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모르몬교 살인 사건'을 보고 쓰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몰몬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코로나가 오기 바로 직전 해, 그러니까 2019년의 할로윈 쯤이었을 것이다. 어느 페이스북 친구가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뭔가 새로운 코스프레를 하고 싶다고 전부터 말해왔고, 계속된 고민의 끝은 몰몬교 전도사였다. 검은 정장바지, 윗도리를 바지에 넣은 깔끔한 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와 함께 웃는 얼굴로 길거리를 다니며 능숙한 한국말로 전도하는 몰몬교 전도사 특유의 스타일을, 무신론자였던 그는 이태원에서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만약 그날 길거리와 클럽에 몰몬교의 중심지인 유타 주 출신의 미국인이 많았다면, 확신컨대 그는 한 푼도 쓰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었을 것이다.
몰몬교 전도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전통 가톨릭 마냥 극보수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혼전순결과 동성애, 자위행위를 금지하는 순결의 법을 지키고 술, 담배, 커피와 차까지 금지한다. 이는 몰몬교가 1830년에 조셉 스미스라는 남자가 하나님의 계시와 하늘 사자들의 성역에 의해 세워진 예수의 초대 교회를 회복했다고 주장하면서 창시된 종교인 것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LDS(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몰몬교회)는 예수 승천 이후 조직된 초기의 그리스도교 교회를 온전히 회복했다고 믿기 때문에, 이 곳의 신자들은 몰몬경이라는 경전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정해져있는 교리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도리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개신교나 정교회, 가톨릭과는 다른 독립적인 교파로 여겨지지만 그래도 한국에 80,000명 정도의 신도들이 존재한다고 알려져있고, 미국에서도 2012년에 미트 롬니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꽤 파급력이 높은 종교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한 뚝배기 하실래예?' 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방송인 로버트 할리 씨도 이 종교의 선교사로 왔다가 귀화한 인물이다. 비록 마약 혐의로 체포되면서 이미지에 먹칠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몰몬교의 본부는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에 본부를 두고 있는데, 오늘 소개할 이야기도 바로 이 솔트레이크 시티를 배경으로 벌어진다. 우리에게는 2002년에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으로도 유명한 이 곳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985년 10월 6일,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사제폭탄으로 2명이 사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몰몬교 신자였으며, 몰몬교 문서 수집과 관련이 있던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또다른 문서 수집가였던 마크 호프만 역시 폭탄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다. 그는 몰몬교를 비롯한 고문서 수집계에서 명성을 떨치던 인물로, 유타주립대 의대를 나왔지만 수집가로서의 재능을 더 인정받았던 사람이었다. 당시 LDS는 교회의 역사를 이어나가기 위해 몰몬교 역사와 관련된 문서를 찾아 헤매고 있었고, 역시 몰몬교 신자였던 마크 호프만도 그 일에 관심이 많았었기에, 문서 수집 프로젝트는 날개를 달고 순항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인들은 고서적이 가득한 서점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남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귀중한 문서의 가치를 파악하는 그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제폭탄 사건 이후, 그의 명성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망자 중 한 명이었던 문서 수집가 스티브 크리스텐슨은 마크 호프만이 문서를 위조하는 것 같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문서 수집 비즈니스로 마크와 친분이 있었지만, 관계가 깊어질 수록 그가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다른 피해자인 캐리 역시 크리스를 고용한 사람의 아내였는데, 원래 범행 목표였던 고용주 대신 그의 아내가 희생되면서 경찰은 이 사건이 LDS와 마크 호프만이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결국 마크 호프만은 경찰의 집요한 추적 끝에 붙잡혔다. 또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그가 엄청난 양의 위조품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밝혀지게 된다. 자신의 감쪽 같은 위조 기술로 억 단위의 돈을 벌었던 그는 살인과 사기, 기만, 문서 위조로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되었다. 취조 중에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라고 주장하여 피해자의 가족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등,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아내와 자식까지 있는 몰몬교 신자가 알고보니 사기꾼에 사이코패스 범죄자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슈몰이에 충분한 소재였다. 죽을 위기를 넘긴 피해자가 알고보니 용의자였다는, 무슨 영화에나 나올 일이 벌여졌으니 말이다.
마크 호프만은 독실한 몰몬교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몰몬경에 따른 충실한 신앙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역시도 교회에 나가서 선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시점에서 그는 더 이상 독실한 몰몬교도가 아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모태신앙이었던 그가 의심을 품고, 믿음을 잃어가는 과정은 주목해야한다. 마크가 자신만의 기술로 위조 문서를 만들어 파는 일련의 과정을 교회의 지도자들이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줄곧 품어왔던 의심과 번민, 그리고 결론에 대한 일종의 확신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종으로 일하고 있기에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사물을 분별할 줄 안다고 주장하는 몰몬교의 사도와 예언자들이 고작 얕은 수를 통해 위조한 몰몬교의 초기 문서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문서를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모두에게 공개하지 않고 비밀 금고에 숨기는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몰몬교가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논리가 그의 사이코적인 범행을 정상참작할 만한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하지만, 어쨋든 이 사건은 당시 몰몬교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키우고 신도들 개개인의 신앙을 흔들리게 만든 케이스로 남게 되었다. 마크 호프만은 수감 이후 자살 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다른 곳으로 이감되어 지금까지 그 곳에 있다. 그는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인터뷰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어떤 증언 요구도 거부했다. 그리고 몰몬교는 지금도 유타 주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