안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모습을 감춰 숨어버린다. 이때부터 약간 코메디 같은 좀 이상하고 억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다음에 도착한 아이는 4번 료코. 하이틴 스타인 그는 일찍 숙소에서 나서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붙잡히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나무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후로 도착 순서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추리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일단 제로를 옮기고 숨기고 어쩌고 하는 상황들이 대체로 좀 억지스럽고 별로 개연성이 없어 보였다. 그냥 별 것도 아닌 상황으로 추리물 비슷한 것을 억지로 짜내는 느낌. 하지만 맨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나는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모든 것을 다 감안하고 볼 만 했다고 생각한다.


3. 결론


사실 후반부에 신지로의 추리로 모든 사실이 다 밝혀지고, 갑자기 분위기가 자살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좀 많이 억지스러운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았다. 특히 안리가 강경하게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다가 별로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그냥 받아들이는 모습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한참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이 영화를 다시 찾아보았다. 아마 안리 역의 배우와 마이 역의 배우가 출연한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이 영화에 이 두 사람이 나왔었네 하고 놀라며, 이 영화의 내용이 거의 기억이 안 나서(워낙 별게 없어서 기억이 안 난 것이었겠지만) 다시 보았다. 두 번째 보면서 이 영화에 대해 기록을 남겨둬야 나중에 또 기억이 안 난다고 세 번째로 보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일단 너무 전형적이기도 하고, 크게 의미 없이 등장인물을 많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나는 그래도 이렇게 여러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벌어지는 상황을 좋아하는 편이라 등장인물이 많은 것은 좋았다. 후반의 너무 급한 마무리와 크게 의미 없는 추리 부분, 전체적인 개연성을 조금 더 보완했더라면 범작에 가까운 수준이 될 수 있지도 않았을까 싶다.


4. 원작


찾아보니 놀랍게도 원작 소설이 있었다. 소설을 쓴 사람은 우부카타 도우 라고 나온다. 아마도 필명인 것 같아서 검색해 보니 재일 한국인 3세라고 나온다. SF 작가라고 나오고 알라딘에도 몇 개의 시리즈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와 제목이 같다는 원작은 알라딘에는 보이지 않는다. 구글에 검색해도 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모양이다. 이래저래 검색어를 바꿔가며 찾아보니 어떤 블로그에 일본어 원서를 읽은 평이 나온다. 그 블로그에는 아주 혹평을 적어 놓았더라. 별 10개 만점 기준으로 달랑 별 1개를 줬다. 원작이 그래서 영화도 이 모양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뭐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았으니 단정 지을 수 없겠지. 일단 이 우부카타 도우라는 사람이 SF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언젠가 그의 SF 소설을 읽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5. 나중에 덧붙이는 이야기


2019년에 개봉한 이 영화의 원작은 [十二人の死にたい子どもたち]이다. 우리나라 제목은 원제를 말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이 12명이라는 숫자를 사용한 것은 의도가 있을 것이다. 1년이 12달이고, 예수의 제자도 12명이다. 동양에서 12갑자로 불리는 12지신도 생각난다. 아, 과거에는 이 12갑자로 시간을 지칭했었지. 지금은 오전과 오후를 각각 12시간으로 나누고, 시계도 12시간으로 표시하고 있다. 영화에서 가운데 긴 탁자를 둘러싸고 놓인 침대들이 시계의 숫자처럼 배열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영화로 보면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란 유명한 영화가 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제목에서 제목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원작 소설도 같은 제목이라고 했다. 원작에서는 이 12라는 숫자의 의미가 드러나는지 궁금하다. 영화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화는 오히려 딱히 제대로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이 생기면서 인물이 너무 많아서 더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캐스팅 측면에서는 청소년 역할을 맡아야 할 비교적 젊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찾느라 애를 먹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배우들 전반적으로 다 연기가 썩 좋지 않았다. 아, 그리고 성비를 맞추려고 여성과 남성을 딱 6명씩 넣은 것으로 보이는데, 미팅을 할 것도 아니고 안락사를 위해 모였는데, 굳이 성비를 맞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한 편으로 청소년의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생각해보면 아주 놀라운 상황을 깨달을 수 있다. 이 12명의 아이들 중에 단 한 명도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아이가 없다. 이걸 우리나라 상황으로 바꾸면 성적 하락이나 경쟁 상황으로 인한 자살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 시기에 누구나 느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도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의 자살 이유가 헤르페스라니. 생명보험으로 아버지의 빚을 해결해주려고 자살한다니! 아니면 생명보험 때문에 살해 당하기 전에 자살을 하겠다니! 거기에 불치병으로 어차피 죽을 건데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서 자살한다니. 확실히 일본은 우리와 교육 문화가 다르고 학교의 모습도 많이 다르구나 싶다.


일본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 제일 유명한 배우는 4번을 연기한 하시모토 칸나였다. 초반에는 얼굴을 아예 보여주지 않아 연기를 논할 것도 없지만, 뒤로 가서도 연기가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하시모토 칸나 외에 다른 배우들은 전혀 몰랐었다. 그래서 그들의 연기가 별로였어도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나중에 보니 1번을 연기한 타카스기 마히로와 5번을 연기한 아라타 맛켄유는 상대적으로 유명한 배우였다. 그러고 보면 6명의 남자배우들 중에서는 그나마 이 두 사람의 연기가 괜찮았던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 두 사람만 좀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서 더 눈에 띄어서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배우들 중에서는 7번을 연기한 스기사키 하나와 11번을 연기한 요시카와 아이 이 두 배우를 다른 작품에서 보았었다. 스기사키 하나는 이 12명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연기를 보여줬다. 배역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은 있지만, 이 배우의 연기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다소 과장된 측면은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는데, 두 번째 보았을 때 요시카와 아이의 연기가 좀 더 눈에 들어왔다.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청소년들의 자살이라는 사회현상을 다루며 손쉽게 자살을 선택하기 보다는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살아볼 가치가 있는 삶을 제시하는 영화다. 전형적으로 교훈을 전달하는 영화, 이걸 한번쯤 뒤틀어서 뻔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다면 훨씬 더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되었으리라. 요 위에서도 다룬 것처럼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성적 만능주의와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시스템, 그리고 사춘기 한창 예민한 외모 문제, 점점 더 심각해지는 왕따와 학교 폭력 등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폭력과 동성애 등을 다룰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청소년 자살을 다룼다면 훨씬 더 반향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 2025년 9월 27일 알라딘 서재에 쓴 글을 다시 고쳐 썼음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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