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힘든 일은 한꺼번에 밀려드는 경우가 많더군요.
(아마도 그렇게 느껴지는 걸 겁니다. 문젯거리가 하나 정도라면 적당히 해결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하지만 한꺼번에 어려운 일이 몰려들면 아무래도 이겨내기가 버겁다 보니, '힘들 일은 이상하게 한꺼번에 몰린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이럴 때면, 어둡고 무거운 감정에 사로잡힌 채 서서히 몸과 마음이 지쳐가다가 결국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기운마저 쑥 빠져버리게 되지요. 주변 세상이 허물어지는 듯한 기분도 들기도 하고, 삶이 한순간에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듯합니다. 이런 날들은 내내 계속될 것만 같고요. 정말 암울하죠.
그러다가도 어떤 긍정의 시그널들이 이쪽저쪽에서 들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슬그머니 밝아집니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도 고개를 드는 거지요.
'호락호락하지는 않아도,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사람과 여태까지 하고 있는 이 일, 그리고 내 인생은,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인 거야.'라고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서 현 상황을 개선해보려고 하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때도 있더군요.
이렇게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고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한때 신념을 가지고 생을 일관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던 적도 있습니다만
돌아보니 마음이란 놈은 늘 환경이나 장소, 혹은 마주하는 사람이나 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 심지어는 날씨에 따라 변하더군요. 어쩌면 그때그때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마치 장마철의 날씨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마음의 속성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 탓에 '그 사람, 참 한결같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이건 타인의 일방적인 판단에 불과할 거라고 여겨버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하는 사람의 판단을 아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도 그럴 것이, 정작 본인의 마음은 거센 물결처럼 일렁거리며 매 순간 바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한결같다는 판단은 기껏해야 상대 쪽에서 바라보는 반쪽에 불과한 것이고, 나머지 이면은 본인 외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정말 매 순간 변하지 않는, 일관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단함을 넘어 정말 무서운 인간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거죠.
과연 사람의 마음이 시종일관 한결같을 수 있는 걸까요?
몇 주 전이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저를 괴롭히고 있는 악성민원에다 기대에 못 미치는 업무성과 때문에 오전 내내 우울했고 자신감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긴 장마는 이런 기분을 더욱더 가라앉게 만들었구요.
내키지 않은 일들과 계속 마주하고 있노라니, 급기야 불안과 우울이 밀려들며 별안간 앞이 캄캄해지더군요.
사정이 이러하자, 답답함과 중압감을 털어버릴 요량으로 점심시간이 되기 무섭게 사무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식당에 홀로 앉아 비빔밥을 먹는데 잘 넘어가지 않더군요. 그래도 억지로 먹었습니다. 당이나 탄수화물이 들어가면 울적한 기분도 조금은 나아지니까요.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고 나니,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기가 내키지 않더군요.
무작정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는 도심을 벋어나 버렸습니다. 차창 밖에선 비가 오더니 이내 그치고, 반짝 해가 나더니 다시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뚝 그치더니 내 앞으로 티끌 하나 없이 맑은 초록 숲길이 펼쳐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마음이 방향을 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깨끗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몸 구석구석으로 청량감이 틈입하더군요.
그렇게 해변까지 드라이브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마음의 색깔과 방향은 이렇게 사소한 상황이나 조건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바뀌더군요. 그리고 알았죠.
공간을 바꾸어 보는 것만으로도 리프레쉬가 된다는 걸. 언제든 급변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라는 걸.
지금 이 마음이 또다시 변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요.
뭔가에 좋고 신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괴롭고 불안한 마음도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금세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이 마음을 전부는 믿지 말자고 생각해 봅니다.
사는 동안 매번 중심을 잃지 않는 것도, 인생에서 신념이나 일관성을 지킨다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선지 요즘 들어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것을 딱히 믿을 게 못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더군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의 파도를 요리조리 바꿔 타면서
매 순간 혹은 찰나를 그냥 그냥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지금의 마음에 겨우 기댈 수는 있겠지만, 과거의 기억나 다가올 미래는 모두 믿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선지 중년을 넘긴 사람이 지나치게 자기 확신이나 신념이 확고하고, 특히나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볼 때면 오히려 불안하고 불확실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여 수시로 변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