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어작 Apr 04. 2022

차가운 고등어를 맞잡은 추억

첫 커플댄스 경험기

이십대 한 때, 술 마시고 몸 흔들러 다니는 것을 즐기긴 했지만 내가 커플댄스라는 것을 배우게 될 지는 꿈에도 몰랐다. 일단 내 관념 상 춤이란 '내가 신나서 흔드는 것'에 가까운데, 커플댄스에는 음악과 나, 주변의 바라보는 눈들 이외에 새로운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파트너',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 파트너'. 이성을 동경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고, 연애시장에서 환영받아 본 기억 한 점 없기에 기대감 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지라 생각만 해도 목에 뭐가 걸린 듯 불편했다. 그럼에도 살사댄스 강습소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뻔하게도 '친구 따라'였다. 식상하게도 살사에 호기심이 있었던 친구는 혼자 갈 용기가 없어 내게 동행을 청했다. 강습도 무료라 하고 친구가 부탁한 일이라 '한 번 쯤이야'라는 마음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후 십년 넘게 살사를 추게 되었고, 친구는 그 이후로 추지 않는다.)


살사댄스 초급강습

만약, 처음부터 남녀를 짝지워 세워두고 손을 잡아라 얼싸 안아라...라고 했다면 아무리 친구 때문에라도 박차고 나왔을 것 같다. 그 날의 프로그램은 영리하게도 첫 한시간은 '라인댄스'강습을 하고, 두번째 시간에 '살사댄스 초급강습'이 이어졌다. '처럼'시리즈의 율동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나로서 첫 라인댄스 시간은 매우 즐거웠다.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더워진 터이고, 강습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세상 친절하게 맞아주어 '살사댄스'에 대해서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다. 

처음엔 일반 율동을 배울 때와 같이 강사가 앞에 있고 모두 거울을 함께 보며 '베이직 스텝'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른발 다음에 왼발인데 삼십몇년 잘만 걸어왔건만 이 스텝은 묘하게 부자연스러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살사음악의 리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 여튼 베이직 스텝 소개가 끝난 다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자 여자분 남자분 짝을 지어 서주세요"................. 짝이라니...'짝'이라니... '짝'이라는 표현에도 흠칫하는 감정을 느끼며 이미 속으로 식은땀이 퐁퐁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 세대의 관심과 질시를 받으며 성장한 대한민국 X세대로서 '촌스럽게 보이기'는 또 싫었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 '나는 미국 사람이다'라는 자기 주문을 외면서 가빠지는 숨을 숨기려 몰래몰래 심호흡을 뱉어냈다. 


살사댄스 기본 자세 배우기

상황이 그런지라 그 날 내 첫 파트너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 쪽도 그렇겠지만. 다행인 것은 배운 것을 한 번 연습하고는 계속 파트너를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어차피 계속 바뀐다고 생각하니 약간 편해.......지는 건가 아닌가..... 어땠었는지.........'짝'으로 서서 진행된 순서는 '살사댄스 기본 자세 배우기'였다. 보통 남자가 리드를 하고 여자가 그 리드에 따라 팔로우 하여 춤이 진행되는데, 그 '리드'를 말로 하지 않고 몸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커플댄스에서 함께 만드는 자세에 대한 이해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옛날 시골에서나 춘다는 포크댄스를 배울 때에도 손을 닿지 못하고 휴지로 커넥션을 만들었던 우리는 리드고 팔로우고, 커넥션이고 나발이고, 저 처음 보는 이성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현실 앞에 초긴장 모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클로우즈드 포지션'이라고 리더의 오른손이 팔뤄의 견갑골에 가고 팔뤄는 왼팔을 리더의 오른팔에 편안히(?) 올려야 한다는 그것은 (우리 초급들의 생각으로) 말이 좋아 포지션이지 얼싸안으라는 소리로 들렸다. 


이미지 출처 : ballroomdancers.com

오픈 포지션, 혹은 손잡기(Open Facing Position) 
클로우즈드 포지션, 혹은 얼싸안기(Closed Facing Position)


처음 잡아본 이성의 손. 응?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외양과 달리 속으로는 다들 초주검이 되어 있는 강습생들은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포지션 실습을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에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마지막 연애 이후로) 처음으로 잡은 이성의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고등어를 만지던 때 처럼

긴장해 있던 내 손도 필시 차갑고 축축했을 것이다. 죽은 고등어가 된 손을 마주잡고 설렘과 불쾌함 중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헷갈려하던 중 첫 수업이 끝났다. 아마 클로우즈드 포지션으로 베이직을 밟아보고 남녀가 자리를 바꾸는 크로스바디리드 정도를 배웠을 것이다. 물론 배운다고 해서 강습생들이 음악에 맞춰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크로스바디리드를 소개받았을 뿐이다. 

이삼십분 파트너를 바꿔가며 스텝도 밟고 자리도 바꿔서고 하다가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마지막 즈음에는 조금 여유가 생겨서 손에 체온이 좀 돌아오긴 했지만, 정말, 정말, 정말정말정말 녹초가 되었다. 난 집에 가고 싶었고, 그 전에 술을 왕창 마시는 것이 필요했다. 아 오늘 나님 너무 고생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길로 강습실을 나와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보따리 사서 집에서 마셨다면.... 아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이후에 '차가운 고등어의 촉감'을 묻어버리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강습 이후 몇 시간으로 내 인생은 다른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춤과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