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 한국 야구 레전드 인터뷰

내 두 번째 북저널리즘 도서

by 까르도

스리체어스의 북저널리즘은 이메일 뉴스레터 구독을 통해 접했다. 현재는 인터뷰 내용을 보내주고 있으나, 그전 버전에는 에디터의 편지 내용과 관련 콘텐츠를 큐레이션해 보내주었다. 퍼블리(Publy)와 안전가옥과 더불어 뉴스레터를 꾸준히 받아보고 찬찬히 읽어보는 회사 중 하나다. 나중에 내가 읽고 있는 뉴스레터에 대해 다루는 글을 써봐야겠군.


먼저 이번 책을 소개하자면 제목은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이다.(당연히 알겠지 이 포스트의 제목도 같으니까) 요즘 독립출판과 각종 전문가들의 책 출판이 유행인 만큼 이런 종류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실 그중에 제대로 건졌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은 잘 없다. 지금까지 기가 막히게 좋은 문체나(당연하지 소설도 아닌데 문체를 깐깐히 따져봤자) 정말 도움되거나 전문가가 본 새로운 시선이 담긴 책은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기억을 못 하고 있다. 잘 쓰인 훌륭한 책과 아닌 책의 구별법은 단순하다. 내가 기억할 수 있냐, 없냐. 꽤 신뢰도 있는 기준이다. 내 주관과 머리로 선택하는 확실한 방법이니. 내 멋대로의 기준으로 봤을 때 북저널리즘에서 나온 책은 꽤나 인상 깊었다. 이 포스트 다음으로 다룰 '독보적인 저널리즘'도 좋았고, 이번 책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도 좋았다. 주제 선정부터 내용까지 저자와 에디터가 얼마나 신경을 쓰고 트렌드와 독자 취향을 존중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저자 김수안은 심리학을 전공한 야구 심리학자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보고 자란 야구광이다. 자신의 전공 심리학과 관심사 야구의 조합이라니 요즘 말로 덕업일치가 아닌가. 일단 믿을 수 있다. 내 전공 지식을 배경으로 내 관심사를 분석하는 것만큼 흥미로우면서 재밌고, 가벼우면서도 유익할 내용이 어디 있을까. 저자는 프로 야구 선수들의 심리 상담을 담당하다, 레전드를 만난다. 모든 프로 야구 선수는 슬럼프를 겪는다. 생각보다 많은 선수가 심리적인 이유로 좌절을 겪고 일명 '폼이 떨어진다'.


레전드를 알아보니 여타 프로선수와 마찬가지로 수없는 좌절과 슬럼프를 겪는다. 박정태는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헌신 덕에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 힘들게 야구를 배우고 훈련한다. 송진우는 어렸을 때부터 가진 특유의 투구 습관 때문에 선수 시절 내내 투구 폼에 대해 지적받는다. 일명 스타플레이어, 레전드, 기록의 사나이들은 타고난 재능과 이를 뒷받침한 배경 속에서 탄생할 것 같은 인식과 크게 다르다.


여기서 다룬 모든 레전드가 유사점을 가진다. 그들 모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이를 보여주고, 절대 야구를 놓지 않는 것. 슬럼프가 찾아오면 원인을 스스로 찾고 겁먹지 않고 부딪치는 것. 슬럼프를 이겨낼 때까지 담담히 정면으로 부딪쳐 벗어나는 것. 모두 비슷하다. 특히, 다른 레전드보다 송진우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투구 폼으로 투수 생활 내내 지적을 당했던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물론 흔들릴 때도 있어, 고치려고 시도해보니 자신에게 맞지 않는 폼 때문에 더 나빠짐을 느낀다. 실력이 밀리는 것을 느끼자 주저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서클 체인지업이라는 다른 제구력을 갖춤으로써 다시 까다로운 투수로 성장한다. 슬럼프와 실력 저하를 외부환경이 아닌 자신에게 주목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한다. 원인 분석이 끝나면 그 원인을 깨부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단련한다.


완벽한 공부법을 통해 유명해진 '메타인지'와 '자기효능감', '자존감' 등이란 용어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쉽게 설명하고, 거칠게 요약하자면 레전드의 자세는 이렇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세, 결과에 연연해 흔들리지 않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경기에 뛴다는 철학. 오늘 하루하루가 모여 미래의 레전드가 완성된다는 것. 실패나 어려움을 겪었을 때는 우선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를 해결하는 문제 해결 능력. 이를 통해 레전드는 슬럼프를 통해 더욱 강해졌다. 이를 위해서는 내적 동기. 즉 야구를 진심으로 즐기고 몰입하고 빠져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 이 서평을 쓰면서 다시 밑줄 친 부분을 돌이켜보니 각 레전드마다 자세한 표현법은 달랐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김용수 - '최대한 고민하는 시간을 짧게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연습이 답이었다. 아무런 잡념 없이 오로지 연습에만 몰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슬럼프 극복의 열쇠이다.


박정태 - 저는 무조건 열심히 합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저는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결과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한테 목표는 '내가 연습을 얼마나 하겠다' 그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면 되니까. 뭐가 되겠다, 타격왕이 되겠다, 이번 시즌엔 타율을 여기까지 끌어올리겠다, 이런 목표를 설정해서 가면 피곤하니까. 내 목표는 노력이죠.


당장 오늘 내가 해야 할 훈련, 오늘 내가 해야 할 노력, 하루하루의 연습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매일 연습 목표를 정해 놓고 그 과정만 잘 연결시키면, 결과적으로 잘하고 못하고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어울릴만한 자세다. 고등학생을 예로 든다면, 서울대, 인서울, 국립대 등 목표를 두고 공부하면 흔들리기 쉽다. 이렇게 점수 나오다간 안될 것 같은데. '나는 꼭 가야만 하는데' 심리적으로 흔들리기 쉽고, 오히려 이런 고민과 두려움이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이니 오늘 하루 열심히 공부한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공부한다. 매 순간 온 힘을 다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그리고 나는 이 노력을 시험에서 증명해 보일 때 기쁘게 받아들이겠다.라는 자세가 더욱 무서운 마음가짐이 아닐까?


회사원의 경우, 내 실적은 이만큼 채워야 하는데, KPI를 얼마나 달성해야 하는데 고민을 많이 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매사 정성스럽게 처리한다면 결과적으로 훌륭할 거다. 결과는 상관없다. 날 위한 일이다. 내적 동기를 충분히 갖고 임한다면 언젠가 내가 생각도 못한 자리에 이르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자세를 위해서는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랑과 즐거움을 느껴야 하며, 좌절과 슬럼프가 올 때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스로를 돌아봐 내 약점을 보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는 데 있어 두려움이 없다면 드라마도 없을 것이다. 내 드라마를 온전한 내 스토리로 만들어 완성하는 것이 스스로 레전드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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