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과를 깎으며 , 오선 이민숙

낙과를 깎으며

오선 이민숙



햇살을 제대로 받지 못했더냐

바람이 비켜 갔더냐

소나기 한번 시원하게

제대로 만나지 못했더냐


같은 부모에게 태어났을 텐데

제대로 자라지 못했구나


온갖 벌레 도와주느라

끼니를 놓치고

달님 별님 챙기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더냐


새벽 별을 마중하고도

햇살이 오는 길을 청소하느라

단잠까지 팔아 일했구나


꿀맛을 채울 때

그늘에서 울고 있었더냐

키가 자랄 때 몸 앓이를 했더냐


하마 일찍 떨어진 세상이 너뿐일까

며칠을 굶었는지

휘어진 등짝이 애잔하구나


옆집을 대신해 떨어진 낙과

큰 형에게 밥그릇을 빼앗긴 세상

고르지 못한 것이 어디 한둘이더냐





출처 ~ 오선 이민숙 시인 뜨락

제4시집 , 오선지에 내리는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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