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의 높이'는 감각의 깊이
공간을 디자인 하다가 이제는 공간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이 되었다. 같은 공간인데 보는 관점이 달라지니 '고급스러움' 이라는 말도 다시 질문을 하게 된다. 어떤 공간은 아무리 넓고 고급 자재를 써도 왠지 모르게 조악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또 어떤 집은 큰 장식이 없이도 조용한 인상을 남긴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리는 종종 하이엔드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정작 왜 이 공간이 고급스러운지 설명해보라 하면 대게 이런 대답을 듣게 된다. "그냥 느낌이 좋아." "여유로워 보여." "비싸 보이잖아."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공간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모호하다. 느낌이 아니라 구조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요즘 하이엔드 공간을 많이 보고 ,또 기획해 보며 고급스러운 공간에 대해 분석해 보기로 했다.
하이엔드 주거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 본 것이 고급 주거 단지들의 천장 높이(천장고)였다. 그들의 천장고에 대한 리서치는 의외로 쉬웠다. 구글에 'ㅇㅇㅇㅇ 천장고' 라고 검색하니 바로 나오던 것. 분양 단지에서 고급마감과 더불어 높은 천장고는 가장 전면에 광고하고 싶은 장점이었던 것이다. 일반 아파트의 높이가 2.2~2.4m 인것을 기준으로 고급 주거 단지는 대부분 2.5m 이상의 천장고를 가져가고 있었고, 최근 분양한 루카831의 경우 2.9m, 앙사나 레지던스가 2.95m, 갤러리 832는 최고 6.2m 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되면 또 한 번 궁금해 진다. 왜 높은 천장고는 고급스러움의 상징이 된걸까?
서울 신라호텔의 로비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보통 말없이 고개를 들어 위를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잠시 그 자리에 멈춰 행잉된 박선기 작가의 작품을 바라본다. 시선이 먼저 위로 가고, 몸의 움직임은 잠시 느려진다. 감각의 리듬이 달라지는 순간이다.
층고 6m 이상의 펜트하우스나 고급 레지던스도 마찬가지다. 공간에 들어서면 시선이 수평보다는 수직으로 먼저 열린다. 공간의 천장이 높아지면 일단 시야가 자유로워진다. 높은 천장의 공간이 실제보다 더 넓고 여유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높은 천장의 공간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천천히 멈추면서 감각의 속도가 느려진다. 어떻게 보면 고급스러운 공간이 주는 고요한 인상은 바로 이 감각의 리듬에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넓어보이는 것 이상의 변화가 느껴진다. 그에 비해 일반 아파트의 거실을 생각해보면 시선이 벽면의 TV나 소파 높이에 바로 닿는다. 고개를 들 일이 없고, 시선은 수평으로만 흐른다. 시선이 멈출 수 있는 여백 자체가 부족한 구조다.
천장의 높이에 따라 빛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일반 아파트의 거실에서는 등이 대개 천장에 직접 부착되고, 빛은 벽과 바닥에 즉시 닿아 빠르게 공간을 채운다. 전체를 고르게 밝히지만 그림자나 레이어가 거의 없다. 반면 천장이 높은 공간의 조명은 직접 내려오지 않고 천장에 숨거나, 간접적으로 벽을 타고 흐르게 된다. 조도가 낮아도 어둡지 않게 느껴지고, 자연광이나 조명의 투사각과 그림자 깊이가 달라지면서 다양한 레이어가 쌓여 입체감을 만든다. 공간안에 빛이 천천히 머문다는 인상이 만들어진다. 밝음 보다는 잔향있는 어둠으로 고급스러움을 부각시킨다. 결국 고급스러운 공간은 밝은 공간이 아니라, 빛이 천천히 움직이는 공간이다.
천장의 높이 자체는 엄연한 숫자(수치)지만, 그 차이는 감각적으로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아무리 평면적으로 넓은 집이라도 도면을 펼쳐보는 것처럼 그 넓이를 한눈에 체감하기는 어렵다. 현실의 공간에는 벽이 있고, 기둥이 있고, 시선이 닿지 않는 모서리들이 있다. 눈으로 한 번에 파악할 수 없는 구조적 단절이 생기기 때문에 체감하는 크기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하이엔드 주거는 단순히 면적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부피'를 설계하려는 시도다. 바닥에서 띄워져 간접으로 은은하게 조명을 보여주는 신발장, 천장 끝까지 매달린 풀 하이(Full-high) 커튼은 공간의 여백을 통해 입체감을 부여하고, 온몸으로 그 부피를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천장이 높으면 울림이 넓게 퍼지고, 소리의 반사를 부드럽게 잡아주는 등 결이 다른 음향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천장을 높인다는 건 기술적으로 단순한 일이 아니다. 층고를 확보하기 위해선 바닥 슬라브를 조정하고, 설비 배관과 구조 보강, 전체 건물 설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법적 층수 제한이나 용적률 기준 안에서는 천장을 높인 만큼 층 수를 줄여야 하니 면적을 포기하면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엔드 주거들의 천장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트렌드라기보다는 천장이 높아짐으로써 가지는 공간의 경험이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높아진 천장을 어떻게 더 고급스럽게 풀어낼지는 앞으로의 고급주거들에서 풀어낼 과제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