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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Sep 07. 2024

밤공기를 가득 채운 40대부부와 아들

내 밤산책 책임져요

요즘 들어 무척 따뜻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경험을 가끔 한다.




어느 연예인이 또 수십억대의 건물을 샀다는 뉴스, 인플루언서의 명품자랑 포스팅, 인스타에 돌고도는 플렉스 들과 어떻게 부자가 될것인가 만이 되풀이되는 머리아픈 쇼츠들을 보면서도 아무 감흥이 없이 [저 세상이구나]하는 메마른 리액션 뿐인 일상을 페트병 쭈그리듯 짜지게 한 경험.


 개 산책 나와서 커플한테 매료된 건 처음이었다.


내 감정의 동요가 줄어든 덕분인가,

아니면 우리집 꼴통 킬복구c와 한 산책에 도파민이 분비된 것인가.


강아지 산책 중에 횡단보도에서 커플/부부(요즘은 결혼 안하고도 오래 연애하시는 분 많음)로 보이는 40대 후반 남녀가 같이 횡단보도 불 바뀌는 것만을 기다리는데 둘이 손잡고 한손에 커피들고 기다리는 게 참 예뻐보였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낮은 음성이 흐르던 찰나,

"어! 아들~!!?아들!!!"
하면서 횡단보도 건너편에 20살쯤 돼보이는 아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자.
아들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있어서 사이 좋구나~ 하고 있는데,
옆에서 또 남자가
"아들~!!"
하는데 거기 건너편 아들도 리액션을 해주고.

"어디 가 지금?"
"나 이제 집 가려고 했는데?"
"그래? 엄마아빤 좀 이따 들어갈게. 이따 밤에 만나자!~"
하고 자녀와 부부가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지나가는데
이 감정을 이름지을 수는 없지만 뭔가 담백한데 따뜻하고 애정이 다 보이고 건강해보이는 가족느낌이랄까.


내가 아이가 없지만 자녀가 있다면 저렇게 멋지게 한 사람을 키워낼 수 있을까, 하면서
너무 잘 자란 듯한 아이들을 마주하고 나면, 그 아이들의 부모 얼굴도 모르지만 되게 고맙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아이는 없어도 저렇게 건강한 부모 안에서 건강한 아이로 잘 크는데 들어가는 세금이면 내가 평생 아이없이 세금을 내도 아깝지 않겠다는 그런 오지랖넓은 생각이 들었다.

맨날 이혼얘기 듣고 애 때문에 죽겠다 하는 친구 언니들만 만나다가
엄청 리프레시되면서 저래서 가족을, 2세를 계획하는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와 독립돼서 부부끼리 돈독하게 우정을 다지는 것,
결혼하고 3년지나면 사랑의 유통기한이 끝난다니 그때부터는 우정, 의리, 신뢰 이런걸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고.
이래저래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혼얘기 목까지 차오르고 감정이 널뛰다가도,


오늘 그 부부 보면서 저렇게 살고싶다, 생각해보는 밤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게임하느라 개산책을 같이 안나간 자기를 원망하는지 살피며 눈치보는 남편에게

말없이 생강청을 넣은 레몬하이볼을 한잔 말아주니

"이거 내꺼야??"

맞는지 확인하더니 맞다고 하니 신이나서 언더락잔을 들고 간다. 저렇게 좋을까.

미리 굿나잇 인사를 하고 내 시간을 갖는다.


오늘 낮이 너무 힘들었다면

밤은 그리고 새벽은 다른 낮들보다 편안한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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