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보여줄것인가

시선을 제어하는 '창'의 역할

by 지감독

하이엔드 주거의 상품성을 결정짓는 여러 요소 중,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향'(向) 이다. 한국에서 '남향' 집은 오랫동안 가장 이상적인 주거 방향으로 인식돼 왔다. 이는 단순히 밝아서 좋다는 감성적인 이유를 넘어서, 4계절이 뚜렷한 기후 특성 속에서 기능적으로 설계된 결과다. 겨울에는 햇빛을 깊숙히 들이고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구조. 그습도 관리에 유리해 곰팡이 방지에도 탁월하며, 그 효율성과 쾌적함은 남향집의 인식을 '가치'로 연결시켜왔다.

그렇다면 그 방향성을 실질적으로 공간에 드러내는 '창'은 어떤가. 집 안의 창은 무엇을 보여주고, 어디까지 열려 있으며, 그 시선을 어떻게 조율하고 있는가에 따라 공간의 감도와 고급스러움이 결정된다.



조망을 설계하는 창

하이엔드 주거에서 창은 단순히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구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창이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의도다. 고급스러운 집은 대부분 보이는 것보다 '보이게 만든 것'이 더 중요하다.

'뷰'가 좋은 집을 만드는건 풍경이 좋은 곳에 집이 위치한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건물이 겹치지 않도록 각도를 조정하고,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 머무르는 거실의 중심선에 창을 배치해 외부 풍경이 실내의 중심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다. 어느 것 하나 우연히 배치된 것이 아니라 모두 철저히 선택되고 설계된 결과물이다.

고층 레지던스에서는 바다, 한강, 공원, 도시의 스카이라인 등 탁 트인 풍경을 넓은 통창으로 그림처럼 끌어들인다. 이 때는 커다란 풍경 자체를 온전히 담는 것이 핵심이므로, 프레임이 최대한 얇고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창호 시스템이 사용된다. 컬러 또한 벽면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비시각적 요소로 계획된다. 반면, 단독주택이나 저층 빌라에서는 중정,정원, 외부 조형물 같은 가까운 풍경을 창 하나하나에 '장면처럼' 담는 설계가 적용된다. 이때 창은 단순히 바깥을 보는 틀이 아니라, 어떤 장면을 실내로 끌어들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액자의 역할을 한다. 하이엔드 주거에서의 조망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방향성과 시선의 흐름 속에 놓여있다.


ww.jpg 프라이버시와 개방의 균형을 외부 조경으로 설계- The Glass Pavilion (Steve Hermann)


개방감과 비례를 설계

앞서 창을 통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설계했다면, 공간을 얼마나 넓고 시원하게 느끼게 할 것인가 또한 창의 중요한 역할이다. 물리적인 면적을 제외하더라도 공간이 얼마나 열려있고, 시야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에 따라 그 집이 주는 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때의 창은 단순히 외부를 보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공간의 시야를 확장하고 경계를 흐리면서 실내와 실외 사이에 심리적인 여유를 부여하는 장치로 설계된다.

넓은 창이 있는 카페에 앉아본 경험이 있다면, 공간이 작더라도 훨씬 더 쾌적하고 편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시야가 열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넓은 공간에 있는 듯한 심리적 여유를 느낀다.

개방감만큼 중요한 것은 창의 비례다.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 창이 작거나 벽 중간에서 끊긴다면 전체 공간은 시각적으로 분절되어 보이고 어색해진다. 반대로 바닥에서 천장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창은 자연광이 깊이 들어오는 흐름을 만들어 공간을 시원하고 정제되게 풀어낸다. 창의 세로 비례가 강조될 수록 수직 방향의 개방감이 커지고 가로 비례가 강조될 수록 시야의 확장성과 안정감이 생긴다. 그리고 벽과 창의 경계가 최소화될수록 공간의 일체감과 정제된 인상은 배가된다.



프라이버시와 통제된 개방

고급스러운 공간일수록 모든 시야가 다 열려 있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일 것만 보이게 설계된 시선의 흐름이 그 집의 품격을 만든다. 침실이나 욕실처럼 사적인 공간에서는 외부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면서도 채광은 확보할 수 있도록 높은 위치의 수평창이나 작은 사이즈의 창이 자주 사용된다.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가리는 것이 아니라 빛과 시야의 방향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외부와 연결된 창에서도 이런 시선 제어는 정교하게 설계된다. 거실에 면한 대형 창은 시야를 확장하되 루버나 외부 월, 수직 조경을 통해 자연스럽게 차폐되도록 구성하기도 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 투명도 조절이 가능한 스마트 글라스나 반투명 유리를 활용해 노출의 정도를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이처럼 하이엔드 주거에서의 프라이버시는 완전히 닫히거나 완전히 열리는 것이 아닌, 선택적이고 절제된 노출의 상태로 설계된다. 이 조율된 시선 구조 덕분에 공간은 한층 더 정제된 인상을 주고, 거주자는 그 안에서 안정감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고급스러운 공간은 시야가 너무 많거나 너무 닫혀 있지 않다. 보여줄 것만 정제해서 보여주고, 열려 있는 만큼 질서있게 조율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창이 만들어내는 감도는 한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공간을 오래도록 고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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