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콕 선언문
나의 산생활은 근래 유행하는 집콕이나 방콕을 밴치마킹하여 산콕이라 부른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국내외의 산을 1,300회 이상 올랐다. 그것은 마을 뒷산부터 캐나다 로키까지 포함해서이다. 산을 정말 좋아했기에 몇 년 전에는 아예 내 산을 사버렸다.
그리고 이 산에 안겨서, 혹은 산을 껴안고 매일 행복하게 살고 있다. 8년 동안 이 산에서 캠핑처럼 자유롭고 신나게 나의 왕국을 만드는 중이다.
혼자 살아도 외롭거나 무섭지 않다. 진돗개 두 마리가 호위병처럼 든든하고 다람쥐와 산새들이 친구가 된다. 이제는 말벌이나 뱀도 무섭지 않다. 걔들은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니 나를 해치지 않더라. 산에서는 매 순간이 변화무쌍하기에 항상 설렌다.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처럼 나의 산콕살이는 작은 도전과 성취의 맛으로 늘 가슴 뛴다.
나는 글쓰기도 무척 좋아한다. 연필만할 때부터 일흔이 지난 지금까지 일기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일기는 타인과 공유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그래 산콕하면서 경험하고 인상적으로 느끼는 점을 따로 써서 인연 닿는 사람과 공감을 나누고 싶다.
동화작가로 등단했기에 동화를 주로 쓰고, <햇노인 사랑법> 같은 단편소설도 재밌게 쓰고 있다. 또 산콕의 일상 속에서 에세이 글감도 많이 잡힌다. 그럴 때는 다른 원고를 덮어두고 산콕일기부터 쓴다. 찬송가만 부르는 목사님도 동창회에 가면 트로트를 부르지 않던가. 뭐 그런 생각으로 나의 외도를 합리화 한다.
어쨌든 산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한다. 그리고 산에서 글 쓰는 시간에는 꺼뻑 죽는다. 철따라 꽃 피우는 진달래, 구절초, 제비꽃, 금난초, 쪽동백, 산수국 등등 수많은 자생 초목들이 내 눈길을 잡아 끌고 내 마음을 훔쳐간다. 비 그친 뒤에 산허리를 애무하는 산안개를 조용히 바라보면 코끝이 찡해진다. 내 꺼칠한 육신 속에도 촉촉한 감성이 조금은 남아 있으니 경이롭고도 고마운 일이다.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소신있는 자연주의를 좋아한다. 그렇게 살 것이다. 다만 그는 호수 옆의 통나무집이었고 나는 계곡 옆의 움막에 둥지를 튼 것이 다르다.또 헤밍웨이의 근육질 문체를 닮고 싶다. 그렇게 쓸 것이다. 만인이 경외하는 걸작은 아니더라도 쉽게 쓰고 편하게 읽히는 글을 쓸 것이다.그리고 타샤 튜더의 정원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꽃동산을 만들면서 아흔을 넘기고 싶다. 다만 나는 자생 초목을 게을리 관리할 것이다. 일부러 심는 것도 없지는 않지만 자생하는 녀석들이 더 많아서 탐심을 안 품어도 된다. 오늘도 산뽕나무 묘목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산신령님의 아낌없는 협찬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럭저럭 쌓이는 욕심이 나를 삼키지 못 하게 명상 수련도 꾸준히 해야겠다. 없는 듯해도 자꾸 생겨나는 욕심의 끈이 아직은 길다. 엎어지고 자빠져도 우공이산의 교훈을 생각하면서 강하고 질기게 걸어 가리라. 차근차근 산콕일기를 쓰면서 허락된 여생을 즐겨야지. 한겨울 오후의 햇살처럼 소중한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