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 2(31)

껍질과 본질/변희수

by 최병석

쳐다도 안 보던 껍질에 더 좋은 게 많다고

온통 껍질 이야기다

껍질이 본질이라는 걸 뒤늦게사 안 사람들이

껍질이 붙은 밥을 먹고 껍질이 붙은 열매를 먹는다

이태껏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이

본질인 줄 알고 나도 시퍼런 칼을 마구 휘둘렸다

연하고 부드러운 것에 집착했다

거칠고 상처받고 벌레 먹은 것들은 다 껍데기라고 도려냈다

본질은 함부로 닿을 수 없는 곳에나 있다고 믿었다

딴에는 죽어라고 후비고 팟는데

공부할 때도 연애할 때도 시를 쓸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급하게 칼부터 밀어 널었다

꼭꼭 십어 볼 겨를도 없이

혀에 살살 감기는 것만 찾아다녔다

둘러쓸 것도 하나 없이 맨살로 덩그러니

나였은 것같은 날

허약한 내부를 달래주듯

껍질째 아작아작 사과를 먹는다

잘 씹히지 않는 본질을 야금야금 씹어먹는다


-계간<신생.2014년 봄호>


♡시를 들여다 보다가


참여시로 유명한 신동엽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가 스쳐 지나간다.이 시에서 시인은 분명 껍데기는 가고 온전한 알맹이만 오라 했건만 오늘 들여다 보는 시에서는 쳐다도 안 보던 껍질이 좋다고 난리부르스다.변희수시인과 같이 나도

거칠고 상처받고 벌레 먹은 것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힘을 들여서,공을 들여서 그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연하고 부드러운 것들을 취했었다.

시인의 말대로 혀에 살살 감기는 것만 찾고 또 찾았었다.

그리고 여전히 뽀얗고 매끄럽고 벌레들이 지나간 흔적이 없는 것들이 좋다고 비싼 값을 쳐서 데려오기 바쁘다.

그러나 이제 보아라!

시인은 더 좋은 본질을 얘기 하면서 껍질을 아작아작 씹는 게

좋다고 한다.우리를 향한 가판대에 간혹 거칠고 상처받고 벌레먹은 것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런 것들이 진열되어 있다면오히려 비싼 값을 주고라도 데려오라.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몸을 위한 좋은 본질일테니......

<힘 안 들이는 속알맹이는 가라 다소 불편한 껍데기여 환영할지니 본질을 껴 안고 오너라>

튼튼한 이빨을 장착한 채 나도 한번 외쳐보기는 하는데....

솔직히 몸에 좋다는 겉보기 불편한 것보다 눈에 편안한 부드러운 속살을 더 찾고 있는 내 본마음을 어이할꼬?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