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

by 난척선생

'난척선생'이란 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잘난 척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은연중에 젠체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되더군요. 하여 경계해야겠다는 뜻에서 '난척선생'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스스로 많이 부족한 인간임을 안팎으로 알리고, 늘 주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인 거죠.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런 습성은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그나마 모자란 자신을 순간순간 살피고는 있다는, 씁쓸한 변명을 해 봅니다.


잘난 체를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끌어내리는 일이더군요. 보통 잘나지 않은 사람들이 잘난 '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존 명사인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을 말하는데, 따지고 보면 잘난 사람은 잘난 체할 필요가 없는 거죠. 잘난 사람은 그 자체로 잘 났기 때문에 ‘척’으로 자기를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잘난 척'은 잘 나지 못한 사람들이 하고 있는 가식인 거죠.

잘난 체하는 것은 스스로 잘나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양새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볼 때 잘난 척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한 인물이 펼치는 코믹극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실상이 이러하니 잘난 척은 상대에게 불쾌감을 유발하고 나아가 아니꼬움이나 비아냥도 함께 불러올 것 같군요.

잘나지 않은 사람의 잘난 척은 그걸 지켜보는 상대의 비웃음을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요.

설령, 잘난 사람이 잘난 체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잘난 줄 알고 있는데, 왜 저렇게 모양 빠지게 쓸데없이 잘난 체를 하는 걸까.'라는 시기심과 저항감을 부르게 되죠. 이래저래 잘난 척은 득 될 게 없을 것 같군요.

그러니 아직도 이걸 고치지 못하고, 난척선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아온 제 삶을 돌아보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스스로 모자란 걸 알고는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라고 자위하는 것이고요.

잘난 척을 영어로는 'Know-it-all'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란 뜻으로, 잘난 체하는 사람을 비꼬는 표현인 거죠.

앎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수긍이 갑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세상만사를 다 알 수는 없을 겁니다. 불가능한 이야기죠.


요즘은 내 주변 상황도 백내장 증상처럼 눈이 부시고 흐릿하여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오십을 넘고 보니, 지난 일 마저 기억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많더군요. 하물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들이 이처럼 불확실하고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말이죠.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혹은 일어날 사건들이 전부 불확실하다는 확신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어차피 세상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 그냥 속 편하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내자는 마음이 되더군요.

적어도 내 앞에 놓인 하루, 한 시간, 십 분 정도는 '선명하다'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이제 아는 척이나 잘난 척은 생성형 AI에게 맡겨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일상 속으로 AI가 빠르게 스며들면서 단편적인 지식이 힘이 되던 시대는 저만치 저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잘난 척을 하던 시대는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이어 등장한 AI와 함께 몰락하고 있는 중인 거죠.

그러니 잘난 척은 AI에게 맡겨두고, 새로운 경험에 관심을 두는 편이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것만 같군요.


네이버에서 '잘난 척'을 검색하니 AI가 그 뜻과 함께 이런 정보까지 주는군요.


<잘난 척의 주요 유형과 특징>

과시형: 실제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며 남을 시기하거나 깎아내리려는 경우

비하형: 열등한 상대방이 남을 깎아내리기 위해 잘난 척을 하는 경우

적당한 경우: 자신이 자신 있는 분야에서 겸손하게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


<잘난 척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피로감 유발: 반복되는 자기 자랑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게 만들고, 자존감을 흔들 수 있음

경쟁 구도 형성: 칭찬이나 공감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며, 대화의 중심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경향이 있음

관계의 불편함: 상대를 아래로 보는 발언이나, 항상 주인공이 되려는 태도는 관계의 편안함을 해칠 수 있음


대단하죠. '잘난 척'을 검색하니 AI는 그 뜻뿐만 아니라 스스로 확장된 정보까지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흠… 저도 알량한 지식이나 정보 혹은 경험 따위에 대한 은근한 잘난 척을 멈춰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난척선생이라는 이름을 쓴 지 20년이 지났습니다만...

그럼에도 고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인간으로 살다가는 수밖에 없겠죠. 뒷맛은 씁쓸하지만, 많이 부족한 인간임을 알고 있는 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요.

그도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해 나가야겠죠.


도서관 앞마당으로 낙엽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가을이 저물고 있네요.

화사한 봄꽃도 좋지만 중후한 가을단풍도 좋습니다.

봄꽃이 저마다의 모양과 색을 지니고 있듯, 단풍 또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네요.

젊음이 각양각색으로 아름답듯, 늙음 또한 제각각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무는 살기 위해 수분을 차단하며 제 몸에 난 잎을 버립니다. 다음 해를 향해 수분을 줄이고, 붉고 노란 나뭇잎들을 한꺼번에 떨구어내듯, 나이 들수록 말수(자랑, 허풍, 과장, 과시, ~한 척 등)를 줄이고 늙음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시시각각 늙어가고 있는 저도, 살기 위해 그리고 내일을 위해, 조금씩 덜어내야 할 시절이 온 것 같군요.

그러면서 겸손, 세상과 타인을 향한 따듯한 시선, 나눔과 베풂, 친절, 너그러움과 여유, 단순하고 간소한 삶…

이런 넉넉한 단어들을 한번 되뇌어 봅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지만...

적어도 못난 인간은 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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